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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교육'과 '대안교육'의 경계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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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도교육'과 '대안교육'의 경계 위에서

대안학교의 길<8> '도전의 2년반'

대안학교의 학부모가 된 지도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간단치 않은 선발과정을 거쳐 이우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여느 부모나 마찬가지로 저도 참으로 기뻤습니다. 아마도 그 기쁨은 아이가 즐겁게 학교를 다닐 것이며, 학교가 표방한 교육이념이 아이의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설레임과 기쁜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마음에 몇 가지 무거움이 얹혀 있습니다. 그 무거움이란 이우학교가 고스란히 제게 던져준 것이라기보다 '대안교육'이라는 명분과 가치, 그리고 실천에 관해 여러 가지 고민을 계속 하도록 만드는 우리의 사회상황과 교육 현실이 준 것 같습니다. 현실교육의 모순을 넘어서고자 어렵게 만든 학교지만 현실의 굴곡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서 생기는 어려움들이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에 존재하고 있고 그 점은 이우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대안교육에 대한 폄하도 환상도 벗어야**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식이 대안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아이가 제도학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서 대안학교를 보냈구나! 하는 짐작을 하며 말없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냅니다. 어떤 경우는 대안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면 어쩌려고 그런 무모한 결정을 했느냐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학비를 많이 내는 귀족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돈 많은 부모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공교육과는 달리 정부의 교육비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운영비는 부모의 몫입니다). 이런 경우는 대체로 대안학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시선은 대안학교가 현재의 교육문제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이상적인 실천을 하는 교육현장이라고 생각하거나 대안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학교가 내세우는 목표대로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랄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두 가지 생각은 사실은 같습니다. 이런 견해들은 대체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대안학교에 대한 보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대안학교를 소개할 때 의도적으로 연출을 하거나 없는 활동을 마치 있는 것처럼 왜곡하지는 않지만, 일단 대중매체를 타면 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석하거나 드러난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 시선 모두 실제 대안학교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최선을 다해 제시한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나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학부모의 절대적인 후원과 믿음과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그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자라지도 비범하지도 않은 매우 평범한 학생들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 대안학교는 제도교육이 갖는 최소한의 장점과 합리성도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대안이라는 명분으로 이 땅에서 대안교육이 실시된 지 10년이 흐른 지금, 저는 대안학교에 대한 폄하도 막연한 환상도 가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떻게 교육해 왔는지 솔직하고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실 자체와 신념을 구별해 대안학교의 현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엇이 성과이고 무엇이 시행착오인지 한 치의 자기변명도 없이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척박한 교육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이미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은 상당한 연륜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각 대안교육의 현장은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실천에 대해 점검하고, 교사 스스로 비판하고 반성하며 내실화를 꾀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언론이 형성한 '대안학교의 아우라'도 걷어내자**

저는 두 아이 모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보냈습니다. 제가 대안학교에 자식을 보낸 이유는 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평균적 바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은 잘하지 않는 선택을 했느냐고 질문을 한다면 아이가 억압과 폭력이 없는 환경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기를 바라고, 학교에서 경쟁보다는 협동을 경험하며, 선생님과 친구를 사랑하고 믿는 마음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인생목표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가지길 원하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대안학교는 저의 이런 소망을 어느 정도 실현해 주었는지 지금 시점에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아이는 지금도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성찰적 관점을 가지고 대안교육의 상황과 그간의 노력, 성과와 실패를 논의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대안학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상당부분 공통점이 많습니다. 생태적 관점에서 자연과 세상을 보고, 아이들을 줄 세우기 하도록 내모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 반대하며, 아이들의 입장에서 배움을 생각하며 자발성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키우고자 하는 목표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대안학교들은 각 학교가 제시한 교육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우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제도권 학교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다고 할 수 있지만- 입시교육이 만드는 경쟁적 구조와 성적부진으로 인한 아이들의 좌절, 교사와 학생들 간의 불일치, 교사들 간의 의견충돌, 아이들 간의 부딪침, 부모와 학교의 대립,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학비의 부담과 빈부의 격차 등등에서 오는 갈등이 없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무풍지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의 현장은 의견이 조화롭게 소통되고 일치된다기보다, 항상 얼마간의 대립과 충돌이 있고, 시행착오도 있고, 때로는 그 갈등과 대립의 정도가 매우 격렬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처음 제시한 방향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고 좌충우돌 하면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오늘날 대안학교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언론 매체를 통해 대안학교에 대한 시각 또는 이미지를 형성한 분들은 가능한 한 그것이 갖는 '아우라'를 걷어내기 바랍니다. 저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가능하면 솔직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안학교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교육내용과 사회현실 간의 갈등, 어떻게 넘어설까?**

