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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드러내는 '날 것'의 힘, 정보공개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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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드러내는 '날 것'의 힘, 정보공개청구

[세명대 저널리즘특강]<7> 이규연 <중앙일보> 미래탐사팀장

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보도와 칼럼, 프로그램 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는 1학기에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데 이어, 2학기에는 <프레시안>에 연재됩니다.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중앙일보> 미래탐사팀장인 이규연 기자는 한국탐사언론인회 회장도 겸하고 있다. ⓒ 김종석
'케냐 출장 간 의원들 사파리에만 흥미' 특종


'국회의원들 중에는 업무를 핑계로 해외 출장을 가서 놀다 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이런 의심을 품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려고 실제로 애써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알아낸다고 해서 자신에게 딱히 이익 될 것이 없을뿐더러, 확인할 방법도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케냐에 온 의원들, 사파리에만 흥미'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발견하면 '그럴 줄 알았다니까'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언론이 독자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장면이다.

이 기사는 실제로 지난 4월 <중앙일보> 주말판 '중앙 선데이'에 실렸다. 이 신문 특별취재팀은 17대 국회의원들의 외교활동을 분석한 탐사보도로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국회의원들이 세금으로 해외출장을 나간 뒤 일보다 관광에 더 열을 올리는 실태를 파헤쳐, 언론의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7명의 팀원들을 이끌었던 이규연 <중앙일보> 미래탐사팀장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 초대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나 황우석 사태를 파고든 <MBC> 'PD수첩'처럼 대형 탐사보도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거나, 폭발성 있는 제보를 받아 이런 기사를 쓰기는 쉽지 않다. 이규연 팀장은 앉아서 행운을 기다리는 대신,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적극 이용하는 것이 대안이 된다고 강조했다.

"언론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공 기관에 정보 공개를 요청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도를 이용하려면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공무원 보신주의와 비밀주의에 끈질기게 도전해야"

<중앙일보> 탐사팀이 이번 기사를 쓸 때도 여러 개 산을 넘어야 했다. 처음 국회사무처에 17대 국회의원 외유자료를 요청했을 때, 사무처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서류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모든 공공기관은 공개대상 정보 목록을 게시하도록 돼 있지만 사무처는 이를 게시하지 않아 어떤 자료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관련 문서를 모두 보자고 하자, 이번에는 복사량이 너무 많아 안 되겠다고 했다. 수수료를 지불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국회의원 기록을 보여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KBS와 소송 중'이라며 재판 결과가 나온 후 결정하겠다고 버텼다. 재판 결과를 기다리려면 1년이 훌쩍 지나갈 형편이었다.

이 팀장은 "과정이 어렵다고 포기한다면 절대 좋은 보도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보공개를 제한하는 사유가 국가안보에 관련된 사항이나 진행 중인 재판에 관한 내용 등 9가지나 되고 확대해석의 여지도 많아서 정부기관이 '못 보여 준다'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또 정보공개의무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절차상 번거로운 점도 많다. 그래서 기자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려면 비공개 사유를 넘어설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경험을 쌓아야한다는 것이다.

"사무처측과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정보를 문서로 내 주기가 힘들다면 열람만 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무처는 국회의원들의 항의가 있을까 망설였지만 열람까지 거부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기자 7명이 가서 중요한 정보를 모두 손으로 베껴 썼습니다."

"걸러지고 변형되지 않은 '날 것'의 정보에 주목하라"

▲ 제212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던 탐사보도.ⓒ출처: <중앙선데이>
이규연팀장은 1988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주로 사회부·기획취재부에서 일하며 복지, 환경, 과학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탐사보도특집인 '서울 최대의 달동네 난곡 리포트'와 '루게릭, 눈으로 쓰다'로 두 차례 한국기자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아시아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탐사보도협회(IRE)가 주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국내 언론에서도 적극적인 탐사보도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에서 지난해 한국탐사언론인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고 있다.

"정보공개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기자들 중 이 제도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사람은 10%도 안 되고, 10번 이상 이용한 사람은 1%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기자들은 보도자료를 활용하거나 친분 있는 공무원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내면 되는데 굳이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정보는 걸러지고 변형된 것입니다. 기자들이 그런 죽은 정보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이 팀장은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통해 얻은 원천 정보를 '날것'이라고 표현했다. 보도자료처럼 정보원에 의해 가공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날것'의 정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과 현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미리 정보공개청구를 해두라고 조언하는 이규연 팀장. ⓒ 김종석

특종에 목말라 하면서도 외면하는 정보공개 청구

기자들은 늘 특종에 목말라 있다. 그런데 왜 많은 기자들이 '날것' 속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발굴해 낼 기회를 외면하는 것일까? 이 팀장은 "속보위주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언론의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족한 인력으로 드넓은 지면을 메우다 보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탐사보도에 공을 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 언론이 심층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은 시간과 비용의 한계로 방대한 자료를 활용해야 하는 취재를 피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평소에 정보공개청구를 자주 해놓습니다. 당장에는 필요가 없어 보여도 나중에 긴요하게 쓰일 수 있는 자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해외 탐사보도를 열심히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가령 난곡 리포트는 미국에서 연수할 때 슬럼가에 만연한 가난의 대물림을 추적한 보도를 보고 기획한 것입니다."

이 팀장이 정보공개청구제도에 주목하게 된 것은 미국 연수시절 대학에서 탐사보도 수업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첫 수업 때 정보공개의 기본 개념을 배운 뒤, 다음 시간에 곧바로 실습을 나가 실제 과정을 체험해봤다. 강의를 마치며 이 팀장은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여러분도 평소 관심을 가졌던 이슈가 있을 겁니다. 내일 당장 공공기관으로 달려가 관련된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해 보십시오."

'좋은 탐사보도를 하려면 정의감이나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풀기위해 뛰어야 한다'는 그의 얘기에 학생들의 반응은 진지했다. 그가 강조한 '날것'의 보고에서 장차 뭔가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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