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지는 나무 밑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걷는 거예요."
라고 정의했다. 명답이다. 하지만 썬 자신은 그다지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하고 공부하고 친구 도와주고 항상 바쁘니까.
낭만을 즐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가 투안이다.
그는 편도선염에 걸려서 치료해달라고 센터에 처음 왔다. 그러나 보건소가 쉬는 일요일이라 마땅히 치료받을 데가 없자 그대로 센터에 눌러앉았다. 그때 센터에는 이쁜 자원봉사자 통역이 있었는데 그는 그녀 옆의 책상에 붙어 앉아서 책도 보고 컴퓨터를 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순진한 태국인들을 상대로 상담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태국인들이 들어오면 완전히 사무적인 말투로
"외국인 등록증 좀 볼까요?"
하며 외국인등록증을 검사하거나, 지루한 듯 하품을 하며
"오늘 처음 왔어요? 두 번째 왔어요?"
하며 묻곤 했는데, 그 폼이 우리 센터의 직원보다 더 직원 같아 보였다. 이건 완전히 직원 사칭 아닌가!
▲ ⓒ프레시안 |
투안은 매주 일요일 왔다. 그러나 몇 주일 후 이쁜 통역이 복학해서 센터에 나오지 않자 투안도 발길을 끊었다.
몇 달 후 투안은 손가락을 다쳐서 발안 시내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병문안을 와달라는 전화를 해왔다. 나는 바빠서 못가고 집사람이 대신 병문안을 갔는데 헤어질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단다.
"나 심심하니 매일 와줄 수 있어요?"
우리 센터에서 한글학교를 개교하던 날, 꼭 온다던 투안이 오지 않았다. 이상히 여겨 전화했더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 지금 여의도에서 벚꽃 구경하고 있걸랑요."
그는 독자적으로 낭만을 즐기는 중이었다.
투안은 근 일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어 2009년에 들어서서도 석 달이 지난 어제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왜 통 안 보였어요?"
하고 묻자 그는 태연히 대답했다.
"베트남 갔다 왔어요."
"언제요?"
"7월에요."
"작년 7월?"
"예."
"그런데 이제 나타나?"
하고 묻자 그는 그게 어때서요 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얌전하게 말 잘 듣게 생겼는데 전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인물, 그가 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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