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잡혔어요. 출입국 보호소에 있는데 어떡하지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떡하긴? 그냥 인도네시아 가야지."
"월급 못 받은 게 있거든요."
"걱정 말아요. 출입국에서 받아줄 테니까."
"출입국에서도 돈 받아줘요?"
"그럼요. 잘 받아줘요. 출입국은 법무부 소속인데, 사장님들이 법무부를 무서워하거든."
출입국에도 체불임금 받아주는 시스템이 있고 당시만 해도 그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어쨌든 나는 그 시스템을 믿고 큰 소리를 팡팡 친 것인데 내 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다음날 그는 희색이 만면하여 나타났으니까.
"출입국에서 돈 다 받아주었대요."
"그것 보라니까."
아내가 돈을 받은 데 고무되어 그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보호소에 잡혀갈까봐요. 돈 못 받은 게 상당히 많거든요."
나 역시 그만큼은 엉뚱한 사람이라 한껏 격려해주었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무조건 잡혀!"
그러나 이튿날 그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다시 왔다.
"보호소에 가서 나 불법체류자라고 했는데도 웃기만 하고 안 잡아요!"
"왜 안 잡을까?"
"비행기표 있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있다고 했더니 그냥 비행기 타고 가래요."
"아, 아깝다. 잡혀야 되는 건데."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하여간 그 시절엔 돈 받고 싶으면 출입국에 잡히는 게 장땡이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요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출입국에서 체불임금을 잘 받아주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실례를 들어보자.
태국 여성 수다랏과 남편 위차이는 회사 근처의 가게에 식료품을 사러 나갔다가 출입국 단속반에 붙잡혔다. 출입국 직원은 남편을 차에 태웠지만 이상하게도 수다랏은 풀어주었다.
"빨리 가!"
그 공무원은 부부를 다 잡아가는 것을 잔인한 짓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수다랏은 좋은 사람 만난 것이었다. 그녀는 그 길로 도망쳐 센터에 왔다.
그녀는 무엇보다 남편이 돈 못 받고 갈까봐 걱정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나는 그녀를 일단 안심시켰다.
"걱정 말아요. 출입국에서도 돈 받아 주니까."
▲ ⓒ한윤수 |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위차이는 5백만원 정도나 되는 밀린 임금을 한 푼도 못 받고 그냥 태국으로 추방되었다. 출입국의 돈 받아주는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았나? 아니면 받아주는 시늉만 낸 것인가?
덕분에 나는 한국에 없는 사람 돈을 받아주기 위하여 무척 고생했다. 위임장 등 서류 일체를 태국에 보내 위차이의 서명을 받아오고 그걸 가지고 노동부에 진정하고 회사와 접촉하여 씨름하고. 하여간 석 달이 걸려서 두 부부의 체불임금 1028만원을 확정하고 *지급 약속을 받아내긴 했다. 하지만 출입국에서 받아주었으면 얼마나 간단하고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는 쉽게 받을 수 있는 돈이었는데!
내가 보기에 출입국의 돈 받아주는 시스템이 현재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왜 그럴까?
혹시 너무 많은 불법체류자를 한꺼번에 잡아놓고는 그들의 문제를 미처 다 처리해주기 전에 내보내는 것은 아닐까? 수용시설은 한계가 있고 잡혀오는 사람은 많다 보면 내보내기에 급급할 수도 있지 않은가!
또 하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아무래도 체불임금 받아주는 일은 노동부의 전문분야인데 혹시 노동부의 협조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내 얘기는 사실 근거가 있다. 수원 노동부의 경우 작년만 해도 근로감독관들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일주일에 3번 정도 출장 조사를 나갔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단 한 명의 근로감독관이 일주일에 딱 1번만 나가고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보호소에!
이래 가지고야 어떻게 보호소에 수용된 그 수많은 외국인의 체불임금을 받아줄 수 있나? 만일 이대로 임금을 못 받은 외국인들을 대량으로 방치해 내보낸다면 국가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적으로도 한국에 적대적인 다국적 인간 집단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건 국가적으로 심각한 손실이요 수치다.
내가 보기에 법무부와 노동부 사이에 큰 구멍이 나있는 것 같다. 이 구멍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지불해야 할 체불 임금이 악덕 기업주 쪽으로 새어나가고 있으며, 동시에 국가의 명예와 위신까지 술술 새어나가고 있다. 이 구멍을 어찌 메울 것인가? 구멍은 노동부와 법무부의 경계선 양쪽에 맞물려 있고 두 부처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부처 간에 니 책임이니 내 책임이니 따질 일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대승적으로 크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에 감히 제안한다.
첫째, 노동부에서 법무부 산하 외국인보호소에 출장 조사 나가는 근로감독관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노동부에 제 발로 찾아오는 외국인만 상대해서는 안된다. 외국인보호소까지 <찾아가는 서비스>가 필요하고 규모가 큰 보호소에는 반드시 근로감독관을 상주시켜야 한다.
둘째, 출입국에서는 체불 임금이 확정되기 전에 노동자를 내보내는 성급한 조치를 삼가야 한다. 그래야 악덕 기업주들의 횡령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의 명예도 지킬 수 있다,
셋째, 아무리 불법체류자라도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는 거니까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를 소중히 생각해주기 바란다. 옛날에 우리가 미국에 가서 불법체류자라고 괄시받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급 약속 : 내가 회사로부터 지급 약속을 받아내는 3개월 사이, 회사의 재정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어 현재 그 회사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사장님 말로는 재산을 매각하여 임금을 주겠다는 것인데 다 받아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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