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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한윤수의 '오랑캐꽃']<91>

요즘 국민연금에 관한 항의가 무척 많이 들어온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매달 월급에서 얼마씩 공제하여 국민연금을 불입하는데 그걸 일부 사장님들이 떼어먹는 것이다. 그야말로 치사한 횡령이다.

떼어먹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액수를 속이는 방법 : 가령 1만원만 내면 될 것을 회사에서 2만원이라고 속여서 차액만큼 떼어먹는다. 안 속을 것 같아도 외국인은 숫자에 약해서 잘 속는다. 그러나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숫자에 민감해서 그런지 잘 속지 않는 수가 있다. 그래서 횡령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2. 기간을 속이는 방법 : 24개월분을 공제하고 12개월분만 납입한다. 이것도 안 속을 것 같은데 실은 잘 속는다. 외국인의 경우 국민연금은 출국하고 나서 환급받기 때문에 출국 수속에 바빠서 확인하지 않고 가는 경우가 흔하다.
3. 아예 전액을 다 떼어먹는다 : 노동자에게서는 국민연금을 다 받아놓고 아예 가입 자체를 안하는 것이다. 이게 제일 악질인데 아이로니칼하게도 처벌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국민연금에다 *"좀 있다 낼 겁니다." 하면 되니까.

자, 그럼 사장님들이 떼어먹은 이 돈을 노동자들이 어떻게 받아내야 하나? 사실은 이게 진짜 문제다.

노동부 일부 감독관들은 국민연금에 관한한 손을 안 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노동부 일이 무척 바쁘고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공단에 맡기면 되니까. 그러나 노동부에서 손을 안 대주면 노동자들이 호소할 데를 몰라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귀찮아서 그 돈을 포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필리핀 노동자 하멜은 화성시 태안읍에서 일했는데 임금 2개월분 약 200만원과 국민연금 5개월치 미납분 39만 2천원을 받지 못했다. 진정서를 썼다. 우리 센터 상담실장이 하멜을 데리고 노동부에 출석하자 Y감독관이 말했다.

"체불임금은 우리가 처리하지만 국민연금은 우리가 처리 못합니다."
"왜요?"
S실장이 의아해 하자 Y감독관은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실장님 모르세요? 아시죠! 임금체불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고,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의 적용을 받잖아요. 국민연금은 감독관의 권한이 아니니까 임금체불 건만 처리하겠단 말입니다."

이 말이 정말 맞는다면 참으로 한심한 얘기다. 239만 2천원 중에서 200만원만 받아주고 39만 2천원은 못 받아주겠다는 얘기니까! 200만원이나 39만 2천원이나 똑같은 사장님이 똑같은 노동자의 똑같은 월급에서 떼어먹고 안 준 돈인데!

만일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의 문제를 두 군데에 진정하고 출석해야 한다면 하멜의 *몸을 반으로 쪼개서 오른쪽 반은 노동부에 출석하고 왼쪽 반은 국민연금에 출석해야 하나? 아니면 손오공처럼 머리털을 뽑아서 훅 불어가지고 몇 명을 더 만들어 여기 보내고 저기 보내고 하랴?

몸을 쪼개면 죽으니까 아무래도 후자의 방법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후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천년 묵은 원숭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원숭이 말고 인간으로서의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솔직히 얘기하자.
외국인 노동자들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일괄 처리해주길 진정으로 바란다.
횡령사건을 왜 못 처리하는가?
감독관은 *사법경찰관 아닌가!

*좀 있다 낼 겁니다 : 사업주들이 노동부는 어려워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법적으로 강제력이 있는 기관이 아니니까. 따라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돈을 받고 가입을 안했다 하더라도 연금공단에서 딱히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몸을 반으로 쪼개서 : 임금체불에, 국민연금에, 건강보험료까지 때어먹은 회사라면(의외로 이런 회사가 많다) 노동자는 몸을 세 개로 쪼개서, 하나는 노동부에, 또 하나는 국민연금공단에, 마지막 하나는 건강보험공단에 보내야 할 것이다.

*사법경찰관 :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특별 사법경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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