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언론입니다. 한나라당이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법안'을 여당 단독으로 상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지난 3일 발의한 개정안은 신문법, 언론중재법,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전파법,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 특별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등 7건입니다.
한나라당의 법 개정 취지는 '언론자유 신장과 미디어 산업 활성화 및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신문, 방송 칸막이 다 열어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신보수주의 시대로 한나라당 장기집권 획책하는 '미디어관련 법안'
한마디로, 미디어 시장을 재벌대기업에 '예속'시켜 언론을 경제 권력의 논리로 길들이는 한편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국 언론을 재편하여 한나라당의 정권재창출을 도모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수대연합→한국사회 개조→신보수주의의 무한팽창시대'를 열어 장기집권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건지, 한낱 기우에 불과한 것을 지레짐작해 호들갑떠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정말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인지 이제부터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디어 관련 법안' 가운데 핵심은 신문법 개정입니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신문법 개정안을 보면 ①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의 상호 겸영금지를 폐지하고, ②신문사들 간 인수합병이 무제한으로 가능하고, ③신문발전위원회, 한국언론재단 등 신문지원기관들을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 통폐합하며, ④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대한 임면권(임명권+면직권)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갖도록 했습니다.
여론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없애 버리겠다는 속셈입니다. 즉,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조·중·동이 재벌과 손잡고 방송시장으로 진출해 여론을 좌지우지하게 하고(→①), 조중동이 군소 신문사들을 싹쓸이 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주고(→②), 각종 지원책을 무기삼아 신문사를 마음껏 주무르겠다는 것이며(→③), 코드에 맞는 인사를 임명해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일사분란하게 휘두르겠다(→④)는 것입니다.
방송법 개악의 표적 'MBC', 삼성 등 재벌 지배력 강화
방송법 개악도 만만치 않습니다. ①대기업과 신문뉴스통신은 지상파를 2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②종합편성, 보도전문편성 채널은 재벌과 신문이 49%까지 지분소유를 가능토록 했으며, ③종합편성 등 국내 여론형성 채널에 외국자본이 20%까지 출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삼성, 현대 등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과 10조원 미만의 기업은 49% 까지 지분소유가 가능해져 예를 들면, 정부 여당의 골칫거리(?) MBC에 대해 삼성과 중앙일보가 각각 20%씩 소유하여 최대 주주가 될 수도 있으며(→①), 재벌들 간의 상호협력으로 우호지분을 확보하여 선거철 등 민감한 시기에 보도와 편성을 입맛에 따라 조정하여 여론을 왜곡할 수도 있으며(→②), 세계적 미디어 재벌이면서 반공투사(?)로 꼽히는 루퍼드 머독 같은 이들의 한국 언론시장 진출에 길을 열어 주겠다(→③)는 것입니다.
국기 뒤흔드는 요설과 불온한 사상 만개하는 '인터넷 통제'
이 밖에도 인터넷 상에서 당사자가 모욕을 당했다고 고소하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알아서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를 규정한 정보통신법과 인터넷 포털의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때 중재나 조정신청이 가능하도록 해, 인터넷 포털에 게재된 기사의 삭제 등 통제할 수 있도록 한 언론중재법도 의도가 뻔해 보입니다.
'촛불'을 통해 표출된 '반 MB-한나라당 함성'에 혼비백산한 깨달음 때문일까요? 인터넷 손가락을 통제하면 제2의 촛불이나 미네르바의 아고라처럼 국기를 뒤흔드는 요설과 불온한 사상이 만개하는 '좌파'들의 난동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KBS 등 공영방송 '민영화'도 가능하도록 하겠다!
헌데, 이 정도로도 성이 차지 않아 설까요? 정부 여당은 국가기간방송법안에 기초한 '공영방송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KBS 등 공영방송이 수입의 80% 이상을 수신료에 의존하지 않을 경우 민영화하고,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국회로 예결산 통제권을 넘기겠다고 합니다.
