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자'는 중국대륙과 싱가폴에서만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해 홍콩과 대만 등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는 채택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자체 약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 나라들에서 쓰이는 '정자(正字)'를 중국에서는 '번거롭다', 혹은 '번다하다'는 등의 의미를 내포한 명칭인 '번체자'라 부르고 있다.(이 때문에 최근 대만에서는 이를 '정체자'라 고쳐 부르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즉 '번체자'와 '간화자'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정자'와 '약자'인 셈이다.
'간·번' 논쟁에 불을 지핀 사람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인 판칭린(潘慶林)이었다. 그는 지난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를 합하여 부르는 약칭) 기간에 "향후 10년 안에 간화자를 폐지하고 번체자로 복귀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의 제안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찬반을 가르는 네티즌들로 인터넷도 뜨겁게 달궈 놓았다. 이에 발맞추어 지난 4월 8일, 중국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 문사철학부(文史哲學部)와 언어연구소는 '간화자와 번체자'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사회과학원은 인문·사회과학의 연구를 선도해 온 중국 내 유력한 학술 기관이다. '간화자'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사용은 물론, 지금보다 한자를 더욱 '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번체자'로 돌아가자는 입장은 이제 '간화자'를 버리고 한자의 원형으로 복귀하자고 주장한다.
'간화자'를 고수하거나 확대하자는 입장은 사실 청조 말기, 중화민국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루페이쿠이(陸費逵)나 첸쉬안퉁(錢玄同) 같은 지식인들은 복잡한 한자의 자형이 중국의 근대화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하고 이를 '간화'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이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사회주의 중국 수립 이후의 일이다. '간화자'가 한자의 대중 교육과 보급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과학 기술의 접목과도 용이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심지어 당시 중국 정부는 점차 한자를 아예 버리고 로마자 알파벳으로 중국 문자를 '표음화'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부국강병'의 근대화를 위해 중국으로서는 한자의 개혁이 절실했던 것이다.
'번체자'로 복귀하자는 입장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한자의 원래 자형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간화자'들은 옛 글자 형태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추할 추(醜, ch
원래 자형을 알아보기 힘든 '간화자'의 사례
사실 중국 역사상 한자의 '간화'는 진시황 때의 문자 통일 당시에도 한 차례 이뤄졌기 때문에 오늘날 '번체자'가 한자 고유의 자형을 간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간화자'와 '번체자' 논쟁의 이면에는 단지 이런 언어·문자학적인 순학술적인 논리만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체자' 고수의 논리에는 사회주의 중국 이후의 '현대화'가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대중문화의 '보급'과 '계몽', 현대 과학의 성취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번체자' 복귀의 논리에는 이제 찬란했던 '고전'(classic) 중국 문화의 수준을 회복해야 한다는 '고급문화'에 대한 열망이 내재하고 있다. 한자의 '간화'가 결국 세계적 과학 기술의 표준조차 수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논리적 힘을 쌓아갔다면, 결코 '번체자'로의 복귀가 그것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녹아들어 있다. 중국의 '간·번' 논쟁은 이제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문화 심리를 바탕으로 2라운드 논쟁을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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