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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양안 관계의 시작?

[中國探究]<15>

2008 대선에서 8년 만에 정권을 회복한 국민당 마잉지우(馬英九) 정부의 등장으로 경색 국면에 빠져있던 양안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마 총통은 지난 5월 20일 취임사에서 타이완은 '통일이나 독립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무력도 사용하지 않을 것(不統,不獨,不武)'임을 천명하고 대 중국 관계의 적극적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국민당 후보의 당선을 예측한 중국도 2007년 9월에 열린 제17차 공산당 대표대회를 통해 타이완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정치보고에서 사상 처음으로 양안은 '운명 공동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적대 상태를 정식으로 종식시키는 평화 협정을 맺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양안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 타이완이 단순히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논조에서 벗어나 양안이 현재 통일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천수이벤(陳水扁) 민진당 정권의 출범 이후 완전히 중단되었던 양측의 실질적 관방 대화 기구인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와 타이완의 해협양안교류기금회(海峽兩岸交流基金會)간의 대화가 재개되었고 양안 간에는 의미 있는 몇 가지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는 양안 관계는 각종 대화 채널의 복원, 군사적 긴장 관계 해소 그리고 불필요한 경쟁을 지양하면서 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공동의 발전을 모색하자는 전방위적 교류시대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양안 간에는 직항 정기 항공편이 개설되었으며, 베이징과 타이완에 양 기구의 주재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실질적인 정부 간 상시대화 채널도 확보하였다.

양안 관계가 경색 국면을 탈피하고 화해 분위기로 돌아섰지만 기존의 양안 간 인식 차이를 보였던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는 양안이 그동안 양안관계를 서로 다르게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양측은 1949-1978년에는 중국은 타이완을 이미 '사망한 정권(死亡政權)'으로 타이완은 중국을 '반란 정권(叛亂政權)'으로 규정하였으며, 1979-1990년 동안은 각각 중국의 지방정부 대 반란정권으로, 1990년 이후에는 1국 2정체(政體) 대 1국 2체제, 민진당 정권 출범 이후에는 '두 개의 국가(兩個國家)' 대 '하나의 중국(一個中國)'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양안 관계를 지배하는 전통적 쟁점은 크게 세 분야로 정리할 수 있다. 주권과 관련된 개념으로 중국이 제시한 '하나의 중국 원칙'(一個中國的原則), 통일 방식과 관련된 원칙으로 한 국가 두 체제, 즉 일국양제(一國兩制) 방식에 따른 평화통일 원칙, 또 하나는 타이완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성(不排除使用武力)의 강조를 둘러싼 상호 해석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우선 '하나의 중국(一個中國)'문제와 관련해 중국 측은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며, 타이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중국이 중화민국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물론 독립을 추구하던 천수이벤 정권 시절에는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은 모두 타이완과는 상관없는 개념이었다. 이에 대해 양측은 1992년 '구두(口頭) 방식으로 각자가 하나의 중국을 표현 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마잉지우 총통은 바로 '92 공식(共識)'으로 불리는 이 합의를 양안 대화 재개의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일국 이 체제(一國兩制)' 문제를 들 수 있다. 타이완은 '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중앙정부로 설정되어 있고 타이완을 한낱 지방정부로 격하시키는 구도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무력사용의 불 배제원칙이다. 반국가분열법의 등장으로 '비평화적 수단'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지만 이는 타이완의 입장에서 보면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소위 '비평화적 수단'의 사용 범위는 타이완이 독립을 선포하는 경우 및 타이완문제에 외세가 개입하는 경우, 타이완이 통일협상을 지연하는 경우이다.

여기에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라는 양안 정책을 바탕으로 표면적으로는 타이완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타이완에 공간을 확보해주는 전략으로 타이완에 대한 무기판매 등 경제적 실익도 확보하고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국가화를 견제하는 자기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외교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타이완은 양안문제에 이렇게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미국을 배후에 두고서야 중국에 대한 대응전략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양안 간에는 여전히 타이완을 흡수해 민족 통일을 달성하려는 중국의 공산당 정부, 중국에 보조를 맞추면서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설정하여 경제 회복과 '활로 외교(modus vivendi)'를 외치면서 국제 사회에서의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는 집권 국민당 정부, 독립국가 건설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민진당 등 타이완 내 독립 세력, 그리고 타이완을 중간지대로 운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서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중국 통일'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고자 하는 중국의 목표나 의도 및 현상유지를 강조하는 미국의 대 양안 전략에는 큰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타이완의 현실이다. 특히 장기적 경제 침체에 빠져 있는 타이완의 경제 상황과 중국이라는 막강한 정치 경제적 실체와 생존을 다투어야 하는 타이완의 입장은 더욱 어렵다. 경제 활성화를 통한 민심 수습 및 지난 8년간 편 가르기 정치로 분열된 국론 통합 그리고 안정적인 대 중국 관계 설정, 이에 따른 대미 관계의 안정까지 모든 것이 마잉지우 정부의 숙제이자 고민이다.

여러 상황에서 보듯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기존 양안질서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양안이 분명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서로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물꼬를 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8년간 민진당 정부에 의해 부식된 타이완의 독립 성향과 재집권한 국민당 정부의 기본적 인식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우선 '하나의 중국'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가 다시 대두된다. 중국에 있어 '하나의 중국'은 일관되게 중화인민공화국이다. 하지만 국민당 정부는 중화민국이 하나의 중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측이 인정할 수 있는 개념은 결국 '92년 합의(共識)'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내용적으로 전혀 정립이 되지 않았던 92년 합의로 돌아간 것이다. 향후 하나의 중국을 둘러싸고 지속적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둘째는 타이완의 '주권 의식'이 이미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민진당 정권의 패배를 '타이완 의식(臺灣意識)'의 패배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 경우 '타이완 의식' 이라함은 타이완 민주 발전의 토착화 및 타이완 본토의식의 정치화를 지칭한다. 즉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외래 세력의 압제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루고 타이완 토착민이 타이완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여전히 500만이 넘는 유권자가 국민당 노선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잉지우도 자신은 타이완인이면서 중국인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신 타이완인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타이완인들은 민주 선거를 통해 이미 두 번의 정권 교체를 경험하였다. 적어도 민의의 표현이나 민족주의 정서에 있어 과거와는 다른 타이완 주체의식이 형성되었고 이는 향후 대 중국 관계에 있어 경제적 관계의 확대 추세 등과는 관계없이 민족주의적 측면에서 별도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하나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타이완간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중국 견제의 유효한 수단으로 타이완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이를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배하면서 '하나의 중국, 하나의 타이완(一中一臺)'을 획책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질책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지속적으로 중국과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자신들을 곤란하게 했던 민진당 정권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국민당의 집권의 대 중국관계 설정에 있어 훨씬 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중국과 타이완의 접근은 상대적으로 미국에 있어서는 타이완의 전략적 가치를 떨어드릴 수 있다.

비록 양안이 해빙 무드로 들어섰기는 하지만 타이완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대 중국 경제 교류의 확대가 장기적으로는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미국과의 관계 설정은 또 다른 숙제가 될 수 있다. 기존 질서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양안관계는 어떻게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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