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베트남 노동자들은 대부분 열심히 일해 고향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주 성실한 사람들이다. 내가 보기엔 99.9 프로가 그렇다. 그러나 극히 소수, 0.1 프로 정도는 고향에 돈을 부칠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하지 못하다. 그런데 성실하지 못한 이 사람들에겐 희한한 공통점이 있다. 여자보다 이쁜 꽃남이라는 것. 도대체 베트남 꽃남은 왜 그럴까? 혹시 왕자병?
짱
이른 아침인데 핸드폰이 울렸다. 수화기에선 뭐라고뭐라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짱(가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목사님, 지금 인천공항에서 택시 타고 발안으로 가고 있는데요. 택시 기사가 25만원을 달래요. 미터기로는 15만원 밖에 안 나오는데."
그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택시 기사를 바꿔달래서 따지듯 물었다.
"25만원 받을 겁니까?"
택시 기사는 금방 순해졌다.
"아닙니다. 15만원만 받겠습니다."
나는 짱을 다시 바꿔달래서 야단을 쳤다.
"공항버스 타면 수원까지 8천원이면 되는데, 왜 택시를 타?"
짱은 얼버무렸다.
"짐이 많아서요."
하여간 짱은 종종 얼굴값을 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성실한 축에 속한다.
함
함(가명)은 아주 끼끗하게 생겼다. 구준표 비슷하다. 그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밀린 임금 78만원을 받을 게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함에게 줄 게 없다고 주장했다. 경리과에서 가불해간 돈하며 여기저기 동료들에게 '미친 년 똥 깔기듯이' 빌려간 돈이 합해서 88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줄 돈은 없고 오히려 돌려받을 게 10만원이라는 얘기였다. 함에게 물었다.
"회사에선 당신보고 노름쟁이라는데, 도박했어요?"
"예."
"여기저기서 빌려간 돈 까부시면 회사에선 줄 게 없다는데."
"아니요. 그래도 받을 게 30만 원은 되요."
"정말이죠?"
"예. 정말입니다."
"그럼 진정서 써주면 노동부에 나올 거죠?"
"예. 꼭 나가요. 내 돈 받아야 하니까."
내가 보기에 함은 분명히 회사에 받을 돈이 있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취업교육비 명목으로 23만 9천원을 공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노동부에 출석하는 날 함은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보호자로 따라간 우리 직원만 사장님에게 면박을 당했다.
"내가 뭐랬어요? 노름쟁이에다가 거짓말쟁이라니까! 발안센터에서 할 일도 없지! 뭐 하러 그런 놈 도와줘요?"
충
충(가명)은 미남이라기보다는 미소년에 가깝다. 땋아내린 말총머리가 귀엽다. 그는 출국하기 전에 노동부 조사를 받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비자기한이 다 끝나서 사흘 안에 베트남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재고용해주는 회사가 없어서 영구 귀국이었다.
하지만 떠나려는 그에겐 비행기 표 값조차 없었다. 우리 센터에서 불과 보름 전에 *밀린 임금218만원을 받아주었는데 그 많은 돈을 다 어디다 썼단 말인가? 혹시 노름? 하지만 그는 겸연쩍게 말했었다.
"꾼 돈 30만원 갚고요. 직장 알아보러 다니느라 택시비로 다 썼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보름 동안 택시비로 188만원을 썼다는 건.
하여간 비행기표를 못 사 몸이 단 충은 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우리 직원에게 사정했다.
"비행기 표 사게 40만원만 빌려줘요. *귀국보험료 타면 갚을 테니까."
직원이 황당해서 말했다.
"나 돈 없어."
배고픈 호랑이 중이나 개를 헤아리지 않는다더니, 눈이 뒤집힌 충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빈 지갑을 열어보이며 감독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으니까.
"나 M 회사에 받을 거 있잖아요. 거기서 40만원 까고 주시면 되잖아요."
감독관은 기겁을 했다.
"돈 주는 사람은 내가 아니에요. 사장님이지."
더구나 M 회사는 폐업했는지 노동부 출석은커녕 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는 회사였다. 돈을 못 빌린 그는 하릴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충이 발안에까지 왔다. 어렵게어렵게 친구에게 40만원을 빌려가지고! 우리는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그 비행기표로 보험금 40만원을 타게 해주고, 그 40만원을 또 친구에게 부쳐주었다.
충은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 가진 돈이라곤 한 푼도 없이.
층계를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꽃남은 왜 죄다 이렇게 시시하게 사라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교육비 : 외국인 노동자가 처음 입국하면 2박 3일 동안 취업교육을 받아야 하며 이 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따라서 만일 노동자의 임금에서 취업교육비를 공제했다면 부당 공제가 된다.
*밀린 임금 218만원 : 충은 3년 동안 두 군데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두 군데 다 임금을 깨끗이 지급하지 않는 문제 회사였다. 218만원은 먼저 근무했던 C회사에서 받은 것이었다.
*귀국보험료 : 귀국에 대비하여 근로자가 삼성화재에 미리 적립해놓은 항공요금. 베트남의 경우는 4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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