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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김광현, 투수 최정'…무승부의 진정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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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김광현, 투수 최정'…무승부의 진정성을 묻는다

[프레시안 스포츠] '무승부는 곧 패배'…프로야구와 무승부 악령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명예와 부를 안겨 준 영화 록키1. 무명 복서 록키는 챔피언 아폴로와 경기를 펼친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으로 단 한 번도 뭔가를 이룬 게 없던 록키는 마지막 15라운드까지 챔피언과 예상을 뒤엎는 좋은 승부를 했다.

그는 승부가 결정 나기 전 여자 친구 애드리안을 계속 불렀다. 의미없는 경기가 될 것이라는 혹평에도 늘 힘이 돼 줬던 애드리안. 그녀는 "베토벤은 귀머거리였고, 헬렌 켈러도 장님이었다. 록키에게도 승산이 있다"며 희망을 잃지 않았었다.

비록 판정패를 당해 챔피언 벨트는 여전히 아폴로의 것이었지만 이 경기의 진짜 챔피언은 록키였다. 승패를 떠나 경기에 임하는 록키의 진정성 때문이었다.

패배와 승리를 넘나드는 무승부의 두 얼굴

무승부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때로는 비기고도 승리의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때로는 참혹한 패배 이상의 아픔을 가져다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한국은 2무 1패의 성적을 냈다. 첫 번째 무승부는 실질적으로 한국의 승리였다. 스페인에 0-2로 뒤지던 한국은 홍명보와 서정원의 골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조심스레 16강 진출 가능성을 점치던 한국에 볼리비아전 무승부는 재앙이었다. 숱한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너무나 아쉬워했고, 간판 골잡이 황선홍에게 비난의 화살이 빗발쳤다.

▲ SK 투수 김광현이 25일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연장 12회 초에 타자로 나와 헛스윙을 한 뒤 어색한 듯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져주기 논란' 과 무승부 규정

지난 주 프로야구는 무승부가 최대 이슈였다. SK 김성근 감독은 25일 광주 KIA전에서 해프닝을 연출했다.

연장 12회 초 투수 김광현을 타자로 기용했던 김 감독은 12회 말에는 내야수 최정을 투수로, 투수 윤길현을 1루수에 배치했다. 무사 2,3루 상황에서 SK는 1,2루간을 텅 비워 놓았다. 2루수를 2,3루간으로 옮겼기 때문.

이런 저런 이유로 SK 김성근 감독은 '져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현행 규정상 무승부가 패배와 똑같이 취급된다는 점이 '져주기 논란'의 배후였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올해부터 승률을 산정할 때 승수를 승패의 합이 경기수로 나누는 방식을 새로 도입해 무승부는 패배가 됐다.

더욱이 해프닝이 있기 전날인 24일 SK는 KIA와 4시간 50분의 경기를 펼치고도 3-3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SK는 이 무승부로 올 시즌 벌써 다섯 차례나 무승부 경기를 펼친 셈이었다.

김성근 감독만이 이 논란의 해답을 알고 있겠지만, SK는 아마 패배와 같은 무승부가 더욱 짜증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KBO는 지난 해 무승부가 없는 메이저리그식 '끝장 승부' 규정을 택했다. 하지만 각 구단 감독들은 이에 대한 부작용을 염려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장 18회 '1박 2일' 경기까지 나오자 선수가 충분하지 않은 국내 프로야구 여건상 '끝장 승부'를 치르기 힘들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었다.

2004년 무승부 풍년과 '무승부 시리즈'

각 구단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팬들이 싫어하는 무승부 경기를 줄이기 위해 KBO는 패배와 같은 무승부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올 시즌 지금까지 무승부 경기는 9경기. 역대 최다 무승부 기록(24경기)은 2004년에 수립됐다.

2004년에는 '경기 시작 뒤 4시간 후에는 새 이닝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무승부 촉진(?)' 규정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 시즌 무승부 경기는 많은 편이다.

올 시즌 '무승부 단골손님'들인 SK(5경기)와 KIA(4경기)의 기록도 2004년 롯데(11경기)에 의해 작성됐던 한 구단 시즌 무승부 기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04년 한국 시리즈의 별칭은 '무승부 시리즈'. 현대와 삼성은 세 차례나 피 말리는 무승부 경기를 경험했다. 삼성은 시리즈 4차전에서 배영수가 10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하고도 0-0 무승부로 기록을 인정받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경기가 끝난 뒤 당시 김응룡 삼성 감독은 홈 플레이트를 밟으며 "여길 못 밟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경기는 1점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던 명승부였다. 그래서 김응룡 감독도 "이런 야구도 즐겁지 않느냐"라며 여운을 남겼다.

진정성 있는 무승부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도 팬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무승부 경기다. 삼성 투수 박충식은 15이닝동안 무려 181구를 던졌다.

해태의 문희수, 선동렬, 송유석을 상대로 무승부 경기를 이끌어 낸 박충식은 이 경기의 승자였다. 체인지업으로 해태 강타선을 요리했던 박충식의 혼신을 다하는 투구는 경기가 끝날 때 까지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아마 다음 시즌에는 또 다시 무승부에 대한 규정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분명 무승부는 야구의 묘미를 반감시킨다. 하지만 1982년 이래 프로야구는 2008년을 제외하곤 무승부와 더불어 살았다. 무승부는 한국 프로야구의 문화다. 승부를 내기 위한 진지한 노력 끝에 나오는 무승부라는 대전제만 존재한다면. KBO가 깊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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