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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의 소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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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의 소야곡

[한윤수의 '오랑캐꽃']<29>

"태국 사람? 무조건 써야지!"
태국 노동자를 선호하는 사장님들이 많다. 워낙에 말 잘 듣고 순진해서다. 그러나 태국인의 순박함을 역이용하는 사장님들도 간혹 있다.

태국인 타원은 퇴직금 190만원을 받지 못했다. 회사에 전화하자 담당자는 법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노동부에 진정서를 냈다.

노동부에서 출두하라는 전화가 가자, 사장님의 생각이 달라졌다. 사장님은 타원을 공장으로 오래서 구슬렀다.

▲ ⓒ프레시안

"우리 합의하자. 꼭 노동부까지 갈 게 뭐 있니?"
"어떻게요?"
"돈을 주면 되잖아."
"네."
"190만원 다 줄 순 없어."
"왜요?"
"가스비하고 기숙사비 빼야 돼. 알지?"
"몰라요."
"하여간 다 빼면 82만원이야. 알았지?"
"몰라요."
"그것만 줄 게. 괜찮지?"

타원은 체념했다.
"....... 예."
"근데 지금은 돈이 없어. 한 달 후에 줄게."
"예."
"그럼 합의서를 쓰자."
"예."
"자, 여기다 싸인해."
"예."

타원은 싸인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사장님은 합의서 두 장을 자기 혼자 다 갖고 타원에게는 주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바보가 있나? 왜 합의서를 달라고 하지도 못하는지? 아! 답답한 태국인이여!

어쨌든 노동부 감독관은 두 사람이 합의했다는 말을 듣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이제 노동부에다가는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리라! 일사부재리니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났으나 사장님은 돈을 주지 않았다. 더구나 합의서가 없으니 돈을 달라고 할 근거도 없었다. 그제서야 타원은 사장님에게 합의서를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타원은 결국 나를 다시 찾아와서 일을 수습해달라고 부탁했다. 일은 저 혼자 다 헝클어놓고!

"이건 돈 못 받아. 노동부에서도 끝났어."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도움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은 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또 스스로 돕지 않는 자는 하늘도 도울 수 없는 게 아닌가. 쓸쓸히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저 태국인들은 한국 사람하고 다른데. 아직도 농경사회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60년대 무작정 상경했다가 서울역 앞의 야바위꾼에게 속아 돈과 몸을 빼앗기던 순진한 시골처녀 같은 사람들인데! 내가 합리주의에 너무 물들어 저들의 순진무구한 심성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상담자는 피상담자와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데. 너무 멀리 그들과 떨어져 있었어.

나는 한밤중에 타원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하지 마라, *처음부터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왜 이렇게 고약한 서양식 합리주의에 빠졌는지 원인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한 가지 퍼뜩 생각나는 건 감염력(感染力)이 강한 음악이었다. 내가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은 모두 최신 서양음악이었으니까!

다음날 나는 차에 비치된 그 서양음악 씨디를 모두 치우고 <가요 반세기> 씨디로 갈아 채웠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노래를 들어야 태국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그런데 실제로 흘러간 우리 가요를 들으니 왜 그리 푸근한지. 각박했던 마음이 매일 매일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는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들으며 왔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 : 만일 우리 센터에서 진정취하서를 보냈다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서 다시는 이 사건을 문제 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쌍방 불출석으로 인해 사건이 종결 처리되었기에 다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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