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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만난 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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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다시 만난 폴 크루그먼

[中國探究]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중국 진단

10년 전 홍콩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아시아 외환 위기의 원인과 처방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그려낸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를 읽고 그의 열혈 팬이 된 직후였다.

세계적인 석학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슴 뛰는 일이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그때 내가 정말 알고 싶어 했던 것을 족집게처럼 콕 찍어주었다. 당시 중국은 외환 위기의 진원지가 아니면서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위앤화 평가절하설이 난무하고 불황의 골이 깊어가던 때 중국은 돌연 '휴일경제(假日經濟)'라는 처방을 내놓았다. 휴일경제는 휴일에 소비가 늘고 경기가 뜬다는 인식을 바닥에 깔고 있다. 많이 쉬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논리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음력설과 노동절, 국경절에 각각 7일 씩 쉬기 시작했다.

▲ 최근 중국을 방문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중국 경제를 놓고 자극이 될 만한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로이터=뉴시스

중국의 장기 연휴제도는 한편 부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매우 생소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위기 극복 해법은 덜 먹고 덜 쓰고 덜 자는 '3덜' 처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의 휴일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단서를 잡았던 것은 전적으로 크루그먼 교수가 불황의 원인과 대책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일화 덕분이었다.

1978년 미국에서 발표된 '통화이론과 그레이트 캐피틀 힐 베이비시팅조합의 위기'(Monetary Theory and the Great Capitol Hill Baby-sitting Co-op Crisis)가 그것이다.

그레이트 캐피틀 힐 베이비시팅조합은 1970년대 미 의사당에 근무하던 150쌍의 젊은 부부들이 서로 아기를 대신 돌봐주자는 목적으로 만든 조합이다. 조합원들은 외출을 할 때 다른 부부에게 쿠폰을 주고 자신들의 아기를 맡겼다. 처음에 앞 다투어 아기를 맡기고 외출을 즐기던 조합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장의 외출보다는 나중에 여유시간을 더 많은 갖기 위해 쿠폰 지출을 꺼렸다고 한다. 아기를 맡기려는 사람(지출)은 줄어들고 돌보려는 사람(저축)은 많아져 쿠폰 유통량이 급감했다. 베이비시팅조합이 불황에 빠진 것이다.

불황의 원인은 조합원들의 불화 때문이 아니었다. 아기 돌보기 매너리즘에 빠진 때문도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조합원들이 쿠폰(현금)을 모으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베이비 시팅(재화)에는 소비를 하지 않았던 데 있다. 조합은 불황 타개를 위해 쿠폰을 더 발행하는 방안(통화 공급량 증가)도 생각해보았지만 의외로 매우 간단한 처방을 내렸다. 모든 조합원들이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외출하도록 하는 강제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조합 내 쿠폰 유통량이 증가했고 외출 횟수가 늘면서 베이비시팅의 기회도 늘어났다.

불황이 타개된 것은 조합원들이 이전보다 더 훌륭한 베이비시터(better baby-sitters)가 됐기 때문이 아니며 조합이 근본적인 개혁(fundamental reform)을 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순히 통화의 흐름이 교정됐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조합의 불황 대책은 전형적으로 휴일효과(holiday effect)에 착안한 것이다.

1999년에도 중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지금처럼 내수경기 진작이었다. 생산과 공급은 괜찮은데 소비가 고질적인 문제였다. 돈이 없어 못 쓴다기보다는 돈 있는 사람조차 돈을 쓰지 않으려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장의 소비보다는 앞날을 대비해 더 많이 저축해두려는 심리가 컸던 탓이다. 돌아야 할 돈이 돌지 않는다는 점에서 베이비시팅조합의 불황을 그대로 빼 닮았다. 조합이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외출하는 처방을 내놓은 것처럼 중국은 '7일X3'의 연휴대책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5월 10일은 운수대통한 날이었다. 전날 상하이에 들렀다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처럼 기내에서 읽을 경제잡지 몇 권을 샀다. 한 잡지에 크루그먼 교수가 이 날 중국을 방문한다는 주간 경제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베이징공항 입국장에서 거짓말처럼 바로 내 옆에 선 그를 만났다. 머리가 보기 좋게 세었고 50대 중반의 나이에 어울릴 정도로 살도 좀 쪄 보였다.

안타깝게도 대화를 나눌 상황은 아니었지만 10년 만에 다시 본 그는 이번에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돌아갔다. 짧은 중국 방문 기간에 베이징이며 상하이에서 그가 쏟아낸 주장들은 중국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중국에서 돈을 빌려 집을 서로 사고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맞았다." "중국은 더 이상 수출 주도형 성장으로는 안 되며 내수를 키워야 한다." "내 생전에는 위앤화가 국제통화 되기 힘들 것이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왜 돈도 되지 않는 미 국채 매입에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예언가로 통하는 크루그먼 교수는 그러나 이번 방문 기간에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상식으로는 해석이 어렵다는 이유라고 한다. 그의 이런 반응은 중국 정부를 의식해 말을 아끼려는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예측 자체가 곤란함을 인정한 것일 수도 있다. 혹, 우리는 중국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판단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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