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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문제의 껍질을 벗기면 미국의 문제"

[세명대 저널리즘특강]<8> 배명복 <중앙일보> 국제담당 논설위원

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보도와 칼럼, 프로그램 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는 1학기에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데 이어, 2학기에는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 진지한 자세로 강의에 임하는 배명복 논설위원. ⓒ김종석
외면하는 독자에게도 어필해야 하는 국제부


냉정하게 말해, 우리 언론에서 국제부는 '지나가는' 부서였다. 기자들 사이에 국제부는 편하게 내근하면서 외신들을 모니터하고, 그대로 전달하는 부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현지에서 국제 뉴스를 공급하는 해외주재 특파원은 '특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언론에서 국제뉴스는 사실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뉴스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현실이다. 국제뉴스가 부각되는 경우는 국제테러나 전쟁, 지진 등 특별한 이벤트나 사건이 있을 때로 한정된다.

한국 언론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국제보도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인물이 있다.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보도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 직접 세계를 누비며 뉴스를 전하는 기자, 바로 배명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이다. 국제 문제 전문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배명복 위원이 '한국 언론과 국제보도의 흐름'을 주제로 예비언론인들을 만났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만 서른 살에 처음 파리 주재 특파원이 되었다는 <중앙일보> 배명복 논설위원은, 이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미국학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부장과 국제담당에디터 등을 역임하며 국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 왔다.

국제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달고 있는 '국제담당 논설위원'과 '순회특파원'이란 직함이 흥미롭다. 순회특파원은 한 지역에 1년 이상 상주하면서 기사를 송고하는 해외주재 특파원과 달리, 아이템을 직접 기획해 세계 곳곳의 현장을 누비며 기사를 발굴하는 제도다.

배 위원은 평소 국제 정세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 특파원이 없는 지역의 최근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해 보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담당 지역이 '전세계'인 만큼, 현지 취재에 앞서 사전 취재를 더 철저히 한다. 3년 전 순회특파원으로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좌파 바람이 한창이던 남미였다. 최근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을 다녀왔고, 지리적 거리가 먼 만큼 전략적 이해가 더욱 긴밀할 수 있는 호주의 가치에도 주목했다.

배 위원은 데스크로서는 한없이 쉽게도, 어렵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이 국제면이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가십성 기사로 편집하다보면 신문의 품격이 낮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 그렇다고 복잡한 국제 정세를 그대로 담으려다보면 독자가 무심히 지나쳐버린다. 편집자는 국제면의 열독률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으로, 중요한 국제이슈와 함께 '읽을거리'도 일정 부분 넣고, 사진도 크게 배치하는 방법 등을 쓰기도 한다.

금융위기 보도에서도 금기 못 넘는 미국언론

그러나 배 위원은 국제뉴스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기자의 정치적 균형감각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기자들은 국제뉴스보도에 있어서 충분한 정치적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는가? 배 위원은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세 편의 책과 영화를 소개했다.

첫 번째 책은 2008년 국내에 출간된 책 <화폐전쟁>(쑹홍빙 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이 책은 미국 금융의 생리를 속속들이 드러내며, 현재의 위기가 금융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기획된 것이라 주장한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워싱턴 중앙은행과 12개의 지방 FRB로 구성되는데, 그 운영은 각각 연방정부와 민간은행이 맡는다.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제도를 담당하는 독특한 구조는 1910년 조지아 주 지킬섬에서 미국의 금융재벌과 소수 정치인들이 은밀히 모여 만든 FRB법에 의해 성립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FRB제도의 배후에는 록펠러, JP모건 등 미국 금융재벌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돈을 찍어낸다는 것은 국채를 발행한다는 것인데, 그 국채를 은행들이 모두 소화하지 못할 경우 외국에 팔게 됩니다. 국채는 채무를 지는 것이고, 채무는 곧 이자로 이어지죠. 이자만큼 또 돈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채무는 구조적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채무가 불어나는 가운데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파생금융상품은 '돈을 갖고 돈을 버는' 투기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상황을 야기했고, 그 결과 금융재벌들은 더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소개된 것은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 독일어로 '시대정신'이라는 뜻을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7년 6월 구글(google) 비디오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이 영화는 정식 개봉은 하지 않은 채 누리꾼들의 입소문을 통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영화는 크게 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배명복 논설위원이 집중 한 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비밀'을 다룬 3부다.

"영화 내용 전부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중앙은행과 금융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소개한 마지막 책은 지난 10월에 출간된 「연쇄하는 대폭락」(소에지마 다카히코 저).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 책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고, 발생원인을 분석했다.

배 위원이 소개한 세 편의 책과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장은 바로 '미국발 금융위기의 발생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몇 개월 시간차를 두고, 일본 · 중국 · 미국의 저자가 같은 시각에서 금융위기를 해석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 배명복 위원은 예비언론인들에게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살 것을 강조했다. ⓒ 김종석

"미국 주류언론에 등장하는 어느 칼럼니스트도 이런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미국 금융제도와 관련해 그 배경에 있는 금융재벌의 문제점, 금융재벌과 정치가들의 부적절한 관계는 미국언론의 금기사항입니다. 미국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는 감춰진 속내를 신랄하게 비판한 세 편의 책과 영화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

미국언론이 금기를 뛰어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편향적인 시각은 한국 언론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 언론의 미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 언론의 금기는 그대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 될 수 있다.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되 균형 잃지 않아야.."

국내 언론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외신인 세계 4대 통신사 역시 미국 중심적이다. AP와 UPI는 미국 통신사다. 로이터 통신은 영국 회사이지만 역시 앵글로색슨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고, 프랑스 회사 AFP는 미국 통신사의 대안을 자임하며 출발했지만 현재 그 역할이 미약하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팩트 구성에서부터 시각까지 미국을 닮아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배 위원은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 유럽 언론을 많이 참고한다. 미국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파적 언론에서 출발해 상업적 특성이 강하지만, 유럽 언론은 공익적 측면이 더 강하다. 특히 유럽 대륙 언론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저항적 입장을 견지한다. 파리 특파원 시절, 중도 우파 신문인 르 피가로와 중도 좌파신문인 르몽드와 리베라시옹을 주로 보았던 것도 이들 신문이 미국의 시각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배 위원은 마지막까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국제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언론인들이 연수로 가장 많이 가는 지역이 미국이다. 그러나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 등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결국 남는 문제는 '미국'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보수언론과 진보 언론의 시각이 대립하는 것도 때로 미국을 보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죠. 미국의 논리에 끌려가지 않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똑바로 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니까요."

언젠가 그의 칼럼 '배명복의 시시각각'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났다.

"지성은 극단을 배격한다. 표면보다 이면의 진실을 추구하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생명으로 여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않는다. 상대방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오늘 강의에서도 배명복 논설위원이 예비언론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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