얼마 전에 아이의 학교 부모들과 만나서 대안학교는 제도권의 일반학교와 적어도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들의 의견에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동의하는 부분은 이랬습니다. 물리적 폭력이 없고, 학생과 교사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사랑한다는 것, 학생들 사이에 우정과 신뢰가 돈독하다는 것, 그리고 교육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성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다수 대안학교 부모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녀들이 대안학교에서 제시한 이념과 모든 교과과정을 잘 따르고 잘 배우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동의한 학교의 가치와 이념이 아이들에게 내재화되어 신념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의 살기를 원합니다.

제도권 학교와는 달리 대안학교는 교육의 목표가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고갈의 위기에 직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태적 관점을 중요시하며 그 실천을 가르치고, 독점을 지향하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시들어 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눔과 협력의 가치를 교육과정에서 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안학교는 가장 치열한 현실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그 이념과 방법이 학교를 둘러싼 사회의 일반적 가치와 제도 및 흐름과 다르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아이들도 교사들도 학부모도 때로는 불안하게 흔들리며 방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가 이 사회와 동떨어져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상적 교육을 실시하는 고립된 섬이 아니듯이 아이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 분위기에 영향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의 기대에 맞게 그대로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학교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지만 나름대로 현실적인 고민과 갈등의 과정에서 자기를 형성하므로 어떤 경우 부모나 교사들보다 더 현실적인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대안학교의 교사와 부모들은 그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만만치 않은 학비를 감수하며 생활의 부족함을 견디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안학교의 부모들은 아이가 설령 학습에 관심이 없어도 자신이 하고 싶고 알고 싶은 분야에 몰두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그런 자발성과 내면의 힘을 가지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기다린다는 것이 부모에게는 무한한 인내를 요구합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대학입시 문제입니다. 현재의 입시 제도를 비판하는 대안학교들이지만 고등학교의 부모와 학생들은 거의 모두 대학 진학을 원합니다. 일단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정하면 아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뜻대로 갈수 없는 현실은 -다소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입시에서 무슨 과목이 유리한지, 대안학교의 수업만 받아서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성적에 맞추어 어느 대학을 지원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는 일반학교 부모와 학생들과 마찬가지입니다. 대안학교가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정한 배움의 뜻을 세우고 적성을 찾아 대학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대안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는 고통 속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고민합니다.

대학에 간다는 것이 대안적 삶이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지만,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대학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현실적으로 그때부터 입시는 매우 심각한 고민을 던져줍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에 자신의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현장으로 가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들이 대안학교에는 종종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지 사뭇 궁금하고 흥미롭습니다.

