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회사의 실제 소유주인 J씨 밑에서 일했다. 그래서 J씨를 상대로 수원노동부에 진정서를 냈다. 노동부에서 출석요구서를 보내자 J씨는
"내 회사가 아닌데요."
하고 발뺌했다.
내 회사가 맞네 아니네, 옥신각신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아무 성과가 없어서 다시 이름만 사장인 L씨의 주거지가 있는 노동부 인천 북부지청에 진정서를 냈다.
이번에는 L씨가 펄쩍 뛰었다.
"난 이름만 빌려준 거에요."
"이름을 빌려주었으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지요.."
▲ 부탄칸ⓒ한윤수 |
내가 책임 소재를 따지자 코너에 몰린 L씨는 친척인 J씨에게 항의했다.
"당신 도우려고 하다가 나만 덤터기 썼잖아요."
친척간에 불화가 생기자 그제서야 J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부탄칸을 부른 것이다.
"320만원 줄게. 3월 말까지."
그래서 3월말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J씨는 140만원만 지급했다. 나머지 180만원은 솔직히 언제 줄지 몰랐다. 그는 돈을 여간해서는 다 주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으니까.
이때 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인천 북부지청의 근로감독관이 처리 시한에 몰려서 L씨를 형사 기소해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감독관은 미안해했다. 실제 소유주도 아닌 사람을 기소해야 하니까.
감독관은 우리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L씨를 기소할 순 없잖아요 실제 소유주도 아닌데. 그러니 사람 하나 살려주는 셈치고 화성 센터에서 공문 한 장만 보내주세요."
"무슨 공문요?"
순진한 우리 직원이 묻자 감독관이 자세한 주문을 했다.
"돈을 다 안 주었으니 취하서는 못 보내 주실 테고. 그렇죠?"
"당연하죠!"
"하지만 이름만 걸어놓은 사장을 차마 형사 기소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요?"
"기소를 당분간 보류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는데."
"어떻게요?"
"부탄칸이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형사기소를 보류해달라고 공문을 보내주시면 좋겠는데."
"어? 부탄칸 연락되는데!"
"그러니까 부탁하는 거잖아요. 안 되는 것처럼 해달라니까!"
"알았어요. 그러죠 뭐."
마음 좋은 직원은 한껏 호의를 베풀기로 작정하고, 그 공문에 맞는 문장을 만드느라 머리를 싸매고 낑낑대고 있었다.
한심해서 직원에게 물었다.
"그렇게 마음이 좋아가지고 돈 받을 수 있어요?"
"예?"
"그런 식으로 봐주다간 생전 가도 돈 못 받아요."
"예?"
"이름 빌려준 사람도 잘한 거 없어요,"
"그렇죠?"
"이름 빌려주었으면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하는 거에요."
"그렇네요."
"공문 보내면 돈 못 받아요."
"예."
"돈 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아요?"
"몰라요."
"가만히만 있으면 돼요. J하고 L하고, 둘이서 치고 박고 싸우든지 말든지 좌우지간 자기들끼리 결론 낼 테니까."
"그렇군요."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때도 있다.
*최선의 방법 : 예상대로, 닷새가 지나기 전에 부탄칸은 퇴직금 전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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