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노동자 티우는 내일까지만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사 담당 P과장은 티우를 불러 말했다.
"티우, 너 오늘 일 없어. 끝났다구. 가!"
하기야 어제 저녁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티우 혼자만 잔업을 안 시켰으니까.
티우는 버텼다.
"나 내일까지 일할래요. 퇴직금 타야 하니까."
하지만 P과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소용없어. 고용지원센터에다 얘기해서 오늘 이미 퇴사 처리했으니까."
단 하루 차이로 퇴직금을 못 받게 생긴 티우는 우리 센터로 찾아왔다.
퇴직금 타기 하루나 이틀 전에 노동자를 내보내는 이런 해괴한 일이 왜 매번 되풀이되나?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그래 이거 하나 해결할 방법이 없나?
사실 해결할 마음만 있다면 왜 방법이 없겠나? 사람이 하는 일인데!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방법을 알고 있고, 그걸 써줄 것을 강력히 건의한 적도 있다. 증거를 대겠다.
우리 속담에 <점심밥 싸가지고 말리러 다닌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종이에 써가지고 건의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그날은 2008년 9월 24일이었고 장소는 S고용지원센터였다. *S지청장 주재로 '외국인근로자 지원 유관기관 간담회'가 열린 것은!
나는 늘 그렇듯이 회의가 끝날 무렵인 오전 11시 40분경 *미리 준비해간 유인물을 나눠주고 3가지 사항을 건의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내용이다.
"계약기간 만료 직전에 고용 해지할 경우 (고용지원센터에서) 근로자의 의사를 확인할 것"
하지만 이렇게 건의하면 뭐하나? 전혀 고쳐지지 않는 것을! 마치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다.
각설하고,
티우의 현실로 돌아와서, S고용지원센터 외국인력팀에 전화했다.
"내일까지 일하면 퇴직금 받는데, 오늘 퇴사 신고를 받아주면 어떡합니까?"
불행 중 다행이다. 젊지만 샤프한 U선생이 전화를 받은 것은. 하지만 그의 대답은 실망스럽게도 판에 박은 것이었다.
"(사업주가) 신고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주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얘기인가요?"
"근로자는 연락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근로자한테 확인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요. 통역을 통하든지, 아니면 사업주에게 근로자를 데리고 오라고 해도 되고."
"공무원 한 사람이 하루에 백 건 이상을 처리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확인을 합니까?"
"그래도 확인해야죠. 그리고 백 건을 꼭 오늘 다 처리해야 하나요? 다 못하더라도 정확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더 이상 입씨름 해봤자 입만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고, 티우가 처한 현재 상황을 확인해줄 것을 부탁했다.
"외국인등록번호 730601- 0000000 베트남 근로자 조안 반 티우, 퇴사 처리 되었나 봐주세요."
"어? 아직 퇴사처리 안되었네요."
"다행이네요."
"아, 지금 팩스 들어옵니다. 근로자 스스로 이직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요."
"무슨 소리 하십니까? 지금 근로자가 여기 와 있는데. 퇴직금 받으려고 내일까지 일하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당장 퇴사 처리 하지 않고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처리할지 내부 회의를 해봐야겠네요."
간발의 차이로 퇴사 처리는 면했다고 생각하며 나는 안도했다.
그러나 티우는 그날로 퇴사처리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업주는 자신의 신고를 밀어부쳤고 고용지원센터에서는 사업주의 신고를 그대로 받아준 것이다. 다만 이면으로는 사업주가 약속한 모양이다. 퇴직금 대신에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퇴직금이나 해고예고수당이나 액수는 비슷하기 때문에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고용지원센터의 일처리 방식에 불만이다.
왜 근본대책을 안 세우나?
근로자의 의사를 확인하면 되는 것을!
*S지청장 주재로 : 그날 회의는 원래 S지청장이 주재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날 마침 공교롭게도 경인지방노동청장의 이임식이 인천에서 있었으므로 지청장은 거기 참석하느라고 불참하고 대신에 고용지원센터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미리 준비해간 유인물 : 어디 가나 종이에 인쇄해 가지고 건의하러 다니는 극성맞은 사람은 나밖에 없으므로 참석자들은 그날의 풍경과 내가 안겨준 A4 용지 두 장짜리 건의서를 기억할 것이다. 그날 건의한 다른 두 가지 사항은 첫째, 3번의 직장이동 기회를 다 쓴 근로자가 회사 잘못으로 재고용이 안될 경우 한 번의 직장이동 기회를 더 줄 것. 둘째, 행정지도 강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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