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 일거리가 없어서 며칠 놀다가 오래간만에 일감이 들어왔다. 회사는 아연 활기를 띄고 직원들은 물론 사장님 가족들까지 모두가 매달려서 일했다. 그러나 저녁 8시 반이 되자 누남이
"체력이 딸려서 더는 못하겠어요."
하며 뒤로 자빠졌다.
화가 난 사장님은 누남을 식당으로 붙러서
"모처럼 야근하는 건데, 너 너무하는 거 아니냐? 두 시간만 더 해!"
하고 윽박질렀다.
"나도 피곤해요. 더는 못해요,"
누남이 거부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버리자 사장님은 흥분해서 막대기를 들고 쫓아 들어갔다. 아마 막대기를 휘둘렀으면 누남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사장님은 막대기로 누남의 옆구리를 찔렀다. 마치 로마 병정이 예수님 옆구리 찌르듯. 찌르기만 했어도 갈비뼈에서 피가 났다.
피를 본 누남이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그러나 경찰은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 듣고는 폭행을 문제 삼기보다 서로 화해할 것을 종용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마지못해 사장님이
"미안하다."
고 사과하고
"치료비는 내가 다 대겠다."
고 말했다.
누남은 경찰의 태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 온 것이다.
누남이 야근을 거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옛날에는 베트남 노동자 4 명이 금형기계 2 대를 돌렸다. 그러나 불황이 깊어지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자 노동자 1 명을 내보냈다. 따라서 이제는 노동자 3 명이 기계 2 대를 돌려야 하기에 그만큼 더 힘이 들게 된 것이다. 3 명이 2 대를 돌린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더구나 회사는 주야간 연속으로 20시간 이상 일해서 더 이상 일할 기운이 없는 노동자에게 다음날 계속 일하라고 명령한 적이 있고 노동자가 이를 거부하자 그를 결근 처리한 적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노동자들은 감정이 상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누남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었다. 2주 진단이 나왔다. 병명은 1. 상세불명의 좌측 가슴의 손상 2. 가슴의 타박상
누남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했다. 그저 직장 이동만 원할 뿐!
▲ ⓒ한윤수 |
회사에 전화했다.
"2주 진단이 나왔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직장 이동을 시켜주시면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장 사모님은 처음엔 우리측 제안을 거부했다.
"만일 안 시켜주면요?"
"노동부에 진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사장님한테 안 좋지요."
"어느 정도로 안 좋은데요?"
"근로기준법의 폭행 금지에 해당합니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
"기가 막히네요. 회사가 어려운데."
"그러니까요. 하여간 오후 4시까지 선택해서 답을 주세요. 직장이동을 시켜주시든지 아니면 노동부에 출두하시든지."
사모님은 우리한테 전화를 받은 즉시 기숙사로 쫓아들어가 누남에게 화풀이를 한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공교롭게도 누남에게 전화한 순간에 수화기를 통해 따발총처럼 퍼붓는 여성의 쇳된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야?"
하고 묻자 누남은 나직히 대답했다.
"사모님요!"
나는
"무조건 참아. 알았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30분 후 직장 이동을 시켜주겠다는 사모님의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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