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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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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의 눈물

[한윤수의 '오랑캐꽃']<81>

누가 이 사람을 태국인이라고 할까? 꼭 60년대 한국의 시골 미인처럼 생긴 태국 여성이 찾아왔다. 뺨이 연지를 바른 듯 연분홍빛으로 고운 데다가 얼굴이 갸름한 고전적 미인형으로 이름이 타라다.

태국 친구 다섯 명과 함께 같은 회사에 배치된 그녀는 입국한 지 6개월이 되었지만 월급을 3번 밖에 못 받았다.
임금을 상습 체불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어려움을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집에 돈을 부쳤다 못 부쳤다 하니까 엄마가 미치겠대요."
"돈 달라고 얘기해 보았어요?"
"예, 아무도 얘기 안 해서 제가 대표로 사장님한테 가서 얘기했어요."
"그래 사장님이 뭐래요?"
"태국으로 보내버린대요. 저만!"
나는 처음에 햇병아리인 그녀가 태국 사람들 전면에 나서 너무 튄다고 생각했다.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지, 뭐하러 나서서 찍히냐구?
그래서 짜증 섞인 말로 충고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서면 안되요. 제발 좀 뒤로 물러나 있어요."
"월급 안 주는데 어떻게 물러나 있어요?"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벽창호처럼 말이 안 통하는데다가 저러다 필경 혼자 다치지 싶어서 나는 야단을 쳤다.
"태국 사람 아무도 안 나서는데 왜 혼자만 나서요? 다른 사람들은 타라 뒤에 잘도 숨어 있는데. 나서지 말아요. 알았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말문을 닫았다.

나는 타라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장님과 통화했다. 사장님은 타라에 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월급 못 준 건 사실이지만요, 이 달 안에 다 줄 겁니다. 현재 자금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요. 근데요, 목사님도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게 있어요, 타라 걔가 남자 친구가 생겨서 바람이 들어가지고 근무 태도가 아주 안 좋아졌어요. 처음엔 안 그랬는데. 저도 그게 걱정이랍니다."

나는 사장님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타라가 회사로 복귀해도 별 일 없을 것 같아서 다잡듯이 말했다.
"당장 회사로 돌아가서 일해요."
그러자 타라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 회사 가면 안 되요. 사장님이 태국으로 보내버린다고 했어요."

나는 순간 깨달았다. 사장님은 진짜로 타라를 태국으로 보내려고 벼르고 있으며 그녀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사람을 보호하려면 노동부에 문제를 빨리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타라를 달랜 후 임금 체불에 관한 진정서를 써서 노동부에 접수시켰다. 그리고 난 후 타라를 회사로 돌려보냈다. 타라는 나와 약속했다. 노동부 출석날까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일하기로.

나는 노동부에 출석하는 날까지 타라가 회사에서 무척 시달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가끔 타라에게 전화해보면 다행히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 더구나 회사측에선 우리 센터에 아무 연락도 취해오지 않았다.

노동부에 출석하는 날 우리 센터에서 T주임이 타라를 데리고 갔다. 사장님은 법에 밝은 분이었다.
"그 동안 밀린 임금 한 달치를 주었구요. 나머지 두 달치도 모레까지 줄 겁니다. 어때요? 감독관님, 이래도 문제가 됩니까?"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는데요."
감독관은 사장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T주임을 보고 다시 말했다.
"이 사람 직장 이동 안되요."
사장님은 석 달 이상 임금이 체불되어야 직권으로 직장이동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었다.
T주임은 당황해서 나에게 전화했다.
"목사님, 임금 체불 두 달 이하라 직장 이동 안 된다는데요."
나 역시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얼마 전까지 고용지원센터 외국인력팀장을 지낸 S 씨에게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그의 현장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역시 그는 나를 살려주는 발언을 했다.
"목사님, 그 규정 바뀌었어요. 한 달 이상 체불하면 직장 이동 됩니다."
나는 T주임에게 타라를 데리고 고용지원센터로 가서 아는 공무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직권 이동은 고용지원센터에서 해주니까.

T주임은 고용지원센터에 가서야 체불임금에 관한 아무런 확인서도 노동부에서 갖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야 그것은 감독관의 실수이기도 했다. 임금체불에 관해서 3자간에 서로 말만 무성하게 왔다 갔다 했지, 감독관이 문서로 작성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종이 한 장만 있어도 당장 직장 이동을 할 수 있는데, 그 종이 한 장이 없어서 비난이 쏟아질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니!
T주임이 왜 문서로 확정해주지 않았느냐고 감독관에게 항의하자, 당황한 감독관은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다시 출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때쯤에는 사장님도 지쳐 있었다.
"좋습니다. 제가 그냥 타라 보내줄게요."

그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타라는 현재 다른 직장으로 옮겨 평화롭게 일하고 있다.
다 눈물 한 번 잘 흘린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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