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들과 나와의 관계도 비슷하다. 사적으로 너무 가까워지면 부작용이 생긴다. 예를 들어서 우리 부부가 딸처럼 여기는 베트남 '공주'는 개인적으로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겨도 해결해 달라고 센터로 쫓아온다.
"나 아파서 회사 바꿔야 되요."
"아파도 좀 참아."
내가 아무리 우거지상을 쓰고 쫓아 보내도 허사다. 어느 결에 다시 숨어 들어와서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가니까. 직원들도 공주만 나타나면 죽을 맛이다. 우리 부부와의 친분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까.
그런 부작용을 알기 때문에 나는 노동자들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와 노동자 사이에는 항상 일정한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가 있듯이, 거리를 가질 필요가 없는 노동자도 있다. 그는 태국 여성으로 이름이 특이하게도 한국 사람처럼 수진이다. 수진이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 이름도 되는데 그녀 역시 매처럼 날렵하게 행동한다.
처음엔 그녀도 밀린 임금 때문에 내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에는 한 번도 나에게 부탁한 적이 없다.
수진은 잊을 만하면 귤이나 붕어빵 봉지를 들고 나타나
"잡수세요."
하고 잠깐 의자에 앉았다가는
"나 가요."
하며 이내 사라진다. 동작이 굼뜬 내가 미처 답례할 사이도 없이.
▲ ⓒ프레시안 |
어느 가을날 시장통에서 앞치마를 두른 수진을 만났는데 그녀는 반가워서 양손으로 우리 부부의 손을 갈라 잡고 흔들었다.
"웬 앞치마?"
하고 묻자 그녀는
"일 끝나고 식당 아르바이트 해요. 요새 잔업이 없거든요."
하고 말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녀는 태국에 딸린 식구가 많아서 잔업이 없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보충해야 한다.
그녀는 한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어제 귤 주스 한 박스를 사가지고 나타났다. 나는 또 그녀가 금방 사라질까봐 재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요새도 아르바이트 해요?"
"안 해요."
"왜요?"
"늦으면 새벽 두 세 시까지 일하는데, 회사 일에 지장을 주거든요."
"그럼 혹시 다른 문제 있어요?"
"없어요."
"그럼?"
"나 2월 18일 태국 가요."
"그럼 퇴직금하고 국민연금 받아줄까요?"
"아뇨. 회사에서 알아서 다 해줘요."
그녀는 회사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태국 사람이 다 수진이 같다면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책임과 권리를 알고 어떻게 행동할지 다 아는데. 그녀는 자립한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서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람인 우리를 위로하는 여유를 갖고 있다.
그녀와 나는 귀국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쓰고 있던 이쁜 삼색 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무슨 모자인지 아세요?"
"몰라요."
"태국 국기."
"아!"
그건 태국 국기의 삼색을 따서 만든 털 모자였다. 청색은 국왕, 흰색은 불교, 빨강은 국민의 피.
그러나 나는 어느 모로 보나 당당한 수진이 쓴 모자를 보고 다른 이미지를 떠올렸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삼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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