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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겨울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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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겨울 설산

[김태규의 명리학]<361> 특집 제1회

필자는 1955 년에 태어나 상당히 풍족한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그러니까 1962 년에는 집에 미제 RCA 텔레비전이 있었다. 부산인지라 일본 방송 시청을 위해 부친이 들여놓으셨다.

여름이면 동네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죄다 필자의 집에 놀러와서 '역도산'의 레슬링 시합을 보곤 했다. 어머니는 수박 몇 통을 사다가 큰 대야에 설탕을 풀어 화채를 만들어 대접하시곤 했다.

생각해보니 당시만 해도, 이웃과 그런 정을 나누며 살았구나 싶다. 철없던 필자가 왜 동네 사람들을 불러 그 비싼 설탕을 마구 쓰냐고 어머니에게 따지다가 아버지에게 걸려 혼줄이 났던 기억도 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그렇게 부유하게 자랐건만 당시 어린 필자의 소원 중에 하나가 호두 열 개 정도를 혼자서 먹어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호두는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 필자는 모니터 옆에 호두를 통으로 놓고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먹기 좋게 다 까져있다.

부잣집 외아들도 함부로 먹지 못하던 호두, 지금은 누구나 실컷 먹을 수 있는 호두. 호두를 먹으며 세월의 차이,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지를 실감해본다.

언젠가 선물로 들어온 북한산 호두를 받았는데, 선뜻 손이 나가질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분명 그 호두를 먹지도 못하고 남한으로 전량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함일 것이니 잘 까져있는 호두 알마다 얼마나 많은 원망이 서렸을 것 싶었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1960 년대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잘 살고 있다. 남들 하는 것 다 뒤지지 않으려고 하니 힘든 것이지 정말 우리는 풍족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전부터 얘기해왔지만 우리 경제는 내년부터 15 년간 내리막을 걸을 것으로 필자는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그 기간을 필자는 겨울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져도 다시 1960 년대의 비참했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 보기에 한 가닥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또 묘한 것은 당시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사람들의 인정은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웠다고 느껴지니 필자의 착각인 것인지 아니면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근거 없는 향수인 것인지.

그래서 한 편으로는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면 인정이 거꾸로 살아나서 콩 한 톨이라도 나눠먹는 그런 훈훈한 세월을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도 은근히 해본다.

겨울이 시작되면 앞으로 우리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들 요인들은 무엇일까를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필자는 이 다섯 가지를 우리가 겨울에 넘어야 할 "다섯 개의 눈 덮힌 겨울산"이라 이름을 지었다.

-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디플레이션
-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황
-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에 따른 문제
- 김정일 이후 북한의 붕괴 등 그에 따른 통일비용
-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수출 경쟁력 저하

먼저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 디플레이션은 이미 시작되고 있고, 그 탓에 우리 역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더러 1978 년 이후 30 년만의 불황이라 하는 얘기도 있지만 필자는 그 이상 이어지는 문제라 판단한다. 1978 년의 불황은 미국 국운이 상승 가도에서 만났던 일시적인 곤경과 같은 것이라 이번 미국 국운이 겨울로 접어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여타 선진 경제권들은 이번의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심각하고 오래갈 것인지에 대해 사실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2007 년 기준으로 세계 총생산은 66 조 달러였고, 금융자산은 220 조 달러로서 생산의 3.3 배에 달했다. 필자는 금융자산이 생산액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면 나타나는 것이 거품이란 여긴다.

1990 년 당시 비율은 1.7 배 정도였으니 당시 비율로 돌아가려면 전 세계적으로 100 조 달러의 금융자산이 소멸될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융자산이란 은행 예금과 유가증권, 증시에 상장된 주식 등을 말한다. 이것이 무려 100 조 달러 이상 없어지려면 세계는 엄청난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 한 해 총생산의 120 배가 사라져야 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의 세계적 디플레이션은 15 년 이상에 걸친 과정이 되리라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은행들과 펀드들이 없어지고 무수한 기업들이 도산할 것이다. 이번에 미국은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자동차 기업들을 살리겠다고 하지만 그러면 사태는 더욱 오래 이어질 것이다.

