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온라인 게시물 삭제의 경우 법원 등 명예 훼손 여부를 가릴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을 여지가 적다는 점에서 <PD수첩> 등 기존의 언론 탄압 사례보다 더 심각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마구잡이 임시조치
최근 지난 노동절 집회에서 시민에게 진압봉을 휘두른 경찰을 비판한 다수의 게시글이 해당 경찰의 '명예 훼손' 신고로 30일간 접근 금지 처리돼 파문을 일으켰다. 또 국내 시멘트 업체를 비판해온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 시멘트' 게시글은 한국양회공업협회의 신고로 접근 금지 조치를 거듭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4개의 글이 삭제되기까지 했다. 또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장자연 리스트' 발언 이후 발언 내용을 담은 게시글을 두고 조선일보사, 다음커뮤니케이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상대로 한차례 전쟁을 치렀다.
누리꾼의 게시물에 가장 광범위하게 취해지는 '조치'는 30일간 게시물의 접근을 차단하는 포털사이트의 자체 임시 조치다.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는 특정 게시물과 관련해 '명예 훼손' 혹은 '사생활 침해'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게시자에게 통보하고 즉각 '임시 접근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발이 커지자 국내 7개 포털 사업자들이 만든 한국인터넷자율기구에서 세부 규칙 등을 만들었으나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즉각적인 임시 조치로 이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 최병성 목사의 블로그를 캡쳐한 사진. 18개의 게시물에 "권리침해신고 접수에 의해 접근 금지 조치된 글입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접근 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최병성 |
이런 '즉각적인 조치'가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 44조 2항은 이해당사자가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명예 훼손을 했다며 조치를 요구할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지체없이' 삭제, 임시 조치를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될 경우에도 30일 이내의 임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예 훼손'이 불분명한 경우나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까지 포괄해 임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은 결국 향후 있을지 모를 '법적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포털 사업자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임시 조치를 취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대 교수는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란 명예 훼손을 주장하는 측이 매우 부당한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 경우까지 포괄해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포털로서는 무조건적으로 일단 임시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신 교수는 "이 조항에는 포털로 하여금 게시자의 권리를 배려하게 해야할 유인동기가 전혀 없다"면서 "이 조항은 '면책 조항'으로서의 원래 취지를 살려 게시글에 '명예 훼손' 등의 신고가 들어오면 게시글을 접근 차단하고 이에 게시자가 '이의 제기'를 하면 다시 올리는 절차를 만들고 당사자 간 사법적인 판단을 받아올 때까지 게시글을 공개하는 편이 맞다"고 주장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도 "임시 조치가 피해자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필요한 면도 있지만 정보통신망법에는 '임시 조치'의 요건과 절차 등을 규정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면서 "최병성 목사의 임시 조치, 삭제 등의 경우와 같은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한 단서 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 가도 '게시자의 권리'는 없다
일단 포털사이트가 특정 게시글에 30일간 접근을 차단하는 '임시 조치'를 취하고 나면 게시자는 이에 항의할 방법도 마땅히 없다. 네이버의 경우는 게시자가 '임시 조치' 이후에 '재게시'를 요청하면 다시 재게시가 되나 다음의 경우엔 '재게시' 요청 절차가 없다. 대신 네이버는 '재게시'를 요청하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가 없이 30일이 지나면 해당 게시물이 삭제되고 다음의 경우는 30일 이후 게시물이 복구된다.
포털사이트 등은 당사자 간 분쟁이 일 경우 '방송통신심의위 등 관련 기관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으나 게시자의 입장에서는 방통심의위의 판단을 얻기도 어렵다. 방통심의위의 절차 자체가 '피해자의 권리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명예 훼손'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심의를 요청하지 않는 한 방통심의위는 게시자의 심의 요청에 '각하'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게시글을 살리고자 방통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도 별도의 법리적 판단을 얻기 전까지 '<조선일보>의 제재 요청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받았다.
또 피해를 주장하는 이의 신고로 해당 게시글의 '명예 훼손' 여부가 방통심의위에서 다뤄진다고 해도 게시자의 권리나 주장이 크게 반영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11월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블로그에 "국내 시멘트 제조업체가 국내외의 폐기물을 원료로 '쓰레기 시멘트'를 제조·핀매하고 있다"는 기사를 올린 최병성 목사의 글중 4개가 방통심의위의 심의 결과 삭제된 것이 가장 대표적.
최병성 목사는 "방통심의위의 결정을 보면 양회협회의 해명에만 근거해 심의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서 "방통심의위는 심의 중에는 게시자인 나에게 해명의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내 글이 심의 대상이 됐다는 공식적인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아는 사람을 통해 양회협회에서 신고한 것을 알고 방통심의위에 '해명하겠다.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했더니 방통심의위는 '뭐하러 미리 하느냐. 통보받으면 그때가서 하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의 한 위원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피해자의 일방적 소명만을 가지고 입증을 하기 때문에 게시자에게는 입증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통신서비스 제공자, 게시판 관리 운영자, 해당 이용자에게 의견 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명령과 달리 방통심의위의 시정권고는 그러한 절차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에 따라 방통심의위에는 '명예 훼손 분쟁 조정'이라는 제도가 있으나 유명무실화된 상태. 방통심의위가 직권으로 '명예 훼손 분쟁 조정위'에 회부할 수 있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의 한 위원은 "명예 훼손 분쟁 조정부를 활성화해서 양쪽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이 가능하게끔 하든지 아니면 방송통신위원회 행정명령에 적용되는 정보통신망법의 규정에 따라 게시자의 의견까지 듣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방통심의위는 그저 '자율기구'일 뿐인데
이러한 방통심의위의 불균형은 포털사이트 사업자는 방통심의위의 결정에 즉각 따르는 반면, 게시자는 방통심의위의 결정에 사실상 '불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최병성 목사의 경우를 보면 최 목사는 '재심 신청'은 가능하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4호에 의한 '시정 요구'는 행정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방통심의위에 게시자는 시정 요구에 불복하더라도 행정소송을 할 수 없다.
방통심의위가 시정요구를 내렸을 때 사업자인 다음이나 포털의 관리자들은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명령을 받을 경우 사업에 입을 타격을 우려해 거의 100% 따르는 반면, 정작 게시자들은 그 결정 자체에는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 또 게시물을 삭제한 포털사이트 측은 방통심의위의 '시정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박경신 교수는 "원칙적으로 방통심의위에서 삭제·시정 요구가 오면 포털사이트도 '우리는 판단이 다르다, 권리 침해글이 아니라고 본다'라며 이의제기를 할 수있으나 다음이든 네이버든 이의제기를 한 적이 없다"며 "사실 포털만의 문제는 아니라 게시자들도 방통심의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많지 않다. 포털들로서는 '우리가 왜 이의제기해야하느냐'는 식의 태도가 나오는 것"고 비판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위원은 "공적인 기관으로 인식되는 것과 달리 방통심의위는 그저 자율기구일 뿐"이라며 "행정명령권이 없는 방통심의위가 위법 사항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방통심의위는 시정권고를 할 것이 아니라 행정명령권이 있는 방통위에 심의 결과를 의견으로 제출하기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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