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기자협회(협회장 민필규)와 KBS PD협회(협회장 김덕재)가 29일 제작 거부를 잠정 중단했다. KBS 경영진이 양승동 PD, 김현석 기자, 성재호 기자 등에게 내렸던 파면, 해임 등의 징계를 정직 이하로 낮춤에 따라 기자와 PD들은 제작 거부를 잠정 중단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양승동 PD, 김현석·성재호 기자 등은 "정직도 부당 징계인 것은 마찬가지"라며 징계 무효를 위한 법적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앞으로 법적 소송을 통해서라도 회사의 징계가 부당함을 반드시 증명해 내겠다"고 밝혔다.
"착각하지 마라, '개전의 정'은 없다"
이들은 이날 KBS가 징계 수위를 낮추면서 마치 징계 대상자들이 반성의 뜻을 보인 것처럼 홍보한 것을 두고 크게 반발했다.
이날 KBS 홍보팀은 재심 결과를 알리면서 "특별인사위는 징계 대상자들이 지난해 8월 이사회 개최 방해 집회 과정 등에서 벌어진 폭력 행위 등 불상사에 책임을 느끼고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 노력 등 원심과 달리 개전의 정을 보였고, 노조의 중재 노력과 선처 요구, 그리고 대상자들에 대한 선처를 위해 제출된 탄원서 등을 고려해 징계 수위를 낮췄다고 밝혔다"고 했다.
이에 당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양승동 PD는 "우리는 소신과 신념과 양심을 전혀 팔지 않았다"면서 "정권과 KBS 이사회가 원인을 제공하고 그에 대응하려다 일부 불상사가 벌어진 것에 유감을 표명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개전의 정'으로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김현석 기자도 "아무래도 우리가 낸 재심신청서를 공개해야할 것 같다"며 "재발 방지 노력, 개전의 정 표시한 적 없다"고 했고 성재호 기자는 "노조와 사측이 징계 수위를 두고 협상을 벌이다 재심청구서 문안을 아예 작성해서 왔다"면서 "대강 내용이 '잘못했다. 반성한다. 뉘우친다. 선처를 바란다' 이런 내용이었다.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회사야 으레 그러려니 하더라도 잘못한 게 있어야 잘못했다고 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이날 보도자료는 KBS 인사운영팀에서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자는 보도자료가 작성된 정황을 담은 글을 올려 "이번 상황이 단순 실수는 결코 아니라고 판단된다"며 "사측은 그동안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끊임 없이 반성문 성격의 재심 청구서를 당사자들에게 요구했고 실제로 개전의 정이 가득 담긴 반성문을 직접 작성해 이를 재심청구서로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번 보도자료 사건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KBS 홍보팀은 이후 보도 자료를 수정해 "불상사에 대해 책임감과 유감을 표현했다"는 문구로 바꿨다.
▲ 김현석 기자, 양승동 PD, 성재호 기자와 KBS 기자·PD들이 마주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 |
"제작 거부는 중단…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부당 징계 철회를 위해 벌인 투쟁을 두고 KBS 구성원들은 절반의 승리라는 평가다. 부당징계 전면 백지화와 사측의 사과 등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제작 거부 하루 만에 파면·해임이라는 중징계의 수위를 낮추는데 성공했고 이후 2월 방송법 투쟁 등으로 이어갈 동력을 얻었다는 것.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KBS 본관 1층 민주광장에서 열린 부당 징계 철회를 위한 기자·PD 합동 집회에서 "오늘 우리가 얻은 결과는 작은 승리라고 할 수는 있지만 끝도 아니고 최종 종착점도 아니다"라며 "이번 과정을 통해 강고하게 뭉친 힘을 바탕으로 부당 징계 완전 백지화, 책임자 문책, 회사의 사과 요구 등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KBS PD협회 비대위는 "오늘 18시부로 제작 거부는 잠정 중단하고 투쟁 방식을 전환한다"며 "강력한 연대를 바탕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제작 거부를 포함한 모든 수단으로 단호히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민필규 KBS 기자협회장은 "우리는 아직 부당 징계 완전 백지화라는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크게 두세 가지의 성과가 있다고 본다"며 "일단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 사측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면서 우리의 자율성을 옥죄던 것을 막아냈고 '우리가 이만큼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투쟁 동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를 향후 투쟁에 이어갈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KBS 기자협회 비대위는 "일단 비대위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면서 향후 뉴스 공정성 문제나 이번 사태를 유발한 노무 관리 측의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겠다"며 "향후 우리 회사를 KBS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비판 정신이 살아있는 회사로 만들어나가는데 진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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