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결국 언론에 공개
북한은 15일 "개성공업지구에서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측에 특혜적으로 적용했던 토지임대값과 토지사용료, 노임, 각종 세금 등 관련 법규들과 계약들의 무효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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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지문은 이날 낮 12시 45분 경 직접 전달됐고 오후 3시 35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됐다.
통지문은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라며 "앞으로의 사태가 어떻게 더 험악하게 번져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측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책임을 남측에 넘겼다.
남측이 유 씨 문제를 회담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북측 통지문은 "부당한 문제"라거나 "의제 밖의 문제"라고 거부했다.
통지문은 유 씨에 대해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우리를 반대하는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자"라고 규정해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통지문은 남측이 이 문제를 "실무접촉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무접촉을 또 하나의 북남대결장으로 만들어 공업지구 사업 자체를 파탄시키려는 남측 당국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 행위"라고 주장했다.
南 "억류 문제 우선 논의는 지극히 당연"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은 이날 오후 논평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이는 개성공단의 안정을 위협하는 조치로서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북한의 일방적 조치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개성공단에서 나가도 좋다고 한 것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 무책임한 처사"라고 말했다.
그는 법 규정 및 계약 개정에 대해 "남북한 당국은 물론 개별사업자와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상호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시행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북한측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남측이 유 씨 문제를 제기해 회담을 지연시켰다는 북측 주장에 대해 "남북간 합의서에 따라 처리되어야 하고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가 이날 오전 '오는 18일 실무회담 개최'를 다시 제안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북한은 이제라도 부당한 자세를 버리고 관련된 법 규정들 및 계약들의 무효선언을 즉각 철회해야 하며 우리측이 제의한 당국간 실무회담에 조속히 동의해 나오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결렬" 아니라 "결렬 위기 직면"…여지는 남겨둬
북측은 지난달 21일 1차 접촉에서 임금·토지사용료 등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측에 부여했던 모든 제도적 특혜조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기존 합의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 후 남북은 지난 4일부터 12일 동안 2차 접촉을 둘러싸고 치열한 기싸움을 해왔다.
남측은 유 씨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하고, 임금·토지사용료 등의 인상을 협의하려면 개성공단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 등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서로 의제가 달랐다.
반면 북측에서 개성공단을 관장하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유 씨 문제는 자신들의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1차 접촉 때 제기한 문제만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날짜에 대해서도 북측은 4일 '6일에 만나자'고 제의했으나, 남측이 8일 '15일에 만나자'고 역제의하자, 북측은 9일 '12일에 만나자'고 수정제의하는 등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러나 남측은 '15일 회담'을 고수했고 끝내 불발되자 내주에 개최하자고 통지문을 보냈다.
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며 "의제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실무접촉에서 충분히 제기가 됐기 때문에 앞으로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북 통지문에는 유 씨 문제를 부각시키지는 않았음을 내비친 것이다.
남측은 지난 12일부터 관계자를 개성공단에 보내 북측과 2차 접촉을 위한 실무협의를 시도해왔다. 그러자 북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겠다며 실무협의에 제대로 응하지 않다가 15일 마침내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내주 회담 성사는 극히 불투명해졌다. 다만 북측이 통지문에서 결렬을 선언하지 않고 "결렬의 위기에 직면"했다며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정부가 회담 전략을 수정·보완해 북측을 설득한다면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융통성 있게 툭툭 치고 들어가야 한다"
개성공단과 남북협상에 정통한 전직 고위 당국자들은 유 씨 문제와 공단 운영에 관한 협상을 분리해서 접근하고, 북측이 원하는 공단 관련 협의를 일단 시작한 뒤에 석방 협상을 제안하는 '투 트랙 2단계' 접근법이 실현 가능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3일 <프레시안> '정세토크'에서 "두 문제를 묶어서 옥신각신하지 말고 유 씨 사안만 따로 떼서 논의하는 별도의 물밑접촉을 제안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라며 "묶어서 하려고 하면 두 문제 다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두 문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북측의 주장은 맞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북측이 분리한다고 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말 풀기 위해서는 투 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의 장 자체가 마련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문제를 섞어서 협상하게 되면 임금·토지사용료 조정 협상에서도 남측이 불리해진다"며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고, 유 씨 석방도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직 고위 당국자는 "투 트랙으로 당장 가기 어려우니까 일단 북측이 요구하는 임금·토지사용료 협상을 우선 시작해 놓고 억류 문제를 푸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단계별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는 "너무 경직되게 접근하면 억류가 더 오래간다"며 "석방이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니까 융통성 있게 툭툭 치고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과거 회담할 때도 서로 어려운 거 설득하고 이견 좁혀 나가고 그랬다. 묘수가 뭐 있나? 포기하지만 않고 설득해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부의 현직 당국자들도 그것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의중 때문이라고 한 소식통은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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