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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처럼 오는' 아프간 파병, '관 뚜껑 두드리는' P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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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처럼 오는' 아프간 파병, '관 뚜껑 두드리는' PSI

'장군님'들은 "전작권 환수 싫어"…한반도 상공을 떠도는 '유령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뜨겁게 달굴 현안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두 사안과 관련한 정부 내 움직임은 특히 정부소식통이라는 익명의 커튼 뒤에서 유포되면서 점차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유령처럼 떠돌며 불필요한 한미갈등을 잉태하고 있다.

맹목적인 한미동맹론, '좌파정부' 유산 척결론, 북한 변수에 대한 무지와 무시 혹은 악용,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좌절한 세력의 오기가 뒤엉켜 있는 이슈들이다.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부재를 이미 수차례 드러낸 이명박 정부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지자들의 입맛에 따라 이념에 치우쳐 처리한다면 '실용외교'나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결국 좌초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 PSI 2라운드는 '황석영 vs 외교부'?

4월 극심한 혼선 끝에 숨이 잦아들던 PSI 전면 참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면서 관 뚜껑을 박차고 나올 태세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2일 PSI를 영속적인 국제 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국가가 PSI에 참여할 것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라는 황금 기회를 놓쳤던 외교부 등 정부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말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곧바로 정부의 한 소식통은 <연합뉴스>에 "늦어도 내달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는 발표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온 후 발표 시점을 최종 정리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PSI 발표를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다. 정부는 당시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 특히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의 신변 안전 때문에 발표를 무기 연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는 'PSI와 남북관계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당시 유 씨가 석방될 조짐이 있다면서 PSI 발표 계획에 대한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등 PSI가 남북관계와 영향이 있음을 자인했다.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 접촉을 하자는 북측의 제안이 온 후 PSI 발표를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유 씨가 여전히 억류돼 있는 상황에서 PSI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것은 억류를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유 씨 때문에 PSI 발표를 못했다는 걸 북한한테 확실히 들켰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유 씨는 '정치적 인질'이 됐다. 1차 남북 접촉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살려가겠다는 정부의 희망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4월 논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발표 연기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것은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그리고 청와대 밖 대통령 자문그룹 등의 합작품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때 대통령을 설득했던 논리가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에서 PSI가 또 불거지면 그들도 다시 나설 수밖에 없다. 극심한 혼란상이 재연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일각에서는 'PSI 때문에 시끄럽게 하지 마라'는 미국의 메시지가 들어와서 대통령이 마음을 바꿨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국가의 PSI 참여를 희망한다'는 오바마의 12일 발언은 무엇인가? 그가 선거운동 때부터 PSI의 제도화를 강조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도화를 전제로 모든 국가의 참여를 희망한다'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즉, 만약 한국의 PSI 참여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시그널이 실제로 있었다면 오바마의 12일 발언이 그걸 뒤집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PSI는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발언을 틈타 PSI의 불씨를 살리려는 '정부소식통'은 같은 날 들려온 어떤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 순방에 동행한 소설가 황석영 씨가 "PSI 문제를 전향적으로 유보한 것은 참으로 지혜로웠다"고 대통령을 치켜세운 것.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황 씨의 이 언급은 PSI 찬성론자들의 대통령 설득 작업에 예기치 않은 난관을 조성했다.

▲ 작년 12월 자이툰 부대 귀국 환영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자이툰 파병의 경험이 있는 군은 아프가니스탄 파병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고 비행기를 띄울 수 있다. ⓒ연합뉴스

■ 파병은 도둑처럼 온다

아프가니스탄 파병만큼 정부의 '언론플레이'와 '여론떠보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안도 드물다. 해외 파병 논란의 휘발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언자들은 철저히 익명성 뒤에 숨어 있고, 보도가 났을 때의 공식 답변도 정해져 있다. "미국으로부터 요청받지 않았고, 따라서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꾸준히 나온다. 의도적으로 흘려 여론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한 보도도 있고, 언론사의 취재력을 발휘해 캐내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계속 나오고 점점 구체화됐다.

