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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친구

[한윤수의 '오랑캐꽃']<73>

외국인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일단은 좋아한다. 상대방이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
필자도 외국인의 고향을 알면 좋은 점이 있다. 그 고장의 인맥을 동원하여 그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고향 찾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들의 말하는 방식이 좀 복잡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을 예로 들어보자.

폭행을 당해서 침울한 얼굴로 앉아 있는 청년에게 물었다.
"고향이 어디에요?"
"하노이요."
하노이라고 해도 하노이에서 좀 가깝다 싶으면 무조건 다 하노이라고 하니까 진짜 고향이 어딘지는 다시 한 번 물어보아야 한다.
"하노이 어디? 시내?"
"아니오. *하롱베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160키로나 떨어져 있으니까. 참고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150키로다. 만일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대전 사람이 뻔뻔스럽게 "나 서울이오!"하면 되겠는가?

하롱베이만이 아니다. 하남, 닝빙, 남딩, 타이빙, 호아빙, 빈옌, 박쟝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응에안 사람들까지 일단 다 하노이라고 우긴다. 그러므로 진짜 고향이 어딘지는 한 번 물어보아가지고는 절대로 모른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강원도나 충청도 사람들은 물론이고 경북 문경이나 전북 익산 사람들까지 다 서울이라고 우기는 식이니까.
"하롱베이가 하노이야?"
하고 쏘아주자 청년은 말을 슬쩍 바꾸었다.
"하노이와 하롱베이 중간이오"
"그럼 하이정?"
"어? 어떻게 하이정 알아요?"
"우리 통역 짱이 하이정 사람이니까. 짱 알아요?"
"예, 알아요, 그 오빠 투엔이랑 친구거든요."
이걸로 게임 끝이다. 나는 투엔의 친구이고 그 역시 투엔의 친구니까 우리는 친구 사이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니까! 친구끼리는 못할 말이 없지. 그러므로 그는 속이야기까지 다 털어놓게 된다.

하여간 북쪽 사람들은 대개 하노이 출신이라고 우기는 반면에 남쪽 사람들은 대개 호치민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왜 이렇게 턱도 없이 먼 대도시 이름을 댈까? 물론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한국 사람이 잘 아는 도시는 하노이와 호치민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산재를 당한 청년에게 물었다.
"고향이 어디에요?"
"호치민."
"호치민 어디? 사이공?"
"아뇨 *야짱이오."
야짱은 호치민에서 448킬로나 떨어져 있다. 천 백리. *진주라 천리길보다도 멀다. 아무리 베트남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심한 축에 속한다.

*하롱베이 : 베트남 최고의 해상공원. 한자로 쓰면 하룡만(下龍灣)이다.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니는 바람에 풍광이 수려한 바다와 멋진 섬들이 생겼단다. 하롱베이는 하롱이라는 베트남어와 베이라는 영어의 합성어.

*응에안 : 국부 호치민의 고향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가난한 고장이다. 화성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에는 이곳 출신이 많다. 응에안 성의 수도인 빈은 하노이에서 318키로나 떨어져 있다.

*야짱 : 베트남 중남부 해안의 휴양 도시. 베트남 전쟁 당시는 영어식으로 나트랑이라고 불렀다.

*진주라 천리길 : 2007년에 제작한 한국 영화. 참고로 <진주는 천리길>(1958)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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