***'학교 안'의 고민, 고민, 고민…'꿈의 학교'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대안 고등학교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입시 문제는 불과 몇 십 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들이 해결하고 떠안기에는 매우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어른들의 고민과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의 대안학교 아이들은 참으로 발랄하게 잘 뛰어 놉니다. 대안학교의 학부모들은 대체로 아이가 현재는 천방지축 날뛰는 놈이어도 언젠가는 잘 하겠거니 하는 자식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믿음과 굳은 심지가 없이는 대안학교에 자식을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님들의 학교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가변적이라고 느낄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 부모들의 성향 중 눈에 띄는 점은 학교의 교육에 감동도 잘 하지만 동시에 비판도 매우 날카롭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교육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점이 있고 철학이 있어서 대안학교를 선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 동안 때로는 조금 기다리고 믿어주면 될 것을 부모의 입장에서 조급하게 서둘게 되고 아이가 겪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고 학교의 교육성과를 판단하는 모습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향은 저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점은 우리 세대가 6.25 전쟁 후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나 치열한 입시경쟁을 겪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내면적으로 공부든 무엇이든 일단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 교사들은 부모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상황이 반대가 될 때도 있습니다. 대안학교의 교사들이라고 해서 모두 교사로서 바람직한 자질과 풍부한 경험, 실력을 갖춘 분들만 계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교사는 학생을 자기 관점에서 보거나 경험부족으로, 혹은 교사의 권위적 태도로 잘 소통하지 못해 아이의 행동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 아이의 문제에 대해 적절한 지도가 이뤄지지 못해 아이가 상처받을 때 부모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끙끙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안학교든 제도권 학교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교사와 직접 소통하지 않을 바에야 교사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부모라면 자식문제로 마음 아프기는 제도권 학교의 부모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대안학교에서도 벌어진단 말인가! 하며 대안학교 전체의 교육을 부정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안학교는 모든 면(재정, 학업, 진학, 교사수급, 학부모 역할 등등)에서 고민하며 뒤뚱대는 현실 가운데에 서 있는 학교이지 현실의 모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꿈의 학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학부모'의 자기반성을 토대로 크는 학교**

처음에 자식이 대안학교에 들어가면 부모들은 학교가 제시한 이념대로 아이가 바람직한 과정을 밟으며 성장하리라는 기대감 속에서 제도권 학교와 다른 점에 신선한 충격을 받지만 얼마간 시간이 흘러 대안학교의 현실을 경험하고, 아이의 변화도 부모의 바램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부모는 좌절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대안교육도 결국 교육이란 그 본연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실천할 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긴 안목에서 교육의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됩니다. 또한 대안교육일지라도 바람직한 교육철학과 그에 맞는 수업 프로그램만 갖고 절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실감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대안교육 성패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선생님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교사의 지도력은 아직 실험 단계의 교육을 행하는 대안학교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교사로서 학생과 친밀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교사로서의 자질과 실력을 갖추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사의 교육적 권위는 구별되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학교 부모들은 학교 수업에 관심도 많고 의견도 많기 때문에, 선생님 입장에서 본 학부모라는 존재는 아는 것도 많고 좋은 의견도 많고 기대도 많아서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안학교 부모로서 학교의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한다는 것이 교사의 교육적 권위와 권한을 넘어서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몸과 마음으로 뒹굴며 부딪치며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는 당사자는 교사이지 학부모 본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도권 학교도 마찬가지이지만 대안교육에서는 특히 교사와 학부모가 합의된 교육철학과 방법을 일관되게 수행해야 교육적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모들은 대안학교의 선생님들이 박봉과 과중한 업무와 학부모의 큰 기대 속에서 때로는 보람으로, 때로는 서운함으로, 때로는 부담으로 힘드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힘듦을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보람으로 견디고 감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염려가 되는 경우는 대안학교의 교사들은 대체로 제도권 학교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이랄까요? 일종의 선민의식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입니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결정은 분명히 어려운 결단이었겠지만 대안교육만이 유일한 교육이라는 생각과 제도학교에 대해 대립적 태도를 지닌 채, 제도권 교사에 대해 우월 의식을 갖는 것은 교육에 대한 진정한 성찰적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게 할 것 같습니다. 또한 학생들에 대해 '내가 이렇게까지 헌신하며 옳게 가르쳤는데 겨우 요것밖에는 안돼? 하는 지도방식을 보일 때도 있는데, 이런 지도방식은 아이들을 지치게 하고 학부모를 주눅 들게 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나만이, 혹은 우리만이 진정하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배타적 선민의식은 현실 문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하고 부족함이나 실수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비판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대안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는 항상 긴장을 유지하며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힘든 과정을 소화하고 있는 아이나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성인군자 같은 생활과 의식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민망합니다만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개인적인 희망을 적어 본다면, 현재 세워져 있거나 세우려고 시도하는 모든 대안학교들이 세상에 문제를 열어놓고 고민해야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세운 대안학교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고 기본이 충실한 교육의 터전 위에 대안적 가치를 실천하고 헌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때로는 '자율'에 당황하기도, 지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제가 경험한 대안학교의 일반적 상황이나 대안교육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었습니다. 이제 부모로서 이우학교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이우중학교 생활에 맞추어보겠습니다. 이우학교에 와서 겪은 여러 가지 경험 중 부모로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 순수함과 적극적인 학부모 활동입니다. 아이들은 수업 따라 가느라고 허덕였지만 첫 해에 선생님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욕심은 가히 부모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대안교육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 참 재미있는 한 학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첫 학기는 좌충우돌, 우격다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동안 자율적인 규범에 훈련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자율로 하라고 맡기면서 뭐 하나 정해주는 것이 없으니 모든 면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과정이 많았습니다. 또 수업의 과제로 내주는 내용들은 만만치 않고, 과제 발표에, 봉사 활동에, 농사에, 선생님들이 제시하고 부모들이 원하는 모든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들을 하느라 아이들은 바쁘고 또 바빴습니다. 모두 다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잠을 줄이고 노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의지와 능력이 필요한 한 학기였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어떤 것은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잘하기도 하며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대안! 대안! 이라는 말에 삶의 고단함(?)을 느꼈는지 그 말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이우학교 학생이 그래서야 되겠니?' 하는 것과 '이우정신'이라는 것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면 아이들은 의식 과잉 상태가 주는 허구성을 재빨리 알아차린 듯 했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은 중1 두 학기 동안, 모둠활동으로 극본을 쓰고 공연을 하는 만만치 않은 수준의 작품 발표를 세 가지나 하면서 저희들끼리 의견충돌로 다투기도 하고 곧 후회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서로를 아주 잘 알게 되었고, 이우학교가 자신들의 학교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여드름도 안 나고, 젖살이 뺨에 몽실몽실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모여서 학교의 장래를 걱정하고 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바람직한지를 중구난방 떠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부모들은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공동선'을 향해 조금씩조금씩 접근하는 아이들**

