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동남아시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동남아시아

[한윤수의 '오랑캐꽃']<42>

우리 센터는 '동남아시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동남아시아 사람이 주로 드나들고 둘째, 돈은 없지만 먹을 것은 남아돌고 셋째, 물물교환으로 먹고 살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태베필인스캄'이라고 순서를 매겨 외우는 나라들 즉 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사람 순으로 센터에 많이 드나든다. 이는 화성시 거주 외국인 비율 하고 거의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태국 4천 이상, 베트남 3천 이상, 필리핀 2천 이상,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각 1천 명 이상.

둘째 돈은 없지만 먹을 것은 남아돈다는 얘기를 해보자.
밀린 월급이나 퇴직금을 받아주면 꼭 감사 표시를 하려 드는 것이 베트남 사람들이다. 함께 노동부나 고용지원센터, 은행 등을 다녀오다가 센터 근처에 이르러
"먼저 가세요. 잠깐 어디 좀 들렸다 갈 테니까."
하면 일단 수상하다고 보면 된다.
아무래도 눈치가 뭐라도 사올 것 같아서,
"아무것도 사오지 마, 아무 것도!"
해보았자 전혀 소용이 없다. 커피나 비타500을 사들고 와서 수줍게 내밀면 안 받을 수가 없다. 이왕 사온 것을 어떡하나! 그래서 사무실에는 여기도 커피 저기도 커피가 굴러다닌다. 사실 요새는 커피 먹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하기야 웰빙 바람이 불어서 외국인들도 커피는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성의가 고마워서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간 베트남 사람들 인사성 하나는 알아줘야 돼."

그런데 이 말이 유난히 귀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태국인 통역 와라펀이다. 그녀는 자존심도 강하고 조국에 대한 애정도 대단한 사람인지라 어느 날 아주 작심하고 태국인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왜 우리 태국 사람은 인사를 못하는 거예요? 베트남 사람보다 못한 게 뭐 있다구? 내가 베트남 통역 앞에서 정말 챙피해 죽겠어. 하여간 돈 받고도 인사 안 할 사람은 앞으로 나한테 전화도 하지 말아요."

전화도 하지 말라! 이건 폭탄선언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센터>이니까. 그녀가 관리하는 태국인의 전화번호만 수백 개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부지기수라 붙여진 별명이다. 그녀의 일갈은 효과가 즉각 나타나서 태국인들이 선물을 사들고 오기 시작했다.

베트남인의 선물은 커피, 비타500, 귤 등으로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태국인의 선물은 다양해서 상상을 초월했다. 붕어빵, 우유, 케잌, 녹차, 요플레, 콜라, 도넛, 초코파이, 시골장날에나 볼 수 있는 센베이, 오꼬시, 울긋불긋한 알사탕 그리고 웬 제수용품 코너에서 사온 듯싶은, 지금 한국인은 먹지 않는 약과와 유과 그리고 수박, 참외, 딸기, 포도, 사과, 배 등등.

냉장고 안에 있는 것도 미처 먹지 못하여 상할 염려가 있었지만 그 위에 먹을 것이 너무 많이 쌓이는 바람에 나는 매일매일 직원들에게 할당하여 그것들을 강제로 소진시켜야 했다.

그래서 어느 남자 직원의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너는 왜 맨날 사무실에서 뭐를 그렇게 훔쳐 오냐?"
좌우지간 돈은 없지만 먹을 것은 남아도는 꼴, 이것이 동남아와 똑같지 아니한가!

셋째, 물물교환으로 먹고 산다는 얘기를 해보자.
맥스웰 커피는 너무 진해서 물을 두 배로 타도 다른 커피에 비해 입맛이 쓰다. 그런데 이 커피가 제일 싸서 그런지 베트남인이나 태국인이 사오는 커피가 모두 맥스웰이었다. 직원들도 안 먹지, 외국인들도 안 먹어서 이 커피는 서랍이건, 창틀이건, 냉장고 위건 아무데나 장소를 차지하고 쌓여 있었다. 100개 들이 큰 봉지로 여섯 개인가 일곱 개가. 아무도 안 먹는 이 커피를 보다 못해 직원 두 사람이 각각 양손에 들고 처분하러 나갔다. 그들은 처음에 이 커피를 사온 곳으로 추정되는 농협 하나로 마트에 반품교환을 요구했다. 봉지에는 모두 하나로 마트 가격표가 붙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농협측은 영수증이 없다고 바꿔주지 않았다.

직원들은 작은 구멍가게를 찾아가 반값으로라도 팔려고 했다. 하지만 인기품목이 아니라 사주지 않았다. 작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구멍가게 다섯 곳을 돌아도 실패하자 직원들은 작전을 바꿨다. 우리가 점심을 대놓고 먹는 만호식당을 찾아가 거의 협박 수준의 압력을 넣은 것이다.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주는 커피, 이걸로 안될까요? 반값에 드릴 테니까!"
안 사주면 안 될 것 같은 심각한 분위기를 눈치 챈 식당 주인은 선선히 응락했다.
"그러죠 뭐."
직원들은 이 돈으로 맥심 커피를 사다 먹고 있다.
물물교환으로 살아가는 것, 이 또한 동남아와 같지 아니한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