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노홍철 씨가 정말 부럽다. 2년 동안 정성을 들여 구애한 결과, 웬만한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은 트로트 퀸 장윤정 씨의 마음을 열지 않았는가!
나 역시 노홍철 씨와 비슷하게, 웬만큼만 잘해주면 마음을 열 것 같은 태국인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하여 지난 2년 동안 피눈물 나게 정성을 들였다. 돈을 받아주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가르치고 달래고 때로는 혼내기도 하면서. 그러나 태국인들은 마음을 열기는커녕 도무지 반응이 없다.
태국인의 리더격인 댕이 한 노동자를 데려왔다. 그는 2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고 귀국할 예정인 불법체류자로 퇴직금을 못 받았단다.
불법체류자가 퇴직금을 받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그 회사에서 일했다는 확실한 증거. 증거가 없으면 악덕 기업주들은
"그런 사람 몰라요. 우리 회사에서 일한 적 없어요."
하고 잡아떼기 일쑤이니까.
두 번째로 필요한 게 약간의 시간이다. 최소한 노동부에 한번 출석하고 가야 돈을 확실히 받으므로 노동부 출석까지 소요되는 14일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한다.
먼저 그 회사에서 일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급여명세서 있어요?"
"아뇨, 찢어 버렸어요."
"언제요?"
"어제요."
"왜 찢었어요."
"몰라요."
태국 사람들, 몰라요! 하는데 내가 미칠 지경이다.
"그럼 찢은 거 기숙사 쓰레기통에 있겠네요? 테이프로 붙여도 되니까."
"아뇨. 쓰레기차가 실어갔어요."
"아, 그거 버리면 안 되는데. 그건 돈이나 마찬가진데."
너무나 한심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지푸라기라도 건지려는 심정으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좋아요. 그럼 언제 갈 건데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오늘요."
기가 막히다. 오늘 가는 사람이 오늘 와서 퇴직금을 받아달라니!
"며칠 있다 가면 안되요?"
하지만 그는 단호히 대답했다.
"안됩니다. 오늘 꼭 가야 해요."
"왜요?"
"저 대학생인데. 내일 개강하거든요."
참 편리하다. 자기는 할 짓 다하면서, 최소한의 희생과 양보도 안하고 돈을 받아달라니!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태국에 가면
"왜 내 돈 안 받아줘요?"
하고 뻔질나게 전화를 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잘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가면 돈 못 받아요. 괜찮아요?
그는 떨떠름하게 내 눈을 쳐다보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래도 그는 이미 우리 센터의 위임장에 싸인하고 도장을 찍었기 때문에 혹시 돈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절대로 안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미련을 버리라고 평소엔 안 하던 독한 말을 한 것이다.
"이 서류 찢어도 되죠?"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없지.
그가 보는 앞에서 서류를 찢으면서 내 자신이, 상대에 차이기 전에 먼저 차는 못난 애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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