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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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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포도

[한윤수의 '오랑캐꽃']

금년에는 때 이르게 6월 23일에 첫 포도를 먹었다. 태국인 위타야가 고맙다며 그 귀한 첫 과일을 사왔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별로 고마워할 일도 아닌데.

위타야는 아주 작은 *고물상에서 일했다. 여자 사장님과 사장님의 시아버지인 80대 노인 그리고 위타야가 전 직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출산이 임박한 사장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사장님은 위타야를 특별히 불렀다. 위타야가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으면 옆 고물상 사장님에게 얘기해. 거긴 한국말 잘하는 태국 사람도 있으니까."

위타야는 사장님이 입원한 다음날까지는 일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때 옆 고물상 사장님에게 얘기했다.
"나 내일부터 일 안 해요."
옆 고물상 사장님은 당황해서 병원에 전화했다.
"위타야가 그만두겠다고 하는데요."
"그만두든지 말든지 내가 애기 낳고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요."
그러나 위타야는 다음날 과감히 회사를 나와 센터에 왔다.

▲ ⓒ한윤수

고물상을 그만두겠다는 위타야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사장님의 핸폰 번호로 전화했다.
"위타야 퇴사 처리해줄 수 있나요?"
사장님은 순순히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되지요?"
"고용변동 신고서에 싸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좋아요. 내일 회사로 보내세요. 싸인해 줄 테니."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변동 등에 관한 신고서>를 위타야 손에 들려주어 회사로 보냈다. 그러나 위타야는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다. 사장님이 어느 병원에 입원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님 핸폰으로 다시 전화했다. 사장님이 말했다.
"회사에 저희 아버님이 계세요. 저희 아버님한테 대신 싸인해달라고 하세요."
그러나 그 노인은 싸인해 주면 무슨 큰일이나 나는 줄 아는지 절대로 싸인해 주지 않았다.

다시 사장님에게 전화했다.
"할아버지가 싸인을 안 해주시는데요.."
사장님은 말했다.
"그럼 내가 애 낳고 갈 때까지 열흘만 기다리세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어서 할 수 없이 고용지원센터에 협조를 요청했다.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퇴사 처리를 안 해줘서 다른 회사도 못 가고 붕 뜬 상태입니다. 혹시 직권으로 직장 이동시켜줄 수 없나요?"
담당공무원 U씨는 신기해 했다.
"이해할 수 없는데요. 퇴사처리를 안 해주면 그 날짜만큼 임금을 더 줘야 하는데 그러면 회사 손해잖아요?"

사장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퇴사 처리를 안해주면 회사 손해라고 귀띔해 주었다. 사장님은 황당해 했다.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애 낳을 때까지는 꼼짝도 못하는 걸요."
말이 씨 된다고 결국 사장님 말대로 되었다. 사장님이 애기를 낳고 퇴원한 후에야 비로소 퇴사 처리되었으니까.
비록 늦었지만 위타야는 고물상을 그만둔 게 너무나 기뻐서 포도를 사온 것이다.
그의 소원은 남들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었으니까.

*고물상 : 플라스틱 폐자재를 수집해서 잘게 부수는 일을 하는 이곳은 명색은 제조업체이지만 하는 일은 고물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위타야는 이런 누추한 <고물상> 말고 버젓한 공장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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