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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의 눈

[한윤수의 '오랑캐꽃']<80>

캄보디아 사람들 중에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싸우는 <투사형> 노동자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투사들에게 틈만 나면 경고나 주의를 준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초 얘기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밖에 안 되어 아직 수습 딱지도 떼지 않은 캄보디아인 다섯 명이 찾아왔다. 속행이란 노동자가 그들 중에서 우두머리 격이고 나머지는 자기 의견은 별로 없고 우두머리가 분개하면 같이 따라서 분개하는 대세추종자라고나 할까.

속행이 분해 죽겠다는 투로 얘기했다.
"월급을 조금 줘요."
급여명세서를 살펴보니 최저 임금 이하로 주고 있다.
"그렇네요. 잘못되었네요."
속행은 일행을 둘러보며 그것 보라는 듯이 말했다.
"사장님한테 따져야 돼."
나는 그를 말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지금 얘기하면 안 좋아요. 나중에 회사 그만두고 얘기해도 안 늦어요! 그때 틀림없이 받아줄 테니까."
"왜 지금 얘기하면 안되요?"
"사장님이 화내요."
"우린 겁쟁이 아네요. 화내도 얘기해야지요!"
"미움 받아도?"
"예. 미움 받아도 참아야지요"
"못 참으면."
"회사 나오면 되지요."
"니와요? 수습기간에 짤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몰라요."
"불평분자로 몰려서 캄보디아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좋아요?"
"......"
그제서야 속행의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나는 누누이 설명했다. 용감한 게 다가 아니라고! 한국에서 살려면 좀 더 현명한 게 필요하다고! 그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속행은 끝끝내 견디지 못하고 몇 달 후에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다른 회사로 옮겼다. 그리고 그 다른 회사에서도 얼마 오래 있지 못하고 또 한 번 회사를 옮겼다. 아직도 한국에서 일할 날짜가 주구장창 남아있는데 이제 직장 이동할 기회는 단 한번 밖에 없다. 하지만 투사 치고 이 정도면 형편이 좋은 축에 속한다.

챙글리도 캄보디아 사람으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같은 투사 유형에 속한다. 그는 전에 근무했던 회사를 상대로 수원법원에서 소송 중이라 우리 센터에서 항상 소재지 파악을 해야 하는 소위 특별관리 대상이다.

그런 그가 한 동안 연락이 안되어 걱정했는데 느닷없이 경상남도 어느 바닷가의 미술관의 실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화성센터죠? 거기 혹시 챙글리 안 갔나요?"
K주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웬 미술관? 그의 체류자격은 *E-9-2 였으니까.
"안 왔는데요."
"이상하네. 챙글리가 어제 나가서 아직까지 *행방불명이거든요. 가불해간 돈도 좀 있는데."
K주임이 다시 물었다.
"챙글리가 거기 미술관에서 일하나보죠?"
"예. 여기서 개관 준비하는 걸 돕고 있어요. 시간 나면 나랑 같이 낚시도 다니고."
순진한 K주임이 곧이곧대로의 소견을 토해냈다.
"어? 미술관 안 되는데. 챙글리는 공장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미술관 사람은 반신반의했다.
"미술관 안되요?"
"예. 한번 *노동부에 문의해보세요. 미술관 되는지 안되는지,"

나는 뭔가 짚이는 게 있어 K주임에게 얼른 전화를 끊으라고 손짓했다.
"챙글리가 미술관에 간 건, 갈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그 동안에 3번의 찬스를 다 쓴 거 아녀? 한번 확인해봐요."
고용지원센터에 확인해보니 과연 챙글리는 3번의 직장 이동 기회를 모조리 탕진하고 4번째 회사에서도 나와 지금은 불법체류자 신세였다.
그래서 그는 수시로 단속이 행해지는 공장지대에 불법체류자로 취직할 생각을 포기하고, 불법체류자 단속이 없는 안전한 시골 미술관에 박혀 한국에서의 여생을 보내는 중이었다.
메기가 눈은 작아도 저 먹을 것은 알아본다더니, 챙글리도 저 먹을 곳은 잘 알아본 셈이다.

*E-9-2 : 이 비자를 가진 사람은 제조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다.

*행방불명 : 챙글리는 다음날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애인이 놀러 와서 바래다주고 왔다나?

*노동부에 문의 : 미술관 측에서는 노동부에 문의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문의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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