2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것에 지쳤는지 모든 일에 시큰둥,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저희들끼리 모여서 놀기에 바빴고 1학년 후배들에게 선배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생이 새로 입학한 고1의 선배들보다 저희들이 이우학교를 더 오래 다닌 티를 내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1학년 때는 서로 성격도 취미도 안 맞아서 그렇게들 아옹다옹 하더니 2학년이 되자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어 모든 친구들의 다른 점을 개성으로 인정하며 대화하고 고민을 나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러 부모님들이 집에서 아이와 대화를 해보면 생각이 상당히 열려 있고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싫어도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있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학년이 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마다 장점을 발휘하고 성장한 모습이 눈에 띠게 드러납니다. 물론 거기에도 개인차는 있습니다. 어떤 녀석은 속도가 빠르고 어떤 녀석은 느리지만 충실하게 자기 모습을 다져갑니다. 이런 성장은 반드시 이우학교 아이들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제도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학원에 과외에 힘들어도, 부모의 보살핌과 선생님들의 관심 속에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우학교여서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부모가 보는 관점에서 이것이라고 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들께서 모든 교과과정에서 공동선을 위한 가치를 아이들이 깨닫도록 노력한다는 것,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는 방법을 아이들 스스로 알아가도록 이끈다는 것, 정의와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것 등인 것 같습니다.

***'지역학교', 힘들지만 의미 있는 지향점을 향해**

이우학교의 학부모 활동을 보자면, 학교의 관여 없이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모임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시간이 되고 뜻이 맞으면 여러 가지 취미 모임도 만들고 아이들과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도 하고, 봉사활동도 같이 하고 함께 책도 읽고 농사도 짓습니다. 퇴근 후 동네의 호프집에서 만나 늦도록 교육문제를 토론하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반모임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들과 똑같이 부모들도 학부모회를 어떻게 조직할지, 학부모 임원은 어떻게 선출할지 몰라서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쳐다보고 있기도 했고, 어느 집 아빠는 수염이 있다는 이유로 그 개성을 인정받아 임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학교를 돕는 일이라면 부모들은 밤을 새워 일을 하기도 하고, 일요일도 마다않고 학교로 달려오곤 했습니다. 이런 적극성이 제도권 학교의 학부모회에도 있으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많이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부모님들도 자식에 관해서는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데, 제도의 불합리한 관행과 타성이 이런 자발성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어 '내 아이만'의 행복이 아니라 '전체 우리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정책을 실시하도록 요구하고 그런 제도를 만들면 현재 교육 현장의 이 소모적인 경쟁은 많이 사라질 것 같고 학비의 부담도 줄 것 같습니다.

