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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對 이란 '악의 축' 더비, 이번엔 '대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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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對 이란 '악의 축' 더비, 이번엔 '대리전'이다

[프레시안 스포츠] 사우디와 한국 두 親美국가에 달려

프레시안에서 스포츠를 담당했던 이종성 기자가 '프레시안 스포츠'를 다시 시작합니다. 현재 영국에서 남북 축구교류사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종성 기자는 스포츠 전반의 이야기들, 특히 축구와 국제정치에 얽힌 다양한 얘깃거리들을 열흘 간격으로 풀어 놓을 예정입니다. <편집자>

2005년 3월 30일 평양 김일성경기장.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 도중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주심은 페널티 킥을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이에 항의를 하던 북한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내밀었고, 이에 격분한 북한 팬들은 물병 등을 그라운드에 던졌다.

내심 북한 원정경기가 껄끄러웠던 일본은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그들은 안전문제를 들어 FIFA(국제축구연맹)에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축구협회는 북한 언론이 1966년 월드컵 8강전에서 심판의 불리한 판정 때문에 북한이 패했다는 보도까지 들춰내며 FIFA를 자극했다.

결국 북한은 일본과의 홈경기를 제3국인 태국 방콕에서 관중 없이 치러야 했다. 북한과 이란의 이른바 '악의 축' 더비는 이런 우여곡절 속에서 시작됐다.

▲ 2005년 3월 30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3차전 북한-이란전에서 북한의 남성철(오른쪽에서 두번째)이 팀 동료들과 함께 시리아 국적 모하메드 쿠사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양 난동'의 역설

일반적으로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말썽꾸러기라는 북한의 좋지 못한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했던 것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역설적이지만 이 사건은 서구사회에 '북한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이미지도 줬다.

특히 북한 사람들을 독재자의 버튼 조작으로 움직이는 사이보그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 난동 사건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국제 정치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지만 축구엔 지대한 관심을 갖는 유럽의 보통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4년 뒤, '악의 축' 더비는 또다시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파장의 진원이 이란이었다.

감독 알리 다이에와 스타 알리 카리미의 불화 등의 내홍을 겪은 이란은 결국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새 단장을 한 이란은 지난 6일 북한과의 경기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0-0 무승부. 이란 축구 팬들은 흥분했다.

축구는 목전에 대선을 앞두고 있던 이란 정치에도 영향을 줬다. 온건파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들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추진해 온 대외 강경책의 무리수를 축구대표팀의 무기력증과 연결시켰다.

北의 44년 숙원은 한국-이란 경기에 따라 갈릴 듯

북한과 이란은 월드컵 예선 최종전만을 남겨 놓고 있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남아공 월드컵 진출 여부가 결정된다. 17일 이란은 한국과 원정경기를 펼치며, 같은 날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정경기를 하게 된다. 북한이 사우디를 이기면 북한은 무조건 월드컵에 직행한다. 하지만 원정이라는 점에서 북한은 힘겨운 승부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북한의 월드컵 진출 여부는 한국과 이란의 경기 결과가 결정한다.

이란의 지휘봉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호의 전력분석관으로 활약했던 이란계 미국인 압신 고트비가 잡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습성을 꿰뚫고 있는 고트비의 작전이 이란 선수들의 보디랭귀지로 승화된다면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특히 이미 월드컵 티켓을 확보한 한국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을 경우 그들의 희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 북한이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44년 숙원을 풀지, 이란이 본선에 진출할지를 가를 17일 결전에서 이란은 한국과,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붙는다. 이란과 북한의 '악의 축' 더비가 이번에는 '대리전'으로 치러진다. 북한은 한국의 승리를, 이란은 사우디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 압신 고트비 이란 대표팀 감독이 14일 경기도 파주NFC에서 열린 훈련에서 선수들에게 훈련 지시를 하고 있다.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나라 미국의 시민권을 가진 이란계 미국인 고트비가 조국을 위해 한때 전력분석관을 맡았던 한국팀을 격파해야 하는 것도 흥미롭다. ⓒ연합뉴스

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조에 의해 무럭무럭 큰 이란의 축구를 금지시키려 했다. 축구를 서구문물의 사생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메이니는 축구 금지 조치를 포기했다. 그는 역풍이 두려웠다. 잘라내기 힘들 정도로 이란엔 너무 뿌리 깊게 축구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증거다.

변화를 꿈꿨지만 참혹한 대선 결과 앞에 불만이 더욱 커진 이란 국민들이나 재선에 성공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 이란과 한국과의 경기가 어떤 의미를 줄지 궁금한 대목이기도 하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규탄 군중대회가 열렸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는 구호와 함께. 북한 축구는 66년 월드컵 이후 국제무대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릴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북한 축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비롭다.

비록 이란의 청년들과 같이 정치와 축구를 동일선상에서 비판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북한에서 찾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북한의 44년 만의 월드컵 진출은 절실하다. 적어도 정상적이고 쉬운 방법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세계에 전달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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