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새 행정부와도 긴밀한 협조를 유지할 것"이므로 "북한이 통미봉남을 겨냥했다면 그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한미공조'를 통해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얘기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15년 전 1차 북핵 위기 당시에도 김영삼 정부는 통미봉남에 대해 한미공조 전략으로 대응했다.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형식적으로 임하면서 사실상 남북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북핵 협상에 한국의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방법은 미국을 통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대체로 실패였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북핵 협상의 장애물이었다. '북핵 협상에서의 한국소외론',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국내정치의 화두가 된 가운데, 김영삼 정부는 국내의 비판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북핵 협상에서 미국의 발목을 잡음으로써 한국 정부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북핵 협상은 고비고비마다 한국 정부의 태클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94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15년 전과 똑같지는 않다. 한국과 미국의 지도자가 달라졌고, 북미대화의 경험이 일천했던 15년 전과 북미대화가 일상화된 지금의 상황은 다르며, 6자회담이라는 논의틀이 마련돼 있는 것도 15년 전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통미봉남과 한미공조가 거론되는 상황이나, 북핵문제의 핵심 플레이어는 여전히 북한과 미국인 점, 또 북미대화가 본격화 될 경우 한국소외론이 국내에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은 그때와 지금을 동시에 규정하는 여건들이다.
클린턴의 발목을 잡은 YS의 '비법'은?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1차 북핵 위기는 기본적으로 북미가 협상하는 구도로 진행됐기 때문에 한국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화두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김영삼 정부가 받는 국내정치적 압력은 상당했다.
결국, 김영삼 정부가 한국의 목소리를 부각시키는 방법은 미국의 행동에 훈수를 두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이는 미국이 대북 협상을 해 나가는데 있어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정도로 북핵협상에 영향을 미쳤다.
▲ 클린턴은 북미대화에 관한 미국 내 지지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김영삼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기 힘들었다. ⓒ연합뉴스 |
김영삼 대통령은 93년 6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효력을 정지시킨 북미 1차 고위급 회담 이후 <뉴욕타임스> 등 외신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북한에 끌려 다니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거나 "북한에 추가적인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한국소외론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반응이었다.
93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실무선에서 미리 합의한 '포괄적 접근(comprehensive approach)'이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뒤집어졌다. 북핵문제가 미국의 주도로 끌려가고 있다는 국내의 비판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포괄적 접근'이라는 말은 실질적으로 아무 차이도 없는 '철저하고 광범위한(thorough and broad approach) 접근'이라는 말로 바뀌는데 그쳤지만, 북미 3차 고위급 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특사 교환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도 상황을 봐가며 한국이 결정하기로 하는 등 한국의 요구가 대폭 수용되면서 향후 북미회담만 더 어려워지게 됐다. 국내 여론을 의식해 한국의 목소리를 부각시키려는 행동이 북핵협상을 진행하는 미국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어 이른바 '슈퍼 화요일' 합의가 깨지는 데도 한국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북한과 미국은 93년 12월에 이어 94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과 남북 특사 교환, 3차 북미회담 등'과 관련된 합의를 이뤘는데, 한국은 특사 교환의 시기를 둘러싸고 북한과 기싸움을 벌이면서 북미협상의 재개를 어렵게 했다.
더구나 94년 3월 남북회담에서 북한 대표의 '불바다' 발언을 언론에 공개하도록 김영삼 대통령이 결정함으로써 '슈퍼 화요일' 합의는 완전히 좌초됐다. 미국은 '수퍼 화요일'이라는 합의를 어렵게 이끌어 내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했지만, 뒤뚱거리며 걷던 '수퍼 화요일'이라는 오리는 한국에 휘둘리다 추락하고 만 것이다.
바로 이러한 행동들 때문에 당시 미국은 북핵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의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북미 협상의 미국측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는 동료들과 함께 저술한 <Going Critical :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렇게 한국의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한국은 어떤 이유로 미국의 대북협상에 제약을 가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미국이 한국의 지지 없이는 북한과의 협상을 끌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많은 미군의 목숨을 앗아간 적대국이자 오랜 세월 스탈린주의적 폐쇄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반인권국가 북한. 그러한 '불량 국가'와 협상을 하는 데 있어 미국은 국내의 지지가 박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 전통적인 동맹국이자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의 지지마저 얻지 못한다면, 북핵 협상은 미국 내의 미약한 지지마저 상실하면서 좌초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한국의 지지는 미국에게 있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 한국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토(veto)할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었다. 북핵 협상은 미국이 주도했지만, 미국의 발목을 잡을 정도의 힘은 한국이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이러한 힘은 그러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윈윈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그 역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국 위상을 지키는 최소한의 보루, 6자회담
그렇다고 지금이 15년 전과 같은 것은 아니다. 먼저, 북핵문제는 6자회담이라는 틀에서 논의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만 해도 북핵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면서,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이라는 메가톤급 사안을 놓고도 대화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어떤 형태로 누가 해야 하는지 혼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6자회담이 몇 년째 계속돼오고 있고, 핵심 사안을 놓고는 북미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어서, 적어도 대화의 일정을 잡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15년 전처럼 조그마한 충격에 의해 대화 자체가 단절될 가능성은 낮아진 것이다.
아울러 6자회담에 한국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완벽히 소외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차이가 있다. 북한이 6자회담을 깨버리지 않는 한, 북핵문제에 있어서의 합의는 기본적으로 6개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만큼 한국의 발언권은 살아있게 돼 있다. 또, 6자회담 산하의 경제·에너지 협력 실무그룹 의장을 한국이 맡고 있는 만큼, 북한도 6자회담 차원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의 위상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의 지도자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당선자인 오바마는 좀 더 관찰이 필요한 만큼 클린턴 대통령과의 차이점을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다소 돌출적이고 저돌적인(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치 행태를 보였던 김영삼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행태는 같지 않을 것이다.
