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관련 상투적 이해들은 진실과 거리 멀다"
10월 28일 경남 창원에서 개막한 '람사르협약 총회'가 8일간 공식일정을 마치고 11월 4일 폐막됐다.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140개국 정부대표, 습지전문가 등 2300여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당사국회의 직전 경남 창녕과 전남 순천에서 열린 '세계 습지 NGO 대회'에서 한국 NGO는 이런 정부 주최 행사의 이중성을 고발했다. 그들은 정부의 습지 파괴 정책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한국정부의 람사르협약 이행 의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새만금사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요란한 정부의 환경 이벤트는 책임회피용 알리바이인 경우가 많다. 그 알리바이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건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는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이벤트, 그걸 보도하는 언론의 프레임을 간파하지 못하면 깜빡 속아 넘 어갈 수밖에 없다. 한 여성학자는 안다는 것은 상처 받는 일이라고 했다. 안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닫는 과정이 될 터이니까. 그러므로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스스로의 시선을 문제 삼지 않는 한 우리는 진실의 발끝에도 닿을 수 없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저널리즘 특강 세 번째 시간, '자연보도의 신화 벗기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의에서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는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익숙한 시선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 이전에, 자연의 복잡하고 다양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 동안 환경전문기자로 일해 온 그가 언론의 환경보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언론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폴로 17호의 지구 사진. 미디어가 채택한 지구의 대표 이미지다. 인간의 시선 속에 포획당한 지구는 아름답고 가냘픈 여성이다.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외면한 채 인간의 눈으로 고정시킨 자연의 이미지,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자연일수록 예찬받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원시 자연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빽빽한 나무들이 가득 차서 도저히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 같은 곳도 알고 보면 사람들이 다 밟고 다닌 곳이거든요. 생태학자들이 멋진 습지라고 하는 곳도 조사해 보면 10년, 20년 전까지 논이거나 밭이었던 곳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자연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그렇다고 무작정 인간의 방식으로 손을 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소통하는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 자연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에 적응하며 여태껏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자연 그 자체의 문법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갯벌은 자연의 보고이기 이전에, 주민들의 텃밭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사람과 자연은 함께 해온 시간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 갔다.
"새만금 갯벌을 보세요. 인간이 채취를 시작하며 동죽과 백합 위주로 생태계가 바뀌어 나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이 좋아하는 일부 종만 살아남은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의 관점입니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그 나름대로 자신이 적응해나간 것이죠."
인간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환경보도
생동하는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 고정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환경 관련 보도를 한편의 드라마로 만든다. 언론이 배스나 황소개구리로 대변되는 외래종 보도를 다루는 프레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언론은 거대한 서양 외래종들이 우리의 토종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쓴다. 황소개구리의 위협은 많은 곳에서 과장된 인상이 짙으며, 일부 연구를 보면 우리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잡아 '식구'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보도가 왜 여전히 '먹히는' 것일까.
"외래종에 대한 분노는 환경과 관련한 우리들의 잘못을 숨기고, 외래종을 속죄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민족적 공분을 자극하는 이런 소재들은 정부가 더욱 부추기기도 하지요. 저도 그랬지만 이런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해 배스는 끔찍하게, 토종 물고기는 너무나 여리고 귀엽게 찍습니다."
그는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뒤 일어난 기적의 드라마 역시 비판했다. 언론이 자원봉사자들이 이루어낸 기름띠 제거 작업에만 초점을 맞출수록, 정작 중요한 사건의 원인이나 재발방지 대책은 실종된다는 것이다. 사건의 핵심을 비껴가는 보도관행은 언론의 사고 이름 짓기 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이전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 사고의 명칭을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아닌 사고 유조선의 이름을 딴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로 불려야 하는 이유를 지적한 바 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이름을 사고 명칭으로 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낙인효과만 강화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1993년 서울대 교수가 여성 조교 우씨를 성희롱한 사건을 언론이 '우 조교 사건''으로 부르면서 가해자인 남자교수는 사건의 중심에서 사라지고 피해자만 주체로 떠오른 것과 비슷한 이치다.
토종닭과 '공장닭'은 무엇이 다른가
환경전문기자는 채식주의자일 것이라는 편견은 외래종 물고기 배스를 두고 "맛은 좋은 놈"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그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공장식 축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토종닭을 잡아먹곤 했던 추억이 남아있는 그에게, 닭을 먹는다는 것은 "닭의 기억까지 함께 삼키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는 날 아침 온 가족이 모여 어떤 닭을 잡을지 회의를 합니다. 격론 끝에 잡아먹을 닭을 정한 뒤, 아버지가 목을 비틀고 물을 끓인 솥에 닭을 집어넣습니다. 닭의 위 속에는 어제 내가 준 사료와 개구리가 있습니다. 암컷의 뱃속에 가득한 알들을 보면서는 이 닭이 나를 위해 알을 이렇게 많이 준비했구나, 뭉클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걸 다 보며 백숙을 만드는 것이죠."
어린 시절의 토종닭은 공장식 축산과정을 거쳐 마트까지 온 상품용 닭과 생물학적으로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닭과 내 삶은 전혀 연루되지 않았기에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집에서 직접 키우던 닭은 다르다.
"닭을 먹으며 이 닭은 내가 정말 미워한 닭이었지, 알을 많이 낳아서 고마운 닭이었어, 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닭의 내러티브를 기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손맛이고 깊은 맛인 것이죠."
내러티브가 없이 공장식 축산으로 상품화한 닭은 가격이 싼 만큼 위험하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빠른 속도로 덩치 큰 닭을 키우기 위해 다른 닭의 깃털 단백질로 만든 '윤회' 사료나 항생제를 거부할 방법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값싸게 고기들을 사면서도, '윤회''사료나 항생제가 가져올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조류독감, 광우병과 같은 신종 전염병들도 따지고 보면 공장식 축산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탐욕이 파생시킨 위험들이 아닐까.
"문제는 위험을 어떻게 소통시킬 것이냐는 점입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모르는 부분은 많아졌습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것들을 다 장악하고 있다는 식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위험은 커집니다. 투명성과 신뢰로 위험을 분산시켜야죠."
자연 보도는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70년대 대학을 다녔다는 그의 전공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데 기여했을 것 같은 화학공학이었다. 당시 노동운동이 주류였던 학생운동의 틈에서 그는 전공지식을 활용해 공단의 오염 현장을 찾아다녔다. 80년대 말에는 공단 내 유해물질로 인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현장을 자주 다녔지만, 오염물의 수위가 법적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마 기사화 하지 못한 사건들이 많았다. 기자는 공정하고 엄격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황산에 앞니가 다 녹아버린 이들의 현실을 빤히 보면서도 기사를 쓰지 못한 건 죄책감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쓸 건 써야하는데 말이죠."
다양하고 복잡한 자연을 민감하게 감지하되,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는 것. 두 시간의 강의를 통해 그가 강조하고자 한 것도 결국 이것이 아니었을까. 지독하게 '인간적인' 관점을 벗어던지고 겸허하게 자연의 진실에 다가가겠다는 태도야말로 인간이 자연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한국 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와 장소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 http://journalism.semyung.ac.kr ) 공지사항에 게시돼 있습니다.
정리=김소영, 조은미 /사진=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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