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신문·방송 겸영, 대기업의 소유 진입 규제 완화 등으로 방송 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대부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제공한 것인데, KISDI가 낸 예측 보고서 등의 내용은 실제로 낯뜨겁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다."
17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4당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연 '언론관계법 제·개정과 민주주의의 위기' 토론회에서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연구 결과를 조목조목 비판한 신태섭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의 분석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신태섭 정책위원은 '일자리 창출', '방송 산업 활성화' 등 한나라당의 언론 관계법 개정안 추진의 논리를 제공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한 KISDI의 논리적 허점과 가정의 오류, 비현실성 등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날 토론회의 사회를 본 강상현 미디어공공성포럼 운영위원장은 "신태섭 위원이 KBS 사장 교체 과정에서 동의대에서 해직된 이후 시간이 많아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신태섭 위원은 지난 1월 16일 법원으로부터 "동의대의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으나 학교 측이 항고해 아직 재판 중에 있다.
"기본 논리부터 가정, 지수 모두 어이없어"
신태섭 정책위원은 "KISDI가 낸 방송 소유·겸영 규제에 따른 경제적 효과 예측은 한마디로 근거가 없다"며 "KISDI 예측은 우선 기본 논리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예측 과정에서 개입된 가정이나 적용된 지수도 공감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신 위원은 "KISDI의 기본 논리는 소유·겸영 규제 완화로 대기업과 신문 기업, 외국 등 신규 사업자가 방송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면 투자와 경쟁이 활성화돼 그로 인해 콘텐츠의 고품질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한나라당의 안 대로라면 새롭게 추가된 투자금의 대부분은 방송사 설비를 갖추고 인력을 채용하는데 사용되고 실제 콘텐츠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KISDI가 '소유·겸영 규제를 완화하면 방송 광고 시장의 확대도 이뤄지고 방송 산업의 확대가 이뤄진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도 논리적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매체가 늘어난다고 광고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각 매체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증가하는 속도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신 위원은 "KISDI 보고서는 규제 완화에 따른 신규 채널 진입으로 지상파 방송 광고와 비지상파 방송 광고가 양쪽 다 동일한 비율로 늘어날 것으로 기계적으로 예단하고 있다"며 "그러나 아직 성장의 탄력이 죽지 않은 비지상파 방송은 늘어날 수 있으나 포화 상태에 이른 지상파 방송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KISDI의 방송 광고 확대 폭 예측은 3분의 1 이상 줄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신 위원은 KISDI가 '소유·겸영 규제 완화로 콘텐츠의 고품질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과장고 비판했다. 신 위원은 "KISDI의 주장은 '규제 완화로 콘텐츠에 돈이 가면 사람들이 케이블방송의 품질이 좋으니까 돈을 더 주고 유료 가입을 해서 케이블을 보겠다고 할 것이고, 이로 인해 새 케이블 시장이 늘어나고 성장한다'는 가정"이라며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케이블방송이 철저히 '난시청 보완', 즉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 서비스되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예측은 케이블이 현재 무료로 제공되는 지상파 콘텐츠의 품질을 상회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지상파 방송 시스템이 케이블TV 수준 이하의 저비용·저품질 방송으로 후퇴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케이블 프로그램을 구매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국 모델을 무조건적으로 대입해 과도한 경제적 성과가 있는 것처럼 논리를 전개했다"고 비판했다.
신 위원은 "KISDI는 소유·겸영 규제를 완화하면 방송 산업내 고용이 2523명~4470명 증가한다고 하나 KISDI가 이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한 취업계수는 '매출액 10억 원당 취업자수'를 표현한 것이지 특정 산업에 10억 원을 투자했을 때 신규 취업자가 몇 명인지를 가리키는 지표가 아니다"라며 "이런 식의 오용은 현실과 괴리된 황당한 추론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신·방 겸영으로 '글로벌 미디어 기업' 출현? 봉창 두드리는 소리"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 등이 '신문·방송 겸영 허용으로 글로벌 미디어기업이 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두고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미디어기업들은 △기본적 재생산 구조를 갖출 수 있는 자국 내수 시장의 확보 △희소한 인기 콘텐츠를 독점 배급할 수 있는 능력 △해외시장 개척 및 공략 등 세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신·방 겸영시 시너지 효과는 뉴스 생산·판매에만 성립하는데 글로벌 복합 미디어들의 주 매출은 영화, 드라마, 만화, 오락, 스포츠, 다큐 등의 판매에서 발생하지 뉴스 의존도는 낮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이 방송이 진출한다고 해도 국제적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나올지는 의문"이라며 "외국의 글로벌 미디어들은 모두 미디어 분야에 집중되고 특화된 자본 구조와 투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분야를 문어발식으로 얽어맨 형태라 국제적 경쟁력에서 현저히 떨어진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나라당 등은 세계적인 추세도 왜곡하고 있다. 미국 등은 미디어기업이 산업을 싹쓸이하고 문화를 침식시키는 것을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관심사를 두고 있다"며 "정부 여당이 진정 국제적 수준의 미디어기업의 출현을 원한다면 공허한 슬로건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 산업 진흥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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