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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그리고 용산, 피울음 우는 거리에 나는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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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그리고 용산, 피울음 우는 거리에 나는 선다

[김상수 칼럼]<37>

2009년 1월 서울 용산에서 나는, 80년 5월 한 낮 전라남도 광주를 본다.

신열(身熱)이 난다.

목이 탄다.

손이 다 떨린다.

광주의 피 뿌리던 그 거리를 보았는가?

마른벼락이 치고 형제가 누이가 어버이가

피 흘리며 애타게 울부짖던

그 한낮의 절절한 통곡을 보았는가?

울음우는 소리를 보았는가?

오늘도 망월동 산자락에

수평으로 낮게 드리워 요동(搖動)치는 그 울음들을 보았는가?

피 울음우는 소리를 정녕 들었는가?

금남로 가로수에 더 자라지 못한 키 작은 나무 가지들이

안타까운 생(生)들을 서로 부대끼며 버티고 견디며 서있는

저 아련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용산, 100년의 식민지 터 긴 슬픔, 그 끝자락이 아직도 안 보이는가.

왜? 시너와 화염병을 들 수밖에 없었을까?

왜? 단 한 번의 인생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내던질 수 밖에 없었을까?

가슴이 미어 터지고 터져, 자꾸만 터졌기 때문이다.

내 아들 내 딸, 내 누이와 내 동생,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이고지고 가야하는 생이 너무나 낯설고 서러워

그 길이 하염없이 고행이고 고생길이니

너무나 슬픔에 차서, 어쩔 수 없었기에

나날의 인생에서, 살아가는 생이 너무나 버겁고 힘에 겨워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여기에, 사람으로 살고있소! 라고,

소리, 소리를, 끝까지 질러야만 했기에

바로 그 때문에.

제물 귀신에 눈 먼 야만의 행진에, 무지하고 영악한 걸신(乞神)들린 귀신들에게

우린 사람이라고, 사람이라고.

허나, 무참하게 타들어간 생명은

그냥 그렇게 주검일 뿐인가.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제 용서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이젠 간사한 혀와 가짜 고개 숙임에 절대 속지 않는다.

차마 모질게 하지 못하는 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간교하게 뚫어보고

그걸 사악하게 이용하여

모진 가난을 구실삼아

가공(架空)의 사설(私設) 낙원을 꿈꾸기에는

이제 너와 너희 집단의 악행(惡行)을 더 이상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없다.

전두환만큼이나 저열한 너.

따라서 너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 2009년 1월 겨울-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민주주의 시민들의 눈물은 아직은 따뜻하다.

5월 광주의 혼령(魂靈)을 껴안고 용산에서 광화문 큰 거리에까지-

아직은 울음 울 줄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시민들이다.

이제 시민들이 우뚝 당당히 같이 서고, 선다.

가시밭길 처절한 형국에도 결단코 흔들리지 않는다.

저 광주 5월 피멍의 소리-

저 호곡(號哭)의 소리를 듣고 보았기에

이제 어떤 사위(詐僞)에도 흔들리지 않고 끄떡도 하지 않는다.

용산,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

여기에 같이 선 착한사람들의 분노는

반드시 너의 끝장을 보고, 본다.

아! 광주여! 민주주의 자유의 정신이여!

용산, 그리고 광화문 거리에

그 준열(峻烈)한 정신이 같이 함께 있게 하소서.

용산, 당신들의 죽음에

당신들의 비참에

지금은 시민들이 답을 할 때임을 안다.

아, 인륜이여! 인간이여!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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