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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없는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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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없는 오토바이

[한윤수의 '오랑캐꽃']<83>

내가 외국인노동자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고 하면 아주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오토바이나 훔쳐가는 나쁜 놈들을 뭐하러 도와줘요?"
그들에게 외국인 노동자는 <오토바이나 훔쳐가는 나쁜 놈>들이다.

그들이 오토바이나 훔쳐가는 나쁜 놈들은 분명 아니지만 이런 악성 루머가 나돌 정도로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오토바이 좋아하기로는 베트남 따라갈 나라가 없다. 마치 애마(愛馬)처럼 좋아한다. 하지만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도 이에 못지않게 무지하게 좋아한다. 오토바이는 기름 적게 들고 마음 먹은 대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동남아에 딱 맞는 탈것이다.

앞바퀴 없는 오토바이가 먼지를 뽀얗게 쓴 채 길가에 방치되어 있었다. 태국 노동자 사난은 저건 틀림없이 임자 없는 오토바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앞바퀴도 없고 가져가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는 설마 가져가도 괜찮겠지 하고 오토바이를 끌고 갔다. 설마가 사람 잡는 줄도 모르고! 그는 오토바이 센터에 부탁해서 바퀴를 달고 자가용으로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 난리가 났다. 오후 8시경 술 한 잔을 걸치고 파출소 앞을 지나치다가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것이다. 혈중 알콜 농도 0.117

0.1 이상이면 면허 취소에 해당하지만 취소할 면허가 아예 없는 걸! 그는 파출소에 끌려가 진술서를 쓰고 빨간 딱지를 받았다. 죄목은 무면허에 음주운전! 설상가상으로 절도죄가 추가될지도 몰랐다. 차대 번호를 조회해보니 도난 오토바이로 확인되었으니까

사난은 걱정으로 얼굴이 새카매져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무엇보다 태국으로 쫓겨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 태국 가기 싫어요."
나는 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파출소에 전화했다. 그러나 사건은 이미 파출소 손을 떠나 경찰서 형사과로 넘어가 있었다.
파출소에서 하는 이야기는 통상적인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었다.
무면허로는 벌금이 50만원 정도가 나오고 음주운전은 100에서 200 정도가 나온다니 벌금만 해도 150에서 250 정도가 나오게 생겼다. 한 달 내지 두 달 월급이 날아갈 게 뻔하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국외 추방이다. 금고 이상의 처벌을 받으면 추방되니까. 제발 절도죄로 처벌 받으면 안되는데.

경찰서 형사과에 전화했으나 거기서도 간단한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검찰로 송치할 거구요. 재판해봐야 아니까 결과는 아직 모르죠. 아마 검찰에서 피의자 주소지로 통보가 갈 겁니다."
"아, 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그 형사가 마지막 한 말이었다.
"절도죄는 크게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오토바이 도난사건은 오토바이를 돌려주기만 하면 요즘 대개 무혐의로 처리되니까요. 내국인이나 외국인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현재로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그 형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발안에도 그런 사건이 많았으니까.
몇 년 전 경기가 좋을 때 발안에는 다방이 무척 많았고 따라서 커피를 배달하는 아가씨와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작은 오토바이가 골목마다 즐비했다. 그런데 이 오토바이가 매일 몇 대씩 사라졌다. 당시는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오지가 많았는데 이 오지에 사는 학생들이 걸어가기 싫으니까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가버리는 것이다.
경찰은 범인이 장난끼 많은 학생이라 절도죄로 기소하기도 어려워서 오토바이를 찾기만 하면 대개 무혐의로 처리하곤 했다. 대신에 벌로 학교애서 변소 청소를 시키거나 파출소 앞에서 쓰레기를 줍게 했지만!

하지만 사난은 내국인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니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바퀴 없는 오토바이 때문에 사난이 죽을까 아니면 살까?
막연히 살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름이 <죽난>이 아니라 <사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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