첫 포문은 <동아일보>가 열었다. 지난 3월 27일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은 인용해 "미국으로부터 공식 요청을 받지는 않았지만 직간접적 의사 타진을 받고 파병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전한 것이다. '공병 중심 100명 미만 파병 방안이 유력하다'고 덧붙였다.

한참 뒤 <한겨레>는 이달 4일자에서 미국이 최근 한국 정부에 한국군 파병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정부가 6월 16일 한미 정상회담 전까지 파병을 검토할 것이고 역시 '자이툰 방식'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연합뉴스>는 12일 정부소식통을 인용해 "미 국방부 관리들이 최근 한미연합사와 주한미군 장성들을 통해 한국군 공병부대의 아프간 파병을 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 국방부 관리들의 이런 의견이 (한국 정부의) 관련 부처에 전달됐다"고 전했다. "아프간 파병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 왔다"는 다른 정부 소식통의 말도 추가됐다.

중동 전문가들은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면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다시 본격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과 한국인도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2007년 샘물교회 봉사단 피랍 사건이나 올 3월 예멘 테러를 능가하는 '테러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정민 외대 교수, "아프간 파병, 한국·한국인을 '테러 악순환'에 빠뜨려")

또한 '침략자의 무덤'으로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미국과 함께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준석 <조선일보> 국제문제전문기자는 작년 12월 칼럼에서 "(아프간에) 갈 때 가더라도 그 땅이 어떤 땅이고, 그곳에 발을 잘못 담갔던 '제국(帝國)'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적어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기사가 철저히 익명으로 나오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파병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말을 섞기가 무척 난처하다.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데 자꾸 추궁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익명 보도는 이처럼 정부가 부인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장점이 있다. 더 이상 따질 수 없다.

그러나 혼란스런 기사와 공식 부인이 오가는 와중에 파병은 '도둑처럼'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큐 사인'만 오길 기다리는 모양새다. 자이툰 파병의 경험이 있는 군으로서는 '그린 라이트'만 켜지면 2주 안에라도 비행기를 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을 통해 '파병 민감성'이 높아진 시민사회단체들도 시나브로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일례로 참여연대는 13일 <연합>의 보도가 나가자 즉각 논평을 발표해 "미국의 아프간 점령과 전쟁 지원에 동참하는 것이 결코 아프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정부의 연막작전이 너무 '티나게' 진행되면서 파병 논란의 휘발유는 이미 불붙기 시작했다. '촛불 시즌2'가 거기에서 시작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 전작권 논란, '장군님'들의 반미운동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2012년 4월에 환수하기로 한 한미 합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은 최근 북한의 대남 위협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주된 논거로 한다. 한국군 전력 증강 사업에 차질이 있고,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도 주요 근거다.

<동아일보>는 12일 사설에서 "안보환경의 이 같은 악화를 무시하고 전작권을 돌려받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해(自害)행위나 다름없다"고 썼다.

군 원로 모임인 성우회와 <동아일보>가 주축이 되어 확산시키는 이 주장에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까지 가세했다. 그는 지난 5일 칼럼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처하는 데는 전시작전통제권 이전 문제의 재검토를 포함한 동맹관계의 강화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지지층들의 이러한 주장은 이명박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작권 환수를 연기시키려면 미국에 합의 번복을 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미국이 극도로 꺼려한다.

미 국방부 당국자들이 지난 4~8일 워싱턴을 방문한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과 이성출 부사령관에게 했던 말은 그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변함없이 확고할 것이며, 전작권은 계획대로 2012년에 전환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우회 등은 '친북·좌파' 노무현 정부의 유산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환수 재검토 주장을 접지 않을 기세다. 그들의 주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실제로 움직인다면 한미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질 수 있다.

미국은 전작권을 한국에 넘기고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도 투사시키겠다는 기본 구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그 구상을 어그러뜨리는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대한 심각한 손상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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