사장님과 노동자 둘이 주장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 누가 옳은지 말로는 판별이 안된다. 서로가 옳다고 고집하니까. 따라서 진실을 알려면 두 사람이 싸인한 문서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얼굴이 까만 태국인이 왔다. 선반 기술자로 숙련공이다.
"회사 나왔어요."
내가 물었다.
"왜 나왔어요?"
"일이 힘들어서요."
"힘들다고 나오면 되요?"
하자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회사 가서 사흘 일한 건 사실이지만, 계약서에 싸인 안 했거든요."
태국인은 아무데나 생각 없이 싸인해서 내 속을 태우는 경향이 있는데, 만일 싸인을 안 했다면 아주 신중하고 똑똑한 태국인이다.
실제로 싸인 안 했는지 알기 위해서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했다.
"외국인 등록번호 850000, 태국인 티라왓 지금 구직 중인가요? 아니면 회사에 고용이 되었나요?"
고용지원센터 직원이 대답했다.
"00테크에 7월 0일자로 고용된 걸로 나오는데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본인은 계약서에 싸인 안 했다는데."
회사에 전화했다.
사장님은 펄쩍 뛰었다.
"물론 싸인했죠. 7월 0날 첫날 계약서에 싸인해서 내가 직접 고용지원센터 가서 신고했는데요. 싸인 안하고 어떻게 사흘이나 일을 시킵니까?"
"그럼 티라왓은 왜 싸인 안 했다고 하죠?"
"걔가 바람이 들어서 그래요. 사흘은 일 잘했는데 태국 애 하나가 와서 자고 가더니 그 다음날 말없이 나가더라니까요."
"계약서 갖고 계시지요?"
"아뇨. 한 장 썼는데 그것도 고용지원센터에 제출하고 없어요."
사장님은 싸인했다고 하고 노동자는 안했다고 하고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진실게임이다.
사장님에게 부탁했다.
"그럼 고용지원센터에 있는 계약서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해서 그 계약서 사본을 저한테 다시 보내주세요."
5분도 안 되어서 계약서 사본이 팩스로 들어왔다.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태국인 특유의 필체로 영문으로 THIRAWAT이라고 써있고, 크게 보면 대문자 S자를 45도로 기울인 듯한 모양의 복잡한 싸인이 되어 있다. 날짜는 7월 0일이다.
"싸인했는데 뭘!"
티라왓은 처음에 자기 싸인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더 이상 버티지는 못했다. 내가 물었다.
"00테크 일 힘들지 않은데, 왜 힘들다고 했어요?"
그가 고백했다.
"*돈이 적어서요."
"돈이 적더라도 일 년 계약했으면 일 년 일해야 되요."
그는 화난 듯이 말했다.
"저 태국 갈 거에요."
"태국 가는 건 자유지만, 한국에 남아 있으려면 회사로 돌아가세요. 불법체류자 되기 싫으면."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했다.
*돈이 적으면 : 임금이 적으면 숙련공은 도망가려고 하고, 사장님은 붙잡으려고 하고, 숨바꼭질을 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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