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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 지식인의 위상과 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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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국 지식인의 위상과 곤경

[中國探究]<33>

최근 중국에서는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관련 서적의 판매 부수가 갑자기 증가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는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져들면서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면서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다. 공교롭게도 이 서적들에 관심을 보인 자들은 당대 중국의 지식인들도 아니고 관방의 공공서비스 기관도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의 노동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중국의 보통 시민들이었다.

관방과 민간의 양대 문화 권력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관방과 인민의 양대 구도로 이분되었던 중국의 문화 권력은 그 구도가 더욱 굳어지는 느낌이다. 관방은 중화주의와 애국주의를 앞세우며 당대 중국의 문화 권력을 주도하고 있다. 관방은 일찌감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하위 이데올로기를 발굴해왔다. 90년대에는 '현대신유학'에 주목하여 관방과 대학 간의 철학적 접목을 모색하였다. 현대신유학 연구에 대한 독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20세기에 철저히 외면당했던 공자는 21세기에 화려한 부활을 맞이했다.

관방이 주도하는 문화적 주도행위에 인민의 생활공간인 '민간'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선 대대적인 공자문화 복원사업이 일어났다. 방송 매체에선 공자의 사상에 대한 연속 강의가 유행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유불도(儒佛道)에 대한 강의가 줄을 이어 방영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불교의 탈세간적 교리가 방송의 황금시간대에 선포되는 요지경 중국이다.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선 대륙의 학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이완의 저명한 대학교수까지 모셔다 강연을 듣고 있다.

관방의 주도에 대한 민간의 신속 반응은 결코 문화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민감한 정치 이슈가 터져 나올 때마다 민간은 자발적으로 애국주의의 선봉에 서곤 했다. 최근 발생한 티베트 사태에 대해 프랑스가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자, 민간은 프랑스 다국적 기업인 까르푸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한 일본과의 마찰이 발생하는 시점에선 민간은 어김없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나 일본 음식점 거부와 같은 구체적인 행동을 벌였다. 이러한 애국주의는 온라인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그 불똥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설정에도 옮겨 붙었다. 올림픽 성화봉송 사태나 강릉단오제에 대한 중국 누리꾼의 공격은 매우 거세고 맹목적이었다.

민간의 문화 행위는 관방에 대한 반응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자체적으로 문화를 생산하고 확대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민간의 문화 생산은 대부분 대중문화의 다양성에 기반을 두었다. 중국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급성장한 대중문화는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거대한 문화 권력으로 탈바꿈했다. 대중문화는 그 생리상 정부의 통제틀 내에서만 움직이지 않고 자체 내의 자율성과 생산성을 확대해갔다. 인터넷 블로그 문화는 표현의 자유가 통제된 중국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소중한 분출구 역할을 했다. 베이징 외곽을 중심으로 형성된 창의적인 미술 전시공간은 중국 문화계의 새로운 생산기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인구에 회자하는 산자이(山寨)문화는 민간의 소외 계층이 만들어 낸 풍자와 조소의 문화 공간이다.

중국 지식인, 논쟁을 통한 자리 찾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이 깊어야 비로소 비상하듯이, 중국 지식인의 담론은 개혁개방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틀 지워지기 시작한 90년대 초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중국사회는 더욱 역동적으로 기존의 계획경제 틀로부터 체질개선을 시도했다. 그 무렵, 중국 지식인들은 '인문정신'을 주제로 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논쟁은 인문정신 위기론자의 주장에 대해 인문정신 조소론자가 대응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왕샤오밍(王曉明)으로 대표되는 인문정신 위기론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으로 상업화되고 저속화된 중국 문화계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조롱과 욕망의 늪에 빠진 인문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문정신 조소론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논리를 폈다. 그들은 중국 사회가 이미 다원 가치의 시대로 진입했는데도, 여전히 인문정신의 우월성과 5.4식의 계몽주의 환상에 빠져 있는 인문정신 옹호론자들의 논리는 위선과 독선에 불과하다고 맹렬히 공격했다.

9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인문정신' 논쟁은 90년대 후반 동아시아가 금융위기에 봉착하면서 주춤하게 된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세계화(Globalization)' 담론이 급부상하였고, 이 화두를 중심으로 소위 '신자유주의' 학파와 '신좌파' 학파가 정면에 등장하였다. <두수(讀書)>라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전개된 양대 학파의 논쟁은 수많은 부수적 국소 담론과 결합하면서, 중국 사회에 지식인 담론의 전성기를 되찾아 주었다. <두수>는 발행부수가 10만부를 육박할 정도로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기고자의 짧은 분량의 글쓰기와 독창적인 관점을 적극 지원하면서 그 세를 확장했다.

관방과 민간 사이, 소통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중국 사회에서 중국 지식인의 담론이 관방과 민간에 긴밀하고도 신속하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제한된 표현의 자유 속에서 행해지는 이들의 담론은 관방과 민간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고 있다. 민간에서 조성된 대중문화의 무한진화와 다양성 속에서 그들의 무거운 주제는 한없이 따분해 보이기도 하고, 또한 관방이 주도하는 중국특색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여러 논리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학설로 치부되고 있다. 중국에서 논의되는 '신좌파'의 사상은 중국 내에서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고평가된 면이 있다.

관방과 민간의 밀월 시대에 중국 지식인의 행보는 매우 독자적이고 활기차다. 그들은 비록 관방과 민간 사이에서 훌륭한 소통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담론이 직간접적으로 관방과 민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의 담론은 다수의 주목을 받을 만큼 매우 역동적이고, 지식인들 간에는 상호 소통적이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논쟁을 유발시킬 만큼 생산적이다. 이는 우리나라 학술계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사상계'가 중국의 <두수>로 그 바통을 넘겨준 형국인 셈이다. 논문식 글쓰기에 매몰된 나머지 학파 간의 논쟁과 대화가 실종되고, 연구 프로젝트에 목매어 담론의 현주소를 잃어버린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을 볼 때, 중국 지식인의 역동적인 행보는 부러움과 반성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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