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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독

[한윤수의 '오랑캐꽃']<99>

전화가 따르릉 걸려온다.
"태국 사람 있어요?"
K주임이 무심코 대답한다.
"없어요. 와나팃(일요일)에 오세요."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무슨 소리야? 지금 태국 사람 있는데."
K주임은
"아, 참! 미안해요."
하고는
"김 선생님 전화 받으세요."
한다.

매주 화요일은 태국말 잘하는 김 선생님이 있다. 그는 모 언론사 태국특파원을 지내고 정년퇴직한 내 오랜 친구로, 멀리 용인 수지에서 화요일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찾아와 하루 종일 통역을 해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친구의 통역에 의하면, 전화를 건 그 노동자는 새벽에 전북 부안에서 출발하여 이미 오산까지 왔고 오산역에서 <능능능>을 타고 발안으로 출발했단다. 능은 태국말로 1이니까 111번 버스를 타고 온다는 뜻이다.

전국에서 까다롭고 난감하고 고질적인 문제들이 보잘것없고 작은 우리 센터로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경남이나 전남에서도 노동자들이 밤 열차를 타고 올라와 수원이나 오산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발안까지 온다. 왜 그럴까? 상담을 잘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상담은 별 게 없다. 상담은 어디나 똑같다. 다만 한 가지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우리 센터는 불독처럼 물고 늘어진다는 점이다! 사장님들이 아주 싫어하지!

태국 노동자는 이름이 프라낫으로, 마지막달 임금 21일치를 못 받았단다. 사장님 말로는 한 달 30일을 못 채우면 원래 월급을 안 주는 거라고 했다나? 우습지만 의외로 간단한 문제이다.
"왜 이런 (쉬운) 문제를 가지고 여기까지 와요?"
하니 그는 싱겁게 웃으며 조그만 종이쪼가리를 내민다. 접은 종이를 펴보니 내 명함을 복사한 것이다. 내 이름이 적힌 이런 종이가 전라도 시골에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나쁜 짓도 못 하겠다.

나는 그의 고향 *우돈에 관해 몇 마디 나누다가
"그럼 가보세요. 우리가 연락해줄게."
하고 일어섰다. 그는 아쉬워서
"이게 다예요?"
하며 일어서지 못했다. 자기는 큰마음 먹고 전라도에서 죽으라고 달려왔는데 상담하는 데 불과 5분도 안 걸렸으니까. 싱겁지!
"예. 다예요."
사실은 이게 다가 아니고 프라낫이 돌아가고 난 뒤부터가 진짜다. 하지만 그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해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기에 정확한 설명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린 미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다만 확실히 아는 것 한 가지는 불독 센터가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 순박한 프라낫의 얼굴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지!

*우돈 : 태국 북동부 이싼 지방의 한 도시. 아주 가난한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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