지극정성입니다. 보수대연합의 핵인 재벌대기업과 조중동의 방송 진출을 탄탄대로에 올려놓기 위한 정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신문법과 방송법을 개정하는 것에 더하여, 지상파 방송이 민영화로 돌아서면 기다렸던 재벌대기업이 접수하는 식으로 이중삼중의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여론 형성의 광장이자 공적 영역인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것은 곧 여론을 통제하여 왜곡하고 호도하며 지배하겠다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 관련 법안의 개정이 단순한 언론시장 장악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MB정부와 재벌대기업과 조중동이 언론 시장 장악을 '근거지'로 하여, 세뇌와 회유와 선정성이라는 '미디어 아편'을 <중심>으로, 국민 의식을 '보수적'으로 개조하여 한나라당의 집권 장기화를 획책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데, 전무후무한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판 '베를루스코니 왕국'이 도래하다? '미디어 관련 법안' 개정은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전략. 침소봉대라고요? 아닙니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가능합니다. 생생하게 날것으로 살아있는 예가 이탈리아에 있으니까요. 미디어 관련 법안의 '반면교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공교롭게 한반도와 같은 반도의 땅.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현 총리. 지난 4월 치른 이탈리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 연합이 압승을 거두어, 세 번째로 총리직에 취임. MB정부와 한나라당이 밤을 새워 분석하고 연구하여 벤치마킹할 만한 인물입니다. 먼저 베를루스코니를 살펴봅시다. 밀라노의 한 지방 부동산 개발업자로 시작해 시 외곽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떼돈을 번 전형적인 건설업자였습니다. 돈 세탁과 탈세 및 공무원 매수 등으로 법원을 들락거리다 98년에는 2년 9개월의 징역형까지 선고 받았습니다. 언론사업 등으로 영토를 확장한 끝에 이탈리아 3대 민영방송, 인터넷 미디어 그룹인 '뉴미디어', 잡지 '파노라마'를 비롯한 출판 그룹, 영화제작 및 배급사인 '메두사', 전국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 프로축구단 'AC 밀란' 등을 보유한 이탈리아 최대 재벌대기업, '베를루스코니 왕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멀티미디어 대재벌인 핀인베스트 회장이던 94년 전진 이탈리아당(FI)을 창당해 국민연합, 북부리그 등과 우파 연정을 출범시키면서 첫 총리가 됩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뇌물수수, 불법 정치자금 운영, 탈세, 마피아 지원 등의 의혹을 사면서도 01년 5월 13일 치러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다시 승리함으로써 두 번째 총리직에 오릅니다. 유럽 정치인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혈 반공주의 신봉자인 베를루스코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동조하면서 부시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6개의 전국 채널과 1개의 지역채널을 소유하는 등 전국의 인쇄매체와 방송매체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를 장악해 정치권력 창출하다 베를루스코니는 자금력과 '미디어'를 동원해 정권을 장악하고, 집권 뒤에는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한편 언론의 편 가르기를 통해 정권을 유지하는데 귀신같은 솜씨를 발휘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손꼽힙니다. 그가 총리직에 첫 출사표를 던진 94년. 정계진출 의사를 밝힌 비디오카세트를 언론매체에서 동시에 보도하도록 하고, 두 달 뒤 총리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의 정계진출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권력을 창출한 케이스로 주목받습니다. 정치세력간의 민주적 경쟁이 아니라 TV를 비롯한 미디어를 장악한 특정 정치세력이 부속물인 연예계까지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는, 이른바 '미디어 정치'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총리가 된 베를루스코니는 사사건건 시비(?)를 건 국영방송 라이(Rai)를 장악하는 데 심혈을 쏟습니다. 쓴소리를 내뱉던 방송인들은 해고당하고, 그 자리는 충성을 맹세한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영방송 채널 3개 모두 베를루스코니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방송들과 똑같은 논조의 방송을 합창하기 시작합니다. 국영방송에서 '땡베' 뉴스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야당 뉴스는 20%에 그칩니다. 