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금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했는가를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신은 이 선거운동 기간 동안 매일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날마다 낯선 사람의 집을 방문했고, 저에게 기부를 해 주거나 당신의 친척·친구·이웃에게 왜 지금이 변화를 위한 시간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번 캠페인에 쏟아준 당신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열정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연락을 취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 점에 대하여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은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버락.
4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열렸던 승리 파티로 향하기 전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돌렸다. 아마도 셀 수 없이 많은 '친구'들이 이 메일을 받았을 것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에 환호와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그러한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는 미국 정치사에 유례없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점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다. 노예 해방이 있은 지 150여년 만에, 그리고 시민권리 운동이 있은 지 50여년 만에 '흑인'은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정치적 전환은 일상적인 '작은' 정치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번 '레짐 체인지'는 그만큼이나 큰 변화가 일상적인 '작은' 정치의 실천 속에서 가능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태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작은' 정치의 수준에서 살펴보았을 때조차도, 이번 선거는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그런 의미에서 '큰' 변화'를 목도해왔다. 사상 유례없는 풀뿌리식 선거자금의 모금과 그 액수, 대규모의 자원봉사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지역 선거조직의 비약적인 확대, 무려 30분 동안이나 전국 네트워크 방송을 통해 나간 다큐멘터리식 정치 광고, 유튜브(동영상 공유 사이트)나 페이스북(미국판 사이월드로 불리는 개인 교류 사이트)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된 웹 중심의 저비용·고효율 광고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일상적인 '작은' 정치의 수준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큰' 변화들이었다.
나아가 오바마 캠페인이 보여준 자원 봉사의 범위 역시 다른 캠페인에 비해 확대되었다. 오하이오, 인디아나,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경합주들에서 주로 주말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일리노이나 뉴욕에서 온 오바마 지지자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발전한 일종의 원거리 선거운동 역시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큰 변화 중 하나였다. 바로 이것이 오바마가 강조하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일 것이다.
인종 문제를 극복한 영리한 전략
그렇다면 이러한 작은 정치적 실천들이 왜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지배를 종식시킬 수 있었는가?
인종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종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오바마의 인종 연합 전략의 성공을 들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인종주의의 고통을 배타적으로 독점했던, 그런 의미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투쟁 역시 배타적으로 독점했던 흑인들의 독자적인 반인종투쟁 보다는, 20세기 미국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인종차별을 경험했던 이주자들을 포함한 인종간의 정치적 연대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었다.
오바마가 연설을 통해 누차에 걸쳐 강조한 이 원리는 정치적 상부구조의 선거 연합에서부터 각 지역의 선거 운동 조직화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철되었다.
지난 3월 18일 필라델피아 연설은 인종적 다원주의 정치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었고,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 특사를 역임했으며,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히스패닉계를 대표했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오바마를 지지했던 핵심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관련 기사 : 미국판 '우리가 남이가'로 '묻지마' 투표?)
실제로 미국의 몇몇 공동체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의 갈등은 위험수위에 올라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인종적 다원주의 정치연합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대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던 것 역시 흥미롭다. 그가 속한 아일랜드 이민자 그룹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까지만 해도 '미 동부의 중국인'으로 취급되었으며, 백인이라는 범주에 '감히' 포함조차 되지 않았던 '인종'이었다.
그들은 2차 대전 이후에야 광범위한 의미에서 백인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미국 정치사에서 인종주의를 극복한 최초의 대통령은 오바마가 아니라 아일랜드계였던 존 F. 케네디였다.
이러한 인종 연합 전략은 이번 선거에서 크게 두 그룹, 그러니까 흑인, 그리고 자신을 '이주자'라고 생각하는 그룹의 광범위한 동의를 조직화하는데 성공했다.
우선 흑인의 경우 투표 참여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오바마에 대한 응집력 역시 극대화될 수 있었다. 심지어 흑인 그룹 내부의 반인종주의 강경파들로부터 '백인'에 동화됐다고 비판받았던 흑인들에게조차 오바마를 지지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사실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지지 선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인종 연합 전략은 이주자 그룹의 오바마에 대한 투표 응집력을 증대하고 공고히 하는데에도 기여했다. 아직까지 이주자 그룹의 투표에 대해 정확한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필자가 예측하기에 특정 이주자(베트남계, 쿠바계)를 제외한 전 이주자 그룹에서 오바마에 대한 투표율은 그의 전국 득표율에서 10% 내외를 상회할 전망이다.
네오콘의 담론을 재구성하라
둘째, 오바마의 선거운동은 네오콘의 정치적·일상적 담론에 대한 재전유를 통해 그것에 대한 대안적·비판적 담론을 성공적으로 재구성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을 기점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네오콘의 정치적·일상적 담론들은 유색인종과 동부·서부 연안의 백인 지식인, 게이와 레즈비언, 노동조합 등의 배제를 통해 그들의 담론이 마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성공해왔다.
이에 따라 차별수정계획이나 복지 혜택, 낙태 등은 '특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대신, 낮은 정치참여가 정상적인 것으로, 규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기업가 정신과 그러한 주체성의 형성을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성공해왔다.
이러한 네오콘의 정치적·일상적 담론에 대해 기존의 좌파나 자유주의자들은 일종의 '맞불'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러한 맞불 전략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축을 고정시키면서, 오히려 네오콘의 담론이 좀 더 부드럽게 대중에게 파고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세금 감면(tax cut)의 문제를 보자. 그에 대한 좌파나 자유주의자들의 대항 전략의 핵심적 담론은 세금 감면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고, 세금 감면 보다는 복지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의 결과, '세금 감면=보수주의·네오콘', '세금 확대=좌파·자유주의'자라는 이상한 대립이 네오콘에 의해 정책적·일상적인 담론으로 고착돼왔다. 이러한 방식으로 담론이 고정되는 순간, 좌파 및 자유주의자들은 힘든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네오콘 및 보수주의자들의 전매특허이자 미국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는 세금 감면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대신 그러한 세금 감면을 전체 국민의 95%에 한정하고, 소득기준 상위 5%는 제외함으로써 세금 감면의 담론을 그 담론 내부에서 재구성하고 정치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대안적·비판적 담론의 재구성은 그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나타났다. 환경론자들이 반대할 법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석유개발 공약에 대해 오바마는 오직 석유재벌의 이익에만 도움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신 그는 대체 에너지 개발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개발 개념을 재구성했다. 그로 인해 '에너지 개발=땅파기'라는 네오콘 및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담론과 그것에 대한 '맞불' 전략으로 형성됐던 '에너지 개발=환경파괴'라는 대항적 담론 모두를 해체해 왔다.
결국 이러한 정치적 전략들과 일상적 정치 활동의 결과가 바로 '유례없는' 역사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참여했고 그것을 지지했던 많은 미국인들에게 선거의 승리가 역사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오바마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획일적인 이데올로기, 이익, 혹은 정치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공고화가 필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오바마 리더십의 첫 시험대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곧 받게 될 다음 이메일이 궁금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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