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특집 5회가 남았지만, 오늘 글로서 360 회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한 해의 날수는 美學(미학)적 견지에서는 360 일이고 사실에 있어 365일이라 360 회로서 완결을 짓고 추가로 5회를 보태고자 한다.
360 회, 회당 200 자 원고매수로서 대략 25 장 분량이니 9000 매 정도가 된다. 2001 년 12월부터 프레시언에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으니 그간 어느덧 만 7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여 '김태규 명리학'이란 글은 이미 필자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다. 마흔 일곱부터 쉰 넷에 이르는 기간, 마흔 중반부터 쉰 초반에 이르는 나이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충실한 시기이기에, 동안 매주 한 번 정도의 글을 '음양오행과 우리의 삶'이란 주제를 가지고 써왔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이런 공간을 마련해주신 <프레시안>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고맙습니다. 꾸벅"
아울러 필자의 글을 읽어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신 수많은 독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맙습니다. 꾸벅"
그리고 더러는 엉터리, 혹세무민, 영약, 교활 등의 가시 돋친 비평의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제약된 공간이고 필자의 부족한 탓으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들이라 여기기에, 정작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수 있었다면 능히 풀릴 일들이라 보기에 필자는 진정 하등의 섭섭함이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다.
젊은 날, 우연히 조우한 음양오행이라는 세계관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동아시아 문화의 바닥을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底流(저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오늘에 와서 지나간 봉건잔재의 유물인 양 취급받는 것이 모욕감으로 다가왔다.
음양오행적 세계관이 진정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권의 사상과 역사도 더 깊게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내 연인이 아름다운지를 알려면 다른 연인들의 모습을 살펴야 하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동서양의 현인들이 남긴 글과 역사에 관해 읽으면서 더러는 같은 점을 발견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다른 점에 대해서 변호사의 입장에서 때로는 판관의 입장에서 논단을 하기도 했다.
대강 섭렵했다 싶은 무렵, 마침 <프레시안>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하여 360 회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가 어디 쉬우리. 하지만 시간을 두고 원고 매수로 9000 매에 달하는 글을 쓴다면, 음양오행을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고 미신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야, 저놈의 음양오행, '뻥'이고 '구라'인 줄로만 여겼더니 저 정도 분량이면 돌아볼 여지가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는 생각.
철봉을 바위에 대고 갈아서 마침내 쇠바늘로 만들어야 道(도)를 이룬다는 동아시아의 옛 이야기를 한 번 실천해보자는 마음.
따라서 360 회나 이어온 이 글은 필자 자신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혹독한 연마의 장이었다.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라고 해도 능히 그럴 것이니 웅녀의 혼령이 필자를 보살폈나 보다.
사실 그간 필자에게는 독자들에게 밝히지 않은 또 하나의 커다란 성과가 있었다. 사실 명리상담실을 열게 된 것은 다른 목적 때문이기도 했으니 젊어서부터 늘 관심을 가져오던 '언어에 대한 연구'를 글로 옮겨놓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명리학 칼럼을 쓰는 한편 부지런히 연구를 글로 옮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무려 2만 5천매에 달하는 언어 연구에 관한 글을 2006 년 말로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15 매의 원고를 썼으니 물론 이 연구가 책으로 소개될 수 있을지, 과연 한 명의 독자라도 읽을지 한심하고 불투명하지만 어찌되었든 필생에 걸친 연구를 어느 정도 밖으로 내놓았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필자는 여름 무더위에 태어났고 날도 '불'의 날이라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생각도 무척이나 빠르다. 순식간에 많은 것들을 헤아리는 능력도 있지만, 반면 급한 것으로 해서 실수도 많고 참고 기다리는 방면에는 정말 적성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긴 여정을 해왔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싶은 것이다. 명리학 칼럼의 경우 독자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그래서 필자가 그간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상담해주고 연구를 통해 얻어낸 바, 그 정수라 할 수 있는 것을 이 자리에서 얘기해주고자 한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수억 마리 정자들의 경쟁을 뚫고 태어난 우리, 그래서 그런 삶을 당신이 긍정하든 부정하든 시시한 것이라고 나아가서 고통의 바다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대단한 것이며 아름답고도 충만한 것이라는 것이다.
Will I be happy, will I be rich?
그 오랜 옛날 패티 페이지가 부른 노랫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러 온다.
이에 '그럼요, 당연하지요, 공연한 일로 오셨군요'가 필자의 대답이다.
이 대답에 삶은 대단한 모험이고 아울러 즐거운 모험이라는 것을 곁들이고 싶다.
이 모험을 마치면 우리는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처럼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무수한 곤경과 만나게 되지만, 당신 스스로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신기하게도 어떤 끝 지점에 다다르게 될 것이며, 그 끝은 어떤 끝인가에 관계없이 행복과 충만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삶이 苦海(고해)라고 말한 부처의 말은 그저 방편이었을 뿐이다. 고통만큼이나 행복으로 가득한 곳이 삶터라고 부처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해는 햇빛의 길어짐과 짧아짐이고 열과 수분의 순환이다. 모든 삶은 사실 한해살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 되면 우리 마음이 경건해지고 숙연해지는 것은 까닭 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환은 진실로 한 해로서 마무리되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우리는 수십 년을 살아간다. 우리들은 그것이 한 해마다 죽고 한 해마다 태어나는 삶인 줄 모르고, 일관된 연속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다.
그런 고정관념을 던지고 나면 80 년을 산 노인은 사실 80 生(생), 즉 80 번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한 삶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미 우리는 해마다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면서 영겁윤회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건만 삶의 끝에 가서 아직 충분하게 살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면 良心(양심)에 걸리는 무엇이 어찌 없겠는가.
더하여 내 삶을 이어 살아갈 자녀마저 있다면 사실 무엇이 아쉽겠는가. 나아가서 그 자녀가 또 자녀를 낳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하등의 미련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떠날 때를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의 삶을 완전 연소하고 누리면서 살면 되는 일이고 때가 되면 다 연소된 거죽일랑 놓아버리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가 삶을 마칠 때 인생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에게 고마웠다고 인사할 수 있다면 삶은 그것으로 충만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작년에 지은 시를 한편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내 언젠가"
환한 얼굴로
인사하리라,
영욕의 산을 넘고
애환의 고개를 지나
내 언젠가
삼도천(三途川)을 건너갈 적에
환한 얼굴로 인사하리라,
밟아온
모든 길과
길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에게,
내가 버린 인연들과
나를 버린 인연들에게
버린 것도 아니고
버려진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고마웠다고
눈물 어리게 고마웠다고
나부끼는 흰 손수건처럼
환한 표정으로
인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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