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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은 것'에 승부를 건다"

[세명대 저널리즘특강]<11> 민경중 <CBS> 보도국장

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보도와 칼럼, 프로그램 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는 1학기에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데 이어, 2학기에는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미디어 기기 나왔다 하면 사는 '얼리 어댑터'

민경중 <CBS> 보도국장 겸 <노컷뉴스> 편집국장은 마흔여섯 살이다. 하지만 목동 <CBS> 사옥에서 만난 민 국장은 '신세대'였다.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을 만나자마자 새로 산 아이팟터치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 가운데서도 최신 기종이었다.

"이메일 확인은 기본이고 실시간으로 뉴스 검색도 가능해요. 정말 새로운 세상이죠."

사옥을 견학한 뒤 강의실로 들어서자 민 국장은 조그만 노트북으로 강의 준비를 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장비를 척척 연결하는 모습에서 최신 기기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오히려 앞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88년에 처음으로 노트북을 샀어요. 당시 기자들이 손으로 써서 기사를 송고할 때 저는 워드로 정리하고 프린트해서 앵커들에게 보냈죠. 기자들의 글씨를 못 알아봐서 앵커들이 쩔쩔매는 경우가 많았지만 제 기사는 그럴 일이 없었어요. 그게 제 경쟁력이었죠. 지금도 새로운 미디어 기기가 나오면 꼭 사보려고 해요."


▲ 민경중 국장의 주변엔 항상 최신 기기들로 가득하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 거기서 앞서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긴요하다고 말한다.ⓒ이해곤

그는 지금까지 산 노트북이 수십 대는 될 거라고 했다. 이렇게 미디어와 관련된 기기를 사고 공부하는 것은 미디어 시장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시스템을 익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언론사 경쟁은 유통망 싸움"

라디오 저널리스트로서 민경중 국장의 경력은 화려하다. 1996년 한국방송대상 보도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2006년에는 앵커상도 받았다. 라디오 진행자로 앵커부문 수상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라디오 저널리스트로서 민 국장은 자리를 굳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CBS>에 <노컷뉴스>를 만들었다. 2003년 11월 3일 서비스를 시작한 뉴스 전문 인터넷 포털사이트 <노컷뉴스>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언론사 내부 정보와 뉴스 뒤의 뉴스를 '편집 없이' 그대로 보여줄 뿐 아니라 신속성과 함께 공정성도 강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또 뉴스 전문 인터넷 포털 사이트라는 새로운 분야까지 만들어냈다. 기존 언론사 사이트는 뉴스의 '재 업로드' 용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민 국장은 이를 새로운 미디어 시장으로 생각했고 큰 성과를 거뒀다.

"인상 깊게 본 UCC가 있었어요. '매트 하딩' 이란 미국인이 만든 동영상인데,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2003년부터 전 세계를 돌면서 막춤을 추고, 그것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UCC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어요.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한 그 동영상으로 그는 미국의 한 껌 제조회사로부터 후원을 받게 됐고, 이제는 생계 걱정 없이 이 일에 전념하고 있어요. '매트 하딩'은 UCC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렸고 가치를 높였어요. 그는 인터넷의 힘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 ▲ 매트 하딩은 42개국 69곳을 배경으로 2000여 명의 사람들과 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여준다. 2008년에 새로 제작된 UCC의 조회 수는 500만 건에 육박한다.

자신도 그 UCC를 패러디 해 제작중이라고 웃었지만, 이 이야기에서 민경중 국장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빨리 이해하고 앞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살고 싶어요. 하지만 이제 한 가지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인터넷은 생각과 사고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어요. 이제 신문과 TV, 라디오의 영역 구분은 없어지고 있어요. 언론의 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가 있습니다."

염진섭 전 야후 코리아 사장이 '이제 언론의 권력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하며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 다른 이들은 흘려들었지만 그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기존 언론사가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종로 싸전'이라면, 포털 사이트를 유통의 중심에 있는 '대형 할인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향후 언론사들의 경쟁은 유통망 싸움이 될 거라고 전망했다.

"네이버 초기 화면을 땅으로 가정하고 가치를 매겨보면 한 평(3.3㎡)에 26억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 나와요. 서울에서 가장 비싼 곳과도 비교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가치입니다. 신문시장은 어렵다고 하고, 방송도 시청률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죠. 하지만 네이버나 다음에는 하루 수만 명이 접속해서 뉴스를 보고 들어요. 이제 포털사이트의 권력도 매우 커진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걸 용인했던 언론의 책임이 크죠. 하지만 앞으로는 언론과 포털사이트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뉴스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인터넷 언론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죠."

12월 중순까지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는 고 최진실 씨와 관련한 <노컷뉴스> 기사였다. 민 국장이 말한 뉴스의 흐름 속에서 <노컷뉴스>는 이제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려면 미디어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CBS> 기자들은 노트북은 기본이고 카메라와 각종 장비들을 한 아름씩 들고 다닌다. 뉴스를 글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소리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민 국장은 1인 미디어 시대에 그 정도 노력은 필수며 기본이라고 말한다.

▲ ▲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려면 능력 계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민 국장. ⓒ이해곤
"처음 신입사원들은 노트북에 카메라까지 엄청난 장비를 지급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죠. 선배들은 속으로 그게 족쇄가 될지 모르고 좋아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해요. 하지만 그게 앞으로 <CBS> 기자들의 경쟁력이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메이저/마이너' 언론사 구분은 없어질 거예요. 기자 개인의 역량을 키워야만 합니다. 10년 뒤에는 어느 언론사 기자라는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돼야 합니다. 지금부터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키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굳이 사회과학을 공부하거나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느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고 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민경중 국장은 그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자신을 위한 투자와 갈고 닦음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면 내가 더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는 논리는 어이없어 보이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푸근함 뒤에 감춰진 열정, 변화의 시대를 준비하는 민 국장의 모습은 남보다 빠른 스타트를 위해 최대출력으로 워밍업을 하고 있는 경주용 자동차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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