이우학교가 다른 대안학교와 다른 점은 지역의 학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은 기숙사형 학교로 지역의 아이들이 아니라 학교를 찾아 온 전국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지역의 주민이 아니므로 학교를 졸업하면 지역을 떠나게 되고 학교와 지역이 서로 교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 지역주민들이 학교에 상당히 배타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우학교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는 성남과 분당, 용인 등지의 지역 주민들입니다. 물론 이우학교를 다니기 위해 이사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가 학교를 졸업해도 이사 가지 않고 이 지역에서 뿌리 내리고 살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9월 3일 이우학교는 생활협동조합 사무실을 학교가 있는 동네에 마련했습니다.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이우학교가 꿈꾸고 계획하는 지역운동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선은 학부모 중심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하지만 자리를 잡으면 곧 지역으로 문을 열고 지역과 함께하는 생활운동을 펼쳐 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아주 차분하게 천천히 내실을 다지며 이뤄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우학교가 지역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은 장점이 많지만 어떤 경우에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장점은 지역을 중심으로 배움과 삶이 일치되어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고, 걸림돌은 부모가 학교가 제시하는 교육방향을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말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기숙사 학교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학교의 방침을 적용하는 데에 수월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학습에 있어서 방학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는 학원과 과외 등의 사교육을 받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부모들은 체험활동이 많은 대안학교의 특성상 주지주의 교과의 학습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곧 사교육을 생각합니다. 학습의 양에 있어서 이 문제는 대부분의 중등 대안학교가 갖고 있는 적지 않은 고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역학교인 이우학교는 이 부분에 아주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깊이가 만만치 않으므로 학생들은 그것을 따라가기에도 대개의 경우 매우 벅찹니다. 읽어야 할 책도 많고 기일 내에 제출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그 과정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가지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로서는 이 점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부모님들의 의식에 호소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학생이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에 부족함을 느껴 보충하고자 할 때, 공부를 하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사교육과 보충학습은 어떻게 구분되는지, 혹은 학교의 선생님이 모든 학생의 요구에 맞춰 지도하기 힘든 상황일 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학생에게 어떤 방법으로 그 욕구를 채워줘야 하는지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님들은 보충학습을 하고자 찾아간 학생을 언제든 지도하시지만 아이들은 선뜻 선생님을 잘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려야 하는지, 좀 더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부모들과 선생님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도교육'과 '대안교육'의 경계 위에서…'긴장'과 '성찰'을 위해**

순전히 저만의 관점에서 볼 때, 이우학교는 제도권 교육과 대안교육의 경계에 선 학교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경계에 선 학교라는 의미는 제도권 안에서 대안을 만들어 가려는 이우학교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우학교가 추구하는 실천 방향, 즉 제도의 틀 안에서 대안적 가치를 교육 목표로 설정하고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참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이우학교는 어느 정도 학교운영의 자율권이 주어졌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 대안적 시도를 하기에는 비제도권 대안학교가 누리는 교육과정의 자유가 없고, 경제적으로는 제도권 학교가 누리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비 지원도 여의치 않은 학교입니다.

경계에 위치하고 있음은 두 개의 다른 가치 사이에서 긴장과 성찰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부모로서 이우학교가 늘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서 있기를 바랍니다. 이우학교의 6개 학년이 모두 채워지는 올해 초에 교장 선생님께서 고인 물을 경계하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에 담긴 의미를 부모로서 저는 이렇게 받아 들였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부모들의 바램대로 장래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기 위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때 머뭇거리지 않도록 용기와 격려를 주며, 세상을 긍정적 바꾸기 위해 헌신하도록 돕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에 이우학교뿐만이 아니라 대안교육 현장에 있는 모든 교사와 부모들의 실천과 노력은 현재 우리 교육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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