엄청난 금융자산은 결국 미국이 불태환 지폐인 달러를 끊임없이 찍어내면서 생겨난 것이고 그를 통해 세계 경제가 지난 30 년간 호황을 누렸기에 이제 그것을 다시 되돌리는 일들이 시작되려고 하는 입구에 서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그런 '달러 찍어내기' 다시 말해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로 인한 세계적 경제호황의 대표적인 수혜국'이었고 나아가서 중국의 급속 발전 그런 흐름의 마지막 동승이었던 것이기에 이제부터 그 반대되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참으로 정신 바짝 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인 국내 부동산 가격의 하락에 따른 문제를 얘기해보자.

문제는 간단하다. 아주 간단하다. 1997 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과다한 차입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통렬하게 배웠다. 그 바람에 우량기업과 재벌들은 더 이상 차입에 의존하는 경영, 즉 요즘 유행하는 말로 레버리지 사용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기업이 대출을 받지 않자 새로운 대출처를 찾아나서야 했으니 처음에는 카드채 시장이었고 나중에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이었다.

결국 은행들은 불어난 금융자산들을 개인금융 쪽으로 급속히 선회시키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노무현 정권 당시 2004 년 말부터 집값이 상승하자 건축업자들은 프리미엄급 아파트 공급을 늘렸고 은행들은 이에 발맞추어 담보대출을 제공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으며 국민들은 집값 상승을 통한 중상층 도약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담보대출을 통한 아파트 구입에 나섰다.

근본에 있어 부동산은 결국 오른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의 산물이었다. 필자는 이 흐름이야말로 장차 우리 경제가 어려워짐에 있어 가장 큰 패착이라 여긴다.

특히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집값이 어느 선을 넘어 내릴 경우 모조리 도산할 수 있는 위험한 옵션 게임에 참가한 것이니 이 이상 위험한 유행이 어디 있겠는가.

최근 중소기업들이 KIKO 라는 옵션으로 난리가 났지만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하락이 가져올 피해는 그것의 수천배 이상이 될 것이니 즉각 국민적 재앙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기에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세 번째로 중국 경제의 거품 소멸로 인한 문제를 얘기해보자.

公式(공식)이 있다. 중국은 1978 년 戊午(무오)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했기에 30 년이 지난 2008 금년 戊子(무자)년에 와서 정점에 도달했고 그 상징적 사건이 북경 올림픽이었다.

아울러 중국이 앞으로 하강 길을 간다는 신호도 동시에 들어왔으니 바로 사천성 대지진이었다.

정점에서 3년이 지나면 일종의 경고가 들어오는데 이는 1994 년 정점에 달한 우리나라가 1997 년 외환위기를 맞이한 것과 같은 신호이다. 따라서 중국의 경우 2011 년이면 하락의 신호가 있을 것인바 이는 그간 30 년간 성장의 거품과 그로 인한 후유증이라 하겠다.

중국에게 있어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주택담보대출이 많지 않다는 점, 은행이 아직은 정부 소유이기에 어려움을 넘길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지난 외환위기 당시 유사한 구조였기에 조속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거품 소멸은 어쨌든 우리에게 두 가지 점에서 해롭다.

하나는 우리의 중국 무역 위축이고 다음으로는 중국이 어려움을 저가 공세를 통해 공세적으로 나서게 될 것인바 이는 다시 세계 경기에 디플레이션을 가속화시키면서 우리 경제에 다시 한 번 타격을 가할 것이다.

네 번째 문제가 있다.

북한의 일이다. 1948 년으로서 성립된 북한체제는 60 년이 지나 금년으로서 수명이 다했다. 김정일은 현재 생사가 불투명하고 또 다시 핏줄을 통한 후계구도로 이어진다는 것 역시 불투명하다. 더욱이 경제는 이미 파탄 상태에 빠져있다.

