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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증오한 피폭 만화가, 나카자와 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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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증오한 피폭 만화가, 나카자와 게이지

[권혁태의 '일본읽기']<27> '복수의 화신'에서 고상한 평화주의자로


일본의 전후사를 보면 대외인식의 굴절과 그 기묘함 때문에 의아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옛 소련이나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이 만만치 않은데 반해 미국에 대한 친밀도는 예상보다 높다는 것 또한 굴절된 대외 인식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물론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1894년에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꿈에 그리던" 여순반도를 손에 넣었지만, 삼국 간섭으로 '양보'하게 되어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였으니, 삼국 간섭을 주도한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은 이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제2차 대전 말기에는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깨고 일본을 공격한 것이 러시아였으니 이 또한 적대감의 역사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혹은 약 65만 명의 전쟁 포로 중 약 10%가 사망했다는 시베리아 억류의 경험이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쿠릴 열도 4개 섬(일본에선 이를 북방영토라 부른다)의 반환 문제도 적대감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종종 등장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아시아 사람들은 무려 2천만 명이다. 그리고 일본인도 300만 명이 사망하였다. 일본인 사망자 대다수는 미국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본 본토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거의 50만 명에 달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약 30만 명이 사망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피폭자도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미국은 여전히 원폭 투하에 대해 그 어떤 사과도 하고 있지 않다. 피해규모만을 놓고 생각하면,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보다 작아야 할 까닭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일본 사회가 친밀감을 느끼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긋지긋한 전쟁을 종결시켜준 미국에게 감사의 느낌을 가질 만큼 과거 전쟁에 대해 성찰적 반성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전후 일본에서 정치이념적인 반미주의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 정서적 반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1945년 8월 15일까지 '귀축영미(鬼畜英美)'라는 지극히 인종주의적 적대감으로 미국을 인식했던 일본 사회가 천황 히로히토가 항복 선언을 한 8월 15일 이후, 하루아침에 갑자기 친미적인 정서로 바뀌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미국의 원폭이나 공습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미국을 싫어하거나, 나아가서는 증오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이 공공연하게 미국을 '증오'하는 언설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카자와 게이지[中沢啓治, 1939- ]의 만화는 중요하다. 나카자와는 『맨발의 겐』(전 10권)을 그린 만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무려 5천만권이 팔렸다. 세계 각국에 번역 소개된 대표적인 반핵평화 만화이다. 뮤지컬,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한국에도 번역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다만 '정의의 폭력'을 지나치게 확대 묘사하는, 눈에 거슬리는 몇 가지 장면을 제외하고는, 이 작품에는 히로시마의 경험을 보편적인 반핵 평화주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작품의 곳곳에 나타난다. 이 만화는 미국(인)에 대한 증오 대신에 핵무기에 대한 증오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만화가 대중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은 전혀 다르다. 보편적 반핵 평화주의에 앞서 미국에 대한 인종적 증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나카자와는 1939년생이다. 피폭 시에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피폭으로 아버지와 두 동생을 잃었다. 그는 간판장이 일을 하다가, 만화가가 되고자 상경, 유명 만화가의 보조 일을 하였다. 상경 초기에는 피폭자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나 차별을 의식해 자신이 피폭자라는 사실을 숨겼고, 그래서 원폭 문제와는 전혀 다른 작품 그리기에 몰두했다. 피폭 후유증으로 고통 받던 어머니의 죽음(1967년)이 계기가 되어 그는 원폭 문제를 만화로 그리게 된다.

나카자와가 '검은 비를 맞고'(『黒い雨に打たれて』, 1968년 5월)라는 작품에서 원폭 문제를 다루었다. 이 만화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청부 살인업자가 있다. 그는 히로시마 출신의 피폭자이다. 원자폭탄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온 몸에 아직도 피폭 시의 화상으로 인한 켈로이드 (keloid) 상처가 남아 있다. 그는 미국을 용서하지 않는다. 히로시마에서 입은 상처 때문이다. 생활을 위해 청부 살인업자가 되었지만, 오직 미국인만을 죽인다. 히로시마에서 입은 상처 때문이다. 그는 알파벳으로 쓰인 간판을 불편하게 여긴다. 술은 위스키를 마시지 않는다. 오직 청주만을 마신다. 청주가 일본 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날 미국인에게 칼에 찔려 큰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죽기 전에 원폭 후유증으로 실명한 원폭 2세 소녀에게 자신의 눈을 기증한다.

그 다음에 발표된 '검은 비는 흐르는데'(『黒い雨の流れに』1968.7)는 피폭 매춘여성의 삶을 그린다. 그녀는 피폭자이며, 미군에게 몸을 파는 양공주이다. 원폭으로 부모와 동생을 잃었다. 그리고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결혼 상대가 있었지만, 그녀가 피폭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혼 상대자는 주저 없이 그녀 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는 불안 속에서 아이를 낳는다. 원폭 후유증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고 그 때문에 시한부 생명을 이어간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복수를 꿈꾼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전쟁꾼들에게 매독 균을 옮길 거야! 그래서 매독으로 멸망시킬 거야!" 그녀의 복수는 자신의 몸에 퍼져 있는 매독 균을 미군에게 퍼뜨리는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 펼쳐지는 나카자와의 세계는 '맨발의 겐'에서 전개되는 평화주의의 보편성과는 거리가 있다. 핵무기를 없애자, 혹은 전쟁을 폐지하자, 는 고상한 평화주의 이념을 설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념의 허망함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개인에 의한 처절한 복수를 그린다. 남성은 살인으로, 여성은 매독 균으로 복수한다. 그 복수는 복수하는 측의 성공적인 승리로 장식되지도 않는다. 복수는 원폭으로 상처받은 몸뚱이를 통해 이루어지며, 그리고 복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 때 복수를 극대화시키는 메타포로 등장하는 것이 인종과 여성이다. 예를 들면 청부살인업자는 미국인에게 설교한다.

