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사회를 보자면, 아베 신조 총리 재직 중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헌법 개정 문제가 좀 수그러든 느낌이 든다. 아베 정권 때는 헌법 개정을 위해 국민투표법까지 제정했으니 일부에서는 몇 년 안에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섣부른 예상을 했지만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그리고 아베가 물러난 뒤에는 헌법 개정 이야기가 일본 정부 내에서 적극적으로 흘러나오지는 않게 되었다. 아베의 뒤를 이은 후쿠다 총리 재직 시에는 후쿠다의 정치노선이 비교적 온건한 축에 속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하지만, 아베 이상의 강경 노선을 주창하던 현 아소 타로 총리가 헌법 개정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그의 정치노선으로 볼 때 다소 '의외'이다. 아마 그에 대한 지지도가 당의 안팎에서 바닥을 기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집권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 개정 문제는 물 건너간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한다 해도, 아니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기 때문에 헌법 개정 문제는 더욱 초미의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경우에는 명문 개정뿐만 아니라 해석개헌의 확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의 헌법문제는 주로 무장을 금지한 헌법 9조가 중심이다. 일본에서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9조의 회'를 만들거나, '9조 세계 대회'를 개최한 것은 이 같은 9조 중심 반대론을 대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9조를 중심에 두면서도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아니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논리가 있다. 바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인하대 이경주 교수가 평택 기지 문제를 평화적 생존권 차원에서 제기한 적이 있다. 평화적 생존권의 이론적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룰 여력은 없다. 다만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논리가 가지는 함의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평화적 생존권은 일본 헌법 전문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근거로 한다.
우리들은 전 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헌법 전문에 따르면, 전쟁으로부터의 공포나 가난이라는 결핍에서 벗어나는 것이 평화이며, 이런 평화가 침해받을 때는 생존권이라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권리가 재판상의 권리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헌법 전문은 재판규범성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규정성이 없으니 이 전문 내용을 근거로 재판을 구속할 수 없다. 하지만 구속성 여부는 별도로 하더라도 최근 헌법 개정 움직임에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개념을 대치시키는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하나는 헌법 9조 문제가 주로 국가의 주권(국권) 논의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주권 침해 가능성(군사적 위기)에 대한 대항 논리로서 무력하다는 점이다. 냉전 해체 후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 '세계화'의 흐름에 대한 가치 판단은 별도로 하더라도 '세계화'가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을 조정/관리할 수 있는 '세계정부'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세계 정부'는커녕 세계화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론적으로는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국제연합이 국가의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논리에 '무력한' 국가 간의 협의체일 뿐이라는 현실도 있다. 헌법 9조가 강대국 논리에 편승한 일국 평화주의라는 틀 속에 있는 한, 이를 보편적인 평화 이념으로 가져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비무장을 규정한 현행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는 실체를 가지기 힘든 이상주의적 규범이라는 비판이 적어도 일본 사회 내에서 일정한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현행 헌법의 '무장금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자위대와 주일미군이라는 실질적 전력과 무장이 존재한다. 자위대와 현행 헌법이 기묘하게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9조는 이런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헌법 9조의 '비무장'조항은 국가 대 국가라는 대항구도를 전제로 하고, 이 구도 속에서 한 쪽 국가의 '무장'을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장을 금지 당한 한 쪽 국가에 속해 있는 구성원(국민)에게 비무장이 구성원의 재산과 신체상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코스타리카나 일본에서, 비무장, 혹은 경무장 체제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평화주의가 내면화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주변 혹은 국제사회로부터 '안정된 동의'를 얻었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자국의 비무장 혹은 경무장을 보완해줄 수 있는 주변 지역의 조건(일본의 경우는 미일안보조약, 주변지역의 반공군사독재정권, 오키나와 등) 때문이었다. 즉 '안보무임승차'를 할 수 있는 조건 때문이었을 뿐이라는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개념은 국가 대 국가라는 대항구조 속에서 논의되어 오던 일본의 헌법문제를 국가 대 개인이라는 구도로 논의구조를 심화시킨다. 국가에 '묶여 있는' 개인(국민)을 국가로부터 해방시키고 이를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새로운 시도인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일본 현행 헌법의 '비주체성', 혹은 '비자주성'의 문제이다. 주로 개헌파의 논거 중의 하나가 현행 헌법 제정이 일본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강제설'은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현행 헌법이 국민 투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히로히토의 천황 칙령의 형태로 제정된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천황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맥아더, 즉 미국이다. 어찌되었든 이 때문에 현행 헌법은 끊임없이 '국민적 정당성의 부재'를 이유로 개헌파의 공격에 시달려 왔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성립된 계기와 그 방향성을 미군정기(1945-1952)에 이루어진 민주적 개혁에 두게 되면, 당연히 일본 민주주의의 '주체성의 부재'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후의 제도적 민주주의는 '외부로부터 강제된 외피'가 되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라는 가치체계가 외부로부터 이식된 '수입이념'이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견해는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일본 사회에 '수입'된 서양 문명을 지극히 기능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는 배제하고 경제적 근대화는 수입한다는 소위 '화혼양재(和魂洋才)'의 길을 적극 평가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억압적이고 봉건적인 정치체제와 군국주의는 '화혼'으로 포장하게 되고 서양 문명은 '화혼'을 물질적으로 보강해주는 부국강병을 위한 물질적 수단으로만 이해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이원론적 입장에 서서 보면, 전후 미군정기 개혁에 의해 달성된 전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입각한 평화헌법은 '화혼'을 부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1990년대 이후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화혼부정'을 재부정하고 '화혼양재'를 복원하려는 담론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부정, 변용,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청소년 범죄의 발생 등을 '화혼'을 부정한, '지나친 개인주의'가 가져다 준 폐해로 규정한다. 사실, 통계상으로는 청소년 범죄는 늘어나지 않았다. 흉악 범죄 발생 건수도 줄어들었다. 미디어 등의 보도 때문에 청소년 흉악 범죄가 늘어난 것처럼 느낄 뿐이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이들은 민주주의, 특히 민주주의를 체현한 제도로 현행 헌법을 들고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호헌파의 대항 논리는 주로 제정 과정에서의 '일본인'의 개입 정도, 그리고 전전의 평화사상과의 관련을 강조함으로써 현행 헌법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정도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 평화사상의 '내재적 발전론'인 셈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민주주의 운동과 사상을 전후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일본 역사학계의 노력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예를 들면 자유민권운동, 평화사상,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소일본주의 같은 리버벌 운동 등을 강조하는 흐름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평화헌법의 제정 과정에 일본인의 의향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헌법 내용에 전전의 평화사상이나 평화운동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정이 주도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당시의 유명 만화가 가토 에쯔로(加藤悦郎)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물'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이다. 미국이 내려준 '축복'이라는 점과 일본 사회의 주체성을 결합시킨 레토릭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마쓰모토 시게하루(松本重治)는 '(전쟁에) 패함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혹은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사학자인 존 다워(John Dower)는 '미국이 연주한 간주곡을 좋은 기회로 삼은 일본인이 자신의 변혁골격을 세우고 스스로 전진시켰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 '패배를 끌어안고'(embracing defea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후 개혁에 의해 초래된 '과실'을 그 이후에 가꾸고 지켜나간 일본 사회의 주체적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것일 뿐, 전후 개혁 그 자체의 주체성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전후 민주주의의 형성주체를 둘러싼 대치(국가 대 국가)가 외부성과 내재성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개념은 이와 같은 헌법제정의 주체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기존의 논의에서 한발 비켜서서 전쟁을 하지 않을 권리, 전쟁에 말려들어가지 않을 권리를 개인의 기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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