15년 전 한미관계의 특징은 상당 부분 김영삼 대통령의 개인적인 캐릭터에 기반한 측면도 있는 만큼,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의 북핵문제·북미관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남-북-미 관계가 정립될 수도 있다.
오바마 발목 잡을 한국의 '자산'은 여전
그렇지만 15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동시에 규정하는 조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먼저, 통미봉남과 한미공조가 맞부딪히는 상황이 그러하다. 김영삼 정부 당시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를 실질적으로 기피하며 미국과의 대화에만 관심을 기울였는데, 북한은 지금 남북관계의 전면 차단을 경고하며 대미접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로 인해 지금의 우리 정부도 한미공조를 통해 통미봉남을 무력화시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북핵문제의 키 플레이어는 여전히 북한과 미국이라는 점도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6자회담이 운용되고는 있지만, 북핵문제의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합의를 이뤄야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실제로 그래왔다.
따라서 북미대화가 본격화될 경우 한국소외론이 불거질 가능성 또한 여전하다. 그동안 6자회담에 한국이 꾸준히 참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빠짐없이 거론됐던 문제가 '한국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였는데, 앞으로 단순히 회담 참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경우 곧바로 한국소외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가? 일각에서는 오바마 정부가 적극적인 북미대화를 추진하면 한국은 대책 없이 끌려가면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바마 차기 미 대통령이 아무리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려고 해도 한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 대북 대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 대선기간 동안에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오바마는 후보 시절 북한과 이란과 같은 적국의 지도자와도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했다가 당내 경선 후보인 힐러리와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았고, 이에 따라 "적국의 정상은 철저히 준비한 다음 만날 것"이라든가 "논의할 내용에 대해 정확히 합의가 될 때까지는 직접 접촉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후퇴성 발언을 해야만 했다.
한국전쟁에서 많은 미군의 목숨을 앗아간 나라이자, 반인권적인 스탈린주의적 폐쇄 체제인 북한. 그런 불량국가와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오바마 행정부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자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강력히 반대한다면, 그걸 무릅쓰고 북미대화를 밀고 나갈 힘은 오바마 정부에게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15년 전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은 |
진보·보수·정부 '죽어야 산다'
김영삼 정부 당시의 남-북-미 관계는, 북한은 남한을 기피하고 남한은 그러한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북미협상의 발목을 잡음으로써 남북·북미관계가 다같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어떤 고리를 풀어냄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윈윈할 수는 방법을 찾는가가 중요한데, 그 고리는 남북관계의 정상화에서부터 찾아져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 세력, 그리고 정부에 대해 아래와 같은 태도를 취할 것을 제안한다.
■ 진보세력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 현재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애매한 입장 표명 등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시작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듯한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것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면 잘못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대남 강경조치들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개인간 관계에서도 압박을 받는 상태에서는 태도를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국가간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압박한다고 굴복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뭐냐'는 정부 내 일각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고 출범한 정부다. 더구나 20~30%대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지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진보세력의 압박에 의해 대북정책을 바꾸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진보세력의 비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통미봉남이 보다 뚜렷하게 되면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을 전환하기보다 (지지층을 의식해 15년 전의 경우처럼) 반대로 오바마 정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도 '비핵·개방·3000'이라는 말을 잠시 접어두고 '상생·공영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북한과 대화할 뜻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고,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서도 애매하나마 준수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가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 방법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그들이 원하는 북미관계 개선에 한국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 보수세력은
남북이 현재의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해 북미관계가 진전을 이루게 되면, 일각에서 우려하듯 통미봉남에 따른 한국의 소외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6자회담의 멤버로 한국이 참여하고 있고 경제·에너지 협력 실무그룹 의장을 한국이 맡고 있다고는 하나, 그러한 역할만으로 한국소외론을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다. 또, 한미공조가 아무리 강화된다고 한들 주연을 미국이 맡고 있다면 한국의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영삼 정부 당시의 경험처럼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화두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구도에서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처럼 국민들에게 소구력 있는 주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5년 전의 경우처럼 자칫 '한국의 미국 발목잡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논의의 주요 구도에 한국이 포함돼있어야 하는데, 통미봉남으로 한국이 논의구도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되면 한국은 미국의 대북협상에 제약을 가하는 데에서 존재가치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책 없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주장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이 주변자적 위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남북관계의 복원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 정부는
정부는 무엇보다 북한과의 경쟁의식을 버려야 한다. 북한은 이미 실패한 체제로 남북의 기싸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북한이 남한 정부를 상대로 여러 공세를 취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들의 수세적 입장을 반영하는 것인데, 정부가 거기에 지지 않기 위해 대응하다 보면 지금과 같은 대치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남북 간의 기싸움보다 현재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 올 통합에 대비하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향후 몇 년 또는 몇 십 년 안에 한반도에 중요한 변화의 시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래의 한반도 통합을 상정한 것이어야 한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북한을 식민지로 병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자석이 끌리듯이 북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남북한의 통합은 지금 북한체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북한 엘리트들의 생각을 친(親)남한으로 이끄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앞으로 남북관계가 좀 더 악화되고 북미관계가 조금 발전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15년 전과 같은 오류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소외론이 다시 불거지는 상황이 되면, 한국 정부의 역할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한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다같이 망가지는 과거의 전철을 답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 당선자와 김정일 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개선점을 찾아낸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2008년을 넘어서는 한반도는 너무나도 중요한 역사의 흐름 속에 서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거의 오류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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