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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근거지 캠프 주민들 "사람답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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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근거지 캠프 주민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73> 2009년 중동 현지 취재기 3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파괴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통역 칼리드와 함께 아침 일찍 나섰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가자 전역에 걸쳐 이뤄졌지만, 북동부 지역의 피해가 크다.

가자 지구의 중심인 가자시티의 동남쪽에 자리한 알-제이툰 마을, 가자시티 동부의 알-투파 마을이 특히 그러하다. 이 지역에는 이스라엘군이 거듭 공습을 되풀이 했고, 그런 다음 탱크를 앞세운 이스라엘 군이 가자 접경을 넘어 공격해 들어와 한동안 주둔을 했었다.

알-제이툰과 알-투파 마을은 가자시티 동북쪽의 자발리야 난민촌과 더불어 하마스(HAMAS, '팔레스타인을 지키는 회교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합성한 이름, 1987년 창립)의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우리가 하마스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이스라엘에 맞서 싸운 전투원이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폭격해 집을 부수고 사람 목숨을 앗아가느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며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 가자지구 동부, 이스라엘 접경지대인 알-투파 마을은 이스라엘군의 거듭된 공격으로 마을 전체가 철저히 파괴됐다. 파괴된 집에 사람은 없고 팔레스타인 깃발만 홀로 나부낀다.. ⓒ가자=김재명
"고의적 살인이자 전쟁범죄다"

알-제이툰 마을의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이 마을사람들 70명을 한 집에 몰아넣고는 바로 그곳에다 포격을 해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전화로 연락을 받은 병원 응급차량이 마을로 들어서는 것조차 이스라엘 군이 막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고의적인 살인이자, 전쟁범죄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이번 전쟁이 터지기 전에도 가자지구 곳곳에서 이스라엘 군은 여러 비난 받을만한 일들을 저질러왔다. 군사작전에 필요하다는 핑계로, 이른바 시계(視界)를 넓힌답시고 그곳 농민들의 생업인 올리브 밭을 불도저로 갈아엎고 난민촌 주택들을 허물어뜨리곤 했다. 이번엔 다른 훨씬 더 큰 규모의 파괴가 널리 이뤄졌다.

피해주민들의 분노와 슬픔

이스라엘군 공습에 부인과 아들 둘이 심하게 다쳤다는 알-제이툰 마을의 한 농부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 두고온 가족 걱정도 걱정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건강을 되찾겠지. 그러나 잘려나간 올리브 나무들은 어떡하나. 나무 한 그루를 다시 심어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땀과 시간이 들어가는데..."

무너진 집 앞에서나 이스라엘군 탱크에 황무지로 바뀐 올리브나 레몬 밭에서 서성대던 주민들은 통역 칼리드와 내가 다가서면 당시 상황을 기꺼이 자세하게 설명하려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고 집과 농토를 잃은 그들의 절박한 처지를 헤아려 볼 때, 아마도 물에 빠져 짚불이라도 잡는 심경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니겠나 싶었다.

제한된 취재일정 탓에 그들의 이야기를 넉넉히 듣지 못하고 구경꾼마냥 잠시 왔다가 휙 떠나는 것이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피해지역 주민들로부터 조금씩 다르면서도 하나같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부 이스라엘 병사들은 사람 죽이고 집 부수는 일을 즐겼던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슬며시 들었다. 가자 지구 곳곳에서 저질러진 이스라엘군의 파괴행위가 도를 넘어서 인간성을 포기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만큼 현장은 참혹한 모습이다.

▲ 이스라엘군 공격에 삶의 터전인 올리브 나무들을 잃은 한 팔레스타인 농부의 분노와 슬픔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가자 동부 알제이툰 마을) ⓒ가자=김재명

하마스 근거지 이슬람 사원도 파괴

가자시 동북쪽에 자리한 자발리야 난민촌도 이스라엘 공습에서 비롯된 파괴의 광풍을 비껴가지 못했다. 상주인구 10만명의 이 난민촌 주민들 대부분은 지난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 대대로 살던 옛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은 하마스의 강력한 지지기반이다. 6년 동안 이어졌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 1987-1993년)가 바로 이곳에서 처음 일어나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번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자발리야 난민촌의 중심지인 알-콜라파 이슬람사원과 그 앞의 널찍한 광장에서는 제1차 인티파다 기간 중은 물론 제2차 인티파다(2001년~현재)가 벌어진 뒤에도 각종 정치적 집회가 열려온 곳이다.

지난 2004년 이스라엘군 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 사망한 셰이크 아메드 야신(하마스 창립자, 정신적 지도자)도 생전에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이곳 광장에 나타나 투쟁의지를 고취시키는 연설을 하곤 했다.

이렇듯 반이스라엘 저항의 정신적 구심 역할을 해온 알-콜라파 사원은 그동안 새로운 성전을 크게 짓고 있었는데, 이번 이스라엘 공습으로 말미암아 거의 완공단계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모습이다. 1층이 거의 내려앉아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생겨났다.

바로 그곳에서 만난 한 이슬람 성직자는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성스런 사원을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유대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사악한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스라엘군은 이슬람 사원조차 공격목표물에 넣었다. 하마스의 근거지인 자발리야 난민촌 중심지인 알-콜라파 사원의 파괴된 모습(가자시티) ⓒ가자=김재명
"전쟁 이미지 볼 뿐, 고통 몰라"

가자 지구의 파괴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문득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미국의 여류 작가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치열한 현실 비판의식에 바탕, 손탁은 미 조지 부시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던 평화운동가였다.

그녀는 동유럽 발칸반도에서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사라예보에서 죽음의 공포와 절망에 빠진 보스니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Godot)를 기다리며>를 연극 무대에 올린 휴머니스트였다.

한국에도 소개된 책인 <타인의 고통>의 저자인 손탁은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이미지를 볼뿐, 전쟁을 직접 겪는 이들의 고통을 잘 모른다"라고 했다. TV나 신문 등 활자매체에서 보는 전쟁의 이미지와 실제 전쟁상황 속에 갇힌 사람들이 겪는 고통 사이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손탁은 그 한 보기로, 공습 현장에서 들리는 폭음 소리는 TV 화면으로 전달되는 폭음보다 1000배나 된다고 했다. 그래서 손탁은 보도사진이 주는 이미지만으로는 전쟁의 실상이 어떠한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제대로 상상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손탁의 말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습에다 그대로 적용시키면 어떨까. 2009년 의 첫 전쟁으로서 지구촌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던 가자 지구의 참상은 여러 보도사진과 TV 화면으로 지구촌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졌다.

그렇지만 가자 지구의 끔찍한 현장상황을 두눈으로 보고, 그곳 사람들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손탁의 말이 옳다고 새삼 느껴졌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지금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고통의 참모습을 보도사진과 TV 화면이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그저 작은 부분을 비출 뿐이다. 이런 답답한 생각을 하면서 가자에서의 또 다른 우울한 밤을 맞았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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