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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필요해서 하는 일인가?

[한윤수의 '오랑캐꽃']<45>

화성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김치 필요하지 않으세요? 외국인 근로자들한테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경우 즉답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 나는
"글쎄요. 조금 있다 전화드릴 게요."
하고는 마침 센터에 와있던 외국인들에게 물어보았다.

김치를 주면 가져가겠느냐고 묻자 그들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계속 답변을 요구하자 필리핀 사람 하나가
"맛을 보고서요."
하고 대답했다.

명답이다. 그들은 맛있는 것만 가져가지, 맛없는 것은 절대로 가져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필요한 것만 가져가지, 아무거나 준다고 다 가져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이 외국인에게 무엇인가를 줄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시흥의 독지가가 프리 사이즈의 작업복 바지 몇 상자를 보내왔다. 공장에서 작업할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아서 외국인들에게 가져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몇 사람만 마지못해 가져갔을 뿐, 그 바지는 좁은 사무실 공간을 차지하고서 고스란히 남아 있다. 1년이 넘도록! 그들은 자기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새 바지라도 가져가지 않는다. 만일 재활용품을 주면 가져갈 거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아직도 있다면 그는 큰 착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화성시의 어느 면에서 해마다 외국인 위안잔치를 열어준다. 면사무소에서는 작년에 100명이 참석했기 때문에 올해는 의욕적으로 200명분의 음식과 선물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참석한 사람은 60명도 되지 않았다. 그 60명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두 회사의 사장님에게 부탁하여 동원한 인원이었다. 결과적으로 자발적으로 참석한 외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날 화성보건소에서도 개인용 구급약품과 콘돔 등의 선물을 마련했는데, 그 선물이 고스란히 남아서 우리 센터의 차지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 센터는 그 물품을 요긴하게 썼다. 구급약품이 꼭 필요한 외국인에게 나누어 주었으니까.

외국인이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 이게 무지하게 중요하다.
한국인이 흔히 실수하는 것은 외국인이 필요한 것을 해주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외국인에게서 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한 장의 감동적인 사진을 찍기 위하여 외국인을 동원하는 것, 이게 가장 나쁜 경우인데, 대부분의 행사는 이 목적을 위하여 기획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보여주는 게 있어야 후원금이 들어오니까. 그렇지만 너무 보여주는 것 위주로 외국인 행사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뭔지 물어보라. 그들은 서슴없이 대답한다.

"제일 싫은 거요? 행사에 동원되는 거죠."

약 3년 전 일요일 오후 늦게 어느 도시의 큰 교회에서 전국에서 동원된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국악 공연을 보여 주고 예배 한 번을 보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저녁으로 설렁탕 한 그릇을 먹이고는 기념식과 예배를 또 한 번 보았는데 끝난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저녁 내내 외국인들이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몸을 비비 꼬며 투덜거렸다. 제발 이런 행사는 안했으면 좋겠다.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들이다. 가령 볼펜이나 작은 수첩 같은 선물을 주면 대단히 좋아하는데 이유는 전혀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선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외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이라고 절대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 이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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