기자들은 이탈리아 판 '보도지침'에 따라 모든 정치뉴스를 베를루스코니와 정부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야당 입장은 맛보기로 한두 마디 붙이고 다시 정부 반박을 늘어놓으며 끝내는 식의 보도로 도배합니다. 기막힌 사례 하나. 베를루스코니가 유엔총회 연설을 할 때, 이탈리아 국영 TV가 텅 비다시피 한 청중석 대신 코피 아난 사무총장 연설 때 꽉 찬 청중석 장면을 편집해 넣어, 이탈리아 국민들로 하여금 그가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는 것처럼 왜곡보도 했다고 합니다. 베를루니코스의 집권전략, '미디어'로 국민을 세뇌하라! 시궁창 냄새가 풀풀 나면서도 베를루니코스가 세 번씩이나 총리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요? 계급계층간의 이익과 이념에 따른 정치시대가 가고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하는 '미디어 정치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간파한 데서 출발합니다. 실제로 베를루스코니는 첫 총리직에 나선 94년, 선거를 앞두고 시대의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합니다. 결론은? 유권자들이 어떤 미디어를, 얼마나 오래 보느냐가 당락을 결정짓는 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가 터를 닦아 온 TV 등 미디어 쪽에서 자원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합니다. 여기에다 AC 밀란의 구단주로 '축구'를 끌어 들입니다. 그가 창당한 전진 이탈리아당은, 이탈리아 축구팬들이 대표팀을 응원할 때 쓰는 구호로 '가자, 이탈리아(Go, Italy!)'라는 뜻이라고 하며, 당원들은 대표팀을 일컫는 '푸른 군단'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절묘합니다. 이탈리아판 레이건에 축구로 노동자 이미지까지 얹은 베를루스코니는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전통적으로 좌파를 지지해 온 노동자 계층과 젊은 유권자들까지 '전향'시켜 압도적인 승리를 얻습니다. 갖가지 오락과 선정성이 도배하는 미디어 프로그램 앞에 고단한 일상을 던져버리고, 정치에는 관심 뚝! 하도록 한 고도의 정치 전략의 결과입니다. 총리가 된 베를루스코니는 정치권력과 미디어 권력을 총 동원해 두 가지를 손봅니다. 먼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른바 '깨끗한 손(마니 플리테)'를 분질러 버립니다.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부패한 그와 측근들의 범죄에 대해 이탈리아 검찰이 '깨끗한 손' 전쟁을 포고하자 판사 매수부터 시작해 마니 플리테 담당검사까지 자기 소유의 미디어로 융단 폭격을 가해 결국 여론을 반전시켜 냅니다. 다음은 비판 언론 손보깁니다. 언론인 매수와 협박은 기본이고, 그래도 꿈쩍 않는 언론인들과 야당의원들을 표적으로 정치 스캔들을 조작하여 요리합니다. 언론이든 국회든 가리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사건 등을 만들어 당사자를 청문회에 불러내도록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들이 대서특필하고, 이를 정치권에서 다시 받아 확대재생산해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는 식입니다. 언론의 거세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거세' 베를루스코니의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민주화 진통을 겪고 있는 태국의 전 총리 탁신 역시 태국 최대 민영 미디어의 사주였고, 영국 축구구단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니까요. 이들에게 미디어는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자 지배블록을 공고히 다져주는 지상 최대의 무기입니다. '권력이여, 영원하라~'라는 슬로건 앞에 미디어는 '친구' 아니면 '적' 둘 중 하나일 뿐, 민주주의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미디어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이 극에서 극으로 갈라지는 시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룬 복지공동체로 거듭나기도 하고, 사회적 양극화와 극단적인 부패로 썩어 문드러지는 공동체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MB정부와 한나라당이 내 놓은 미디어 법 개정안은 한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걸까요? 언론의 자율성과 객관성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사적 책무가 정치권력과 자본 앞에 무너지면 이는 '언론의 거세'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여론의 거세이자 진실과 정의의 거세이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거세'입니다. |
※ 이 글은 안산 인터넷신문 <그래스루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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