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교 초창기에는 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베트남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서 판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지난 가을 한글학교에서 서울랜드로 나들이를 갈 때 외국인은 총 64명이었는데 그중 베트남이 30명, 태국은 단 3명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뒤늦게 도착한 캄보디아인 3명이 이렇게 물었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어느 버스 탔어요?"
"2호차."
그러자 캄보디아인들은 2호차로 올라탔다.
한글학교에 선생님은 많지만, 교실 뒤에서 지원할 사람이 적다. 그래서 필자의 아내가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때가 많다.
아내가 센터에서 5백미터쯤 떨어진 한글학교로 출발할 때는 양손에 든 게 많다. 학생들에게 한국 노래를 들려줄 씨디 플레이어와 간식시간에 먹을 귤이나 비타500 등등. 그래서 손이 자유롭지 못하다. 한글학교로 들어가려면 문을 두 개 따고 들어가야 한다. 교실 앞에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쳐놓은 비닐하우스의 문과 교실의 문. 비닐하우스로 들어가서 막 교실 문을 따려고 하는데 바로 문 앞에 커다란 쥐가 한 마리 죽어 있다.
"어마!"
아내는 쥐를 피해 껑충 뛰어서 양쪽에 물건을 잔뜩 든 손으로 간신히 문을 따고 들어갔다. 조금 있다 자원봉사자 C씨가 왔다.
"쥐 봤어요?"
"예."
예습하는 학생들이 다섯 명쯤 왔다. 아무래도 비타500이 모자라서 더 사러 가야 하는데 쥐 때문에 무서워 나갈 수가 없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눈을 질끈 감고 건너 뛰려고 하는데 문지방 밑의 쥐가 사라지고 없다.
"어머, 없어요 없어."
C씨도
"어떻게 됐지?"
하고 내다보니까 근처에 있던 베트남 사람 안이
"뭐가요?"
"쥐, 쥐 있었는데. 지금 없네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제가 치웠습니다."
한글교실에 달린 형광등 8개 중 4개가 안 들어온다. 그래서 교실이 밝지 않다. 아무도 고칠 생각을 안하는데 어느 날 베트남 사람 둘이 공구상자와 형광등 자재를 잔뜩 들고 나타났다. 펑과 리아던이다.
한글공부가 끝난 것이 오후 5시. 펑과 리아던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더니 천정을 뜯어냈다. 우리 생각에 그냥 형광등만 갈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천정 위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 배선을 점검하고 연결하고. 그 다음에 줄을 늘어뜨려놓고 사다리를 내려와 프레임을 조립하고 다시 올라가서 천정 우묵한 곳에 프레임을 끼워 놓고 두개짜리 등을 다는 복잡한 작업이다. 의외로 시간도 많이 걸려서 한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더니 두 시간도 넘게 걸린다.
▲ 펑(왼쪽)과 리아던ⓒ프레시안 |
나도 6시에 상담을 끝내놓고 음료수를 사가지고 달려갔다. 그들은 사다리를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며 하나하나 고쳐나갔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은 7시 반에야 끝났다. 두 시간 반 동안 노력한 수고비는 못 준다 하더라도 자재비는 줘야 할 것 같아서
"자재값 얼마 들었어요?"
했더니 그들은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재 가져왔어요."
나는 저녁이라도 먹으라면서 2만원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웃으며
"친구들이 저녁 사준다고 기다리거든요."
하며 받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왜 저들이 미국한테 이겼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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