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는 데 있어. 발안으로 가봐."
하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는 대로 서둘러 센터로 찾아온 것이다.
그의 이름은 상아였다. 상아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장이 왜 때렸는지 모르겠어요."
상아의 얼굴은 분함과 황당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는 두 가지를 나에게 요구했다.
1. 왜 맞았는지 이유를 가르쳐 줄 것.
2. 태국으로 무사히 떠나게 해줄 것.
내가 태국으로 떠날 것 없다, 회사를 바꿔주겠다고 달랬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의 마음은 상처를 입어 한국에서 이미 멀리 떠나 있었다.
외국인이 한 사람이라도 원한을 품고 떠나면 안 되는데, 이 일을 어찌할꼬? 무엇보다 깨끗한 마무리가 필요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폭행사건은 가해자건 피해자건 서로 감정이 상해있기 때문에 말로는 설득이 안 된다. 그래서 진단서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진단서 떼는 데도 마땅치 않아서 월요일 아침 9시에 다시 오라고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월요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날이지만 상아 때문에 아침 8시 40분에 센터에 나왔다. 상아는 더 일찍 와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차에 태워 우리 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있는 C의원에 데리고 갔다. 두 군데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2주 진단이 나왔다. 병명은 1. 기타 목 부분의 얕은 손상 2. 머리의 다발성 얕은 손상.
▲ 목에 난 상처를 보여주는 상아 ⓒ한윤수 |
원장 K 박사는 진단서 떼어주는 비용도 받지 않았다. 덕분에 상아는 최소 5만원에서 최대 15만 원 정도를 절약했다.
헤어질 때 상아를 한 번 안아주며,
"오늘 하루 쉬는 게 어때요?"
하고 물었다. 상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요일 출근하자마자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상아는 그 회사에서 3년 일하고 재입국한 고참 노동자이고, 부장은 상아가 태국에 가있는 동안 새로 들어온 관리자였다. 새로 온 관리자가 고참 노동자에게 본때를 보임으로써 공장의 군기를 잡는 일이 간혹 벌어지는데, 이 사건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지.
어쨌든 그날 아침, 상아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피곤한 상태였다. 때마침 출근한 부장이 야근한 노동자들에게 청소를 시켰다. 그러나 상아는 청소할 생각도 않고, 밤새도록 일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청소야? 하는 듯한 시선으로 부장을 쳐다보았다. 상아는 사람을 쳐다볼 때 사파리처럼 고개를 갸웃하고 비스듬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게 때로는 오해를 불러온다. 부장은 반항하는 줄 알고 "아니, 이게 어디서 인상이야?"하며 주먹으로 상아의 머리를 쳤다. 상아는 한 번은 맞았지만 두 번째 날아오는 주먹을 팔뚝으로 막는 동시에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었다. 그는 무에타이 수련자였다. 부장의 안경이 깨졌다. 화가 난 부장이 달려들어 상아의 목을 졸랐다. 목에 난 상처는 그래서 생긴 것이었다.
부장은 나이가 좀 든 사람이었다.
"챙피하지만 나도 맞았다구요. 증인도 여럿 있습니다."
짐작이 갔다. 증인이 여럿 있다면 불가불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쌍방 과실이군요."
"예."
"그러면 경찰서에 갈 것도 없고. 서로 고소할 것도 없겠네요."
"예."
"치료비도 각자 부담하면 되는 거고."
"예. "
하지만 부장은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강경했다.
"안경값 12만원은 받아야겠어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상아도 맞은 충격으로 태국 간다고 하고, 재입국한 지 두 달 밖에 안 되어서 돈 벌어놓은 것도 없다는데 그거 안경값 꼭 받아야 되요?"
"예, 새 안경이거든요."
"저희가 고소하면 부장님한테 불리할 텐데요. 사장님에게 인사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그래도 양보 못합니다. 왜냐면 새 안경 끼고 온 첫날이었거든요."
도저히 대화가 안 되어서 전화를 끊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사장님과 직접 통화했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폭행하는 것은 단순 폭행사고와 다릅니다. 아시죠? 그리고 사장님도 관리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예, 그렇겠지요."
역시 사장님과 접촉해야 대화에 진전이 있다. 결정권을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런데도 안경값 받아내려고 하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요?"
"알았습니다. 안경값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사장님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대신에 사장님도 우리쪽에 원하는 게 있었다. "외국인 정원이 하나 줄면 안 되니까요. 상아를 회사로 보내주세요. 고용지원센터에 데리고 가서 퇴사 처리하고, 대신에 다른 외국인 받겠습니다."
"좋습니다. 상아 보내면 월급 깨끗이 정산해주시는 거죠?"
"물론이죠. 오늘 중으로 다 계산해서 주겠습니다."
나는 이틀 후 아침 10시에 떠나는 방콕행 비행기표부터 예매했다. 그리고 상아를 회사로 보냈다.
수요일 오후 4시쯤 상아가 환해진 얼굴로 왔다. 밀린 월급을 다 받은 것이다. 예금통장을 보니 150만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퇴사 처리며 월급이며 비행기표며 모든 게 깨끗이 처리되었다. 다만 한 가지 미진한 점은 국민연금 8만 1천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상아는 그 돈을 포기하려고 했다. 수원시내 번화가인 인계동까지 찾아가서 수속을 밟아야 하니까. 어떻게 찾아가는지 길도 잘 모르고 번잡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안 받고 갔다가는 태국에 가서 틀림없이 후회할 터라, 국민연금 수원지사 약도를 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상아, 33번 버스 타고 수원역까지 가서 택시 타. 5천원밖에 안 나와. 택시 타도 7만 5천원이 남잖아. 국민연금 꼭 가야 돼! 알았어?"
"예. 갈게요. 몇 시까지 가면 되죠?"
"여섯 시까지.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으니 갈 수 있지?"
"예."
상아는 나와 그렇게 약속하고 떠났다.
그의 상처가 다 아물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국은 희미해지리라. 그리고 부디 한국을 나쁘지 않은 추억으로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단호히 거절 : 폭행을 당하면 어떤 대안도 거부하고 떠나는 것이 태국인의 일반적 특징이다. 폭행을 당하더라도 대개 회사를 옮겨 근무하는 베트남 사람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