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 사태를 진정시킬 인물로 꼽힌 최고지도자 하메네이(69)는 지난 19일 "부정선거는 없었다"면서 아마디네자드(53) 현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전폭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 무효를 주장한 무사비(67) 후보 진영의 재선거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 이란의 시위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게다가 하메네이는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을 경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그는 "몇몇은 거리에서의 행동이 체제 변화를 가져올 정치적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전혀 아니다"라며 "시위가 계속될 경우 상응한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무사비 후보 "순교자가 될 준비 됐다"
이에 대해 무사비 후보는 20일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됐고, 그 길을 갈 것"이라면서 "내가 체포되면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을 벌여달라"고 지지자들에게 비장한 선언을 하며 맞섰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 통신은 하메네이가 강경한 입장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또다른 실력자 라프산자니와의 분열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 주목된다.
다음은 'Khamenei-Rafsanjani Split Limits Power to Stop Unrest'의 주요 내용(☞원문보기)이다. <편집자>
1989년 당시 가장 강력한 정치인이었던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을 지지했다. 이제 두 사람은 지난 12일 대선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 속에 대립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 하메네이는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라프산자니는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지지하고 있다.
아마디네자드와 무사비는 이란 신정 체제 하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표면적인 모습들이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의 시위가 벌어지면서 신정 체제의 존립이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신정 체제 30년만의 최대 위기"
이란 전문가 모하마드 레자 잘리리는 "이란의 파워 엘리트 내부의 분열로 인해 정부 당국이 단호하게 시위를 진압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면서 "신정 체제 30년만의 최대 위기가 닥쳤으며, 분열 양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이란 전문가 클리프 쿱찬은 "라프산자니는 무사비를 지지하면서 이번 시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기반을 확장하는 한편, 정부의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라프산자니는 매우 영향력이 있어, 이번 시위에 방패막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프산자니는 하마네이에 맞서 최고지도자를 축출할 권한을 가진 '전문가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이란 내부의 권력 투쟁이라는 배경 때문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번 시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은 이란의 내부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와이대의 이란 전문가 파리데 파르히는 "오바마 정부는 몇가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메네이 "서방세계가 이번 시위 지원"
지난 19일 하메네이는 권력 투쟁이라는 시각을 일축하면서 라프산자니의 공적을 추켜세우는 한편, 서방 세계가 이번 시위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국 더햄대의 이란 전문가 아누시 에테샤미는 "하메네이는 이번 사태를 외부의 음모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 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측근으로서 1989년 호메네이가 사망하고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승계한 그해 대통령에 취임해 최소 4년간 사실상 최고 실권자로 군림했다. 초기에는 하메네이의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1993년 이후 하메네이는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젊은 정치인들을 규합해 혁명수비대와 바스지 민병대, 기타 보안기관들 속에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구축했다. 라프산자니는 지난 2005년 대선에 다시 나섰으나 아마디네자드에게 패배했다.
하메네이-라프산자니, 노골적인 비난전 벌이기도
이번 대선에서 하메네이와 라프산자니는 직간접적으로 서로를 겨냥한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아마디네자드는 지난 3일 TV 토론에서 라프산자니가 무사비 후보의 유세를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그의 가족들이 부패에 연루돼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응해 라프산자니는 하메네이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아마디네자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공정 선거'를 촉구했다. 라프산자니와 무사비 진영에는 지난 1997~2005년 대통령을 역임한 모하메드 하타미(65)도 가담하고 있다.
카네기 재단의 이란 전문가 카림 사자드푸르는 "이란 혁명 엘리트 사이에 드러난 분열은 유례없는 수준"이라면서 "하메네이는 아마디네자드를 희생양으로 삼든, 스스로 물러나든 결정해야 할 처지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