"나는 말이다. 네 놈들 백인들이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꼴을 보고 싶어 이 직업을 택한 거라고!", "베트남에서 더렵혀진 다리로 일본 땅을 활보하는 것은 참지 못하겠다. 이 양놈들아!", "네 놈들은 입으로는 폼 나게 지껄이지만 속내는 더러운 창자 투성이라고!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껄이면서 뒤에서는 네 놈들 양키는 나치보다 더한 학살을 저질렀어! 나치보다 더한 잔혹한 살인마들! 히로시마에 관광 올 시간이 있으면, 네 놈들 나라에 있는 흑인 문제나 해결하라고!"

여기서 나카자와는 피폭자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동원한다. 그 중 하나가 인종주의적 장치이며 이는 백인 증오로 나타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군사적 정치적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백인에 의한 일본인 말살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인종주의적 시선을 획득하기 위해 피폭자를 일본인과 동일시하고, 이를 다시 베트남으로, 유태인으로, 흑인으로 확장하는 순서를 밟고 있다. 이런 시선은 그의 출세작인 '맨발의 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작품에 일관되어 있는 또 하나의 메타포는 여성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순결한 여성'이다. 아니 '순결해야 할 여성'이다. '순결해야 할 여성'이 원자폭탄으로 상처를 입었다. 켈로이드로 온 몸에 화상을 입었거나, 방사능 오염으로 결혼을 할 수 없게 된 여성이다. 원폭은 여성의 '순결함'을 파괴하는 악의 화신이다. 따라서 여성 피폭자의 비극은 결혼과 출산을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온 몸에 남아 있는 화상 흔적 등을 통해서만 극대화된다. '검은 비는 흐르는데'의 주인공 여성은 말한다.

"나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숙명에 울었다. 저 원폭 때문에…….나는 아이가 오체만족으로 태어났을 때 너무 기뻤다. 나는 아이를 위해 결혼에 대한 꿈을 접고 죽어라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을 잊을 수는 없었다. 의상실 창가에 진열되어 있는 웨딩드레스를 입혀놓은 마네킹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네킹을 때려 부수고 싶었다".

원폭이 여성의 '순결함'을 파괴하였고, 이 때문에 결혼, 출산을 못하게 된 것으로 원폭의 비극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피폭자의 수기에서 이 같은 사연을 종종 볼 수 있다. 피폭자 여성은 피폭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 이중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나카자와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피폭자 남성은 대단히 강하다. 그리고 폭력적이다. '정의의 폭력'을 휘두르는 피폭자 남성은 대체로 '순결한 여성'을 보호하는 강한 남성이다. 연약하고 순결한 여성의 비극(결혼을 못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의 대척점에 강한 백인을 두고, 이 강한 백인의 대척점에 강한 일본인 남성을 둔다. 그래서 백인에 의해 손상된 여성의 순결성은 강한 남성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게 된다. 나카자와 작품이 순결한 여성의 상처를 그리면 그릴수록 이는 강한 남성성을 자극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는 강한 일본인 남성의 복원이라는 형태로 귀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검은 비'는 원자폭탄 폭발 직후에 공기 중에 있는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비가 되었는데, 이 비의 색깔이 검은 색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피폭 후에 히로시마에서 검은 비를 맞고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 1898-1993)가 쓴 '검은 비'(1965)라는 소설도, 여성 피폭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1989년에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1926-2006)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검은 비'는 일반적으로 피폭자의 고난에 찬 삶, 즉 피폭 시의 고통뿐만 아니라 피폭 후의 험난한 삶을 형용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험난한 삶은 피폭 그 자체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피폭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계속되는 전쟁, 핵전쟁의 공포 등에 의해 배가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완결 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하지만 '검은 비'로 상징되는 피폭자의 삶이 구체적으로 인종주의적, 혹은 미국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제로 위의 두 작품을 선뜻 출판하려는 출판사는 없었다고 한다. 특히 큰 출판사는 거의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인종주의에 더해, 미국에 대한 복수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그려진 1960년대는 '친미국가 일본'의 기반이 거의 만들어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미국과의 '동맹' 하에 '잘 나가던' 당시 일본에 미국에 대한 복수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일본 사회가 이 작품을 출판하는 것을 주저했던 것처럼, 피폭자들의 미국에 대한 분노도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피폭자들은 복수 대신에, 피폭 경험을 보편적 평화를 통해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에 대한 분노는 평화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거대한 괴물에 휩쓸려 버렸다. 피폭자가 분노할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피폭자는 모두 평화의 전도사라는 '성인'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피폭자는 한 몸뚱이가 되어 버렸고, 민족도 계급도 젠더도 없는 초역사적인 공허한 '주체'가 되어 버렸다. 나카자와도 1970년대에 '맨발의 겐'을 그려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참고 문헌>
中沢啓治『黒い雨に打たれて』DINOBOOKS, 2005.
中沢啓治『「はだしのゲン」自伝』教育史料出版会 ,1994.
권혁태 「평화, 인간 그리고 일본」『당대비평』제14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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