2011 년 중국 경제가 본격 조정에 들어가면 북한에 대해 중국이 신경을 현재보다는 덜 쓸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이 모종의 딜을 제시할 경우 그 내용 중에 하나가 북한에 대한 권리의 양보 또는 포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우리와의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할 것인 바, 이 또한 경제가 어려워진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재정적 부담이 가일층 심할 것이니 이 문제 또한 커다란 난제라 하겠다. 물론 궁하면 통한다고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근원적이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으니 이는 우리 산업의 노후화와 특히 수출 경쟁력의 저하이다.

우리산업과 특히 오늘날 우리 수출품목들은 거의 모두가 1976 년을 전후한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2006 년에 이르러 양적 성장의 정점에 도달했고 수출도 최대에 달하고 있지만 이제 서서히 그 품목들의 한계효용이 감소해가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미래성장 동력이 필요하다고 말들이 무성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획기적 계기가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 수출산업들은 일본 모델의 모방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 기술과 품목의 모방과 흡수였다. 자동차, 철강, 전자, 조선, 반도체, LCD, 플랜트 등등 모든 것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제 모든 영역에서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다.

물론 우리 기업들도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일본과 같은 원천 기술 강국이 아닌 우리 입장에서 2016 년 무렵이면 중국과 사실상 거의 대등한 경지에서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을 피할 길 없으리라 본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겨울에 넘어야 할 다섯 개의 雪山(설산)에 대해 간략하게 전망해보았다.

필자 생각에 이들 중에 어느 하나 우리가 피해갈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모두들 걱정하는 외환위기 문제는 이모저모 따져보니 이런 식으로 귀결이 날 것 같다.

국가적 외환부도 사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 말에서 내후년 초 정도에서 달러 부족이 심화될 경우, 결국 정부가 환율을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고 시장에 내맡길 것이라는 생각.

다시 말해 달러 가격을 시장에 맡겨 달러 상승을 용인하다가 어느 고비를 넘기면서 달러 가격의 진정을 기다리는 정책을 택할 것 같다는 얘기이다. 이것이 길게 보면 더 현명한 정책일 수 있겠구나 싶다.

생각에 우리 경제는 세계적 디플레이션이 진행될 경우 2015 년 이후 1인당 총생산액은 현재 달러의 불변 가격으로 8천 달러 수준, 그러니까 지금 2만 달러의 40 % 수준에서 수년간 이어갈 것 같다.

아마 우리는 내년부터 앞으로 10 년 정도는 風雪(풍설)의 세월을 보낼 것 같고 그 뒤로 5 년 정도는 어려운 경지에서 오히려 인정이 살아나고 다시 하나가 되는 세월을 맞이할 것이라 본다.

남남 갈등은 물론 북한과도 하나가 될 것이며 2024 년이면 다시 바닥에서 찬연하게 일어서는 불굴의 기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해법도 찾게 될 것이다. 무슨 해법이 있느냐를 놓고 몇 가지 생각이 들지만 言明(언명)하기에는 시기상조다 싶다.

어떻게 되든 길게 보면 우리의 국운은 앞으로도 창창하기만 하다. 그저 눈앞에 다가온 겨울 동안 건강하고 안녕하시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2004 년 가을 부동산이 급등하는 것을 보면서 그 이후 늘 필자의 뇌리를 무겁게 차지해오던 이야기들을 하고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다.

창밖을 보니 가을이 마지막 시간들 사이로 진저리를 치고 있다.

(알림: 11월 18일 저녁 역삼동 새빛 증권 아카데미에서 무료 공개 강연을 합니다. 증시에 관한 얘기이지만, 부동산과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한 얘기도 1 시간 정도 곁들일 것입니다. 많이 오셔서 좀 더 자세한 말씀 들으시면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문의는 02-539-3935, www.assetclass.co.kr 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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