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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

[한윤수의 '오랑캐꽃']<89>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일 서러운 것은 몸이 아플 때다. 하지만 그들은 아파도 대부분 평일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건소나 병원에 갈 수 없다. 또한 노동자가 쉬는 휴일에는 또 보건소나 병원이 쉬기 때문에 진찰을 받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이래저래 병은 깊어가게 마련이다.

평일에는 일하느라 병원에 못가고! 휴일에는 병원이 쉬어서 못가고!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휴일에 진료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의사가 휴일에 쉬지 않고 진료해주겠는가?

'국경없는 의사회'란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체가 있다. 후진국이건 오지이건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쫓아가서 진료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 '국경없는 의사'들이 멀리 갈 것도 없이 화성에 와서 진료해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냐하면 화성에는 후진국 사람들이 3만명 이상이나 와있는 데다가, 오지이고, 아픈 사람이 무지하게 많기 때문이다. 일부러 돈 내버리고 비행기표 사가지고 국경 너머 아픈 사람 찾아다닐 필요가 뭐 있는가? 여기 화성에 오면 나라별로 구색을 맞춰 아픈 사람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그러나 화성에는 '국경없는 의사회'는커녕 대형 교회에서 선교 차원에서 파견하는 이동진료팀도 오지 않으며, 심지어는 대학생 의료팀도 오지 않는다. 나는 아는 사람을 통하여 몇몇 대형교회에 진료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답변조차 없었고 그나마 연락이 온 교회도 면피용 회답을 보냈을 뿐이다.

"화성에도 꼭 가고 싶지만 기왕에 봉사하는 데가 있어서 저흰 좀 곤란한데요."
아마 그들은 교통이 좋고 접근하기 쉬운 지역에서 봉사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안산만 해도 봉사 오는 교회 의료팀이 많으니까.
참고로, 안산에 있고 화성(발안)에 없는 것은? 답 : 전철!

좌우지간 화성에는 아무도 안 온다. 그래도 한번 Y대 의대생이 전화를 해와서 몹시 흥분한 적이 있다.

"저희 학교는 성남에 있는 성당에서 의료 봉사를 했는데, 거기 성당 증축을 해서 마땅히 진료 볼 장소가 현재 없어요. 그래서 좀 쉴까 아니면 다른 데서 진료할까 생각 중이에요. 하지만 여기저기 봉사해달라는 지역이 많으니까 꼭 화성에 간다고 믿지는 마시구요. 저희도 상의를 해봐야 하니까요. 하여간 되든 안 되든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그 전화를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은 오지 않았다. 믿지 말라는 얘기는 왜 그리 잘 맞는지!

오지도 않는 진료팀 올 거라고 공상하며 마냥 기다리면 안될 것 같아서 방침을 바꿨다. 구체적인 이 세상 사물에다 확실하게 각인을 하고 매일 보고 빌면 낫지 않을까? 그래서 센터 칠판, 하단 중앙에 붉은 글씨로 <의료천사 4교회>라고 써넣었다.

醫療天使 4敎會 !

왜 4교회냐 하면, 한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진료를 와도 우린 매주 진료를 받게 되니까. 거지 자루 크다고 자루대로 다 주는 건 아니지만, 그건 참으로 야심찬 포부였다.
그리고 빌며 1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결국 주홍 글씨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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