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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칼잡이' 오바마, '활극'은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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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칼잡이' 오바마, '활극'은 이제 시작"

[오바마 시대] '근본적인 변화'의 조건

오바마, 당선의 기술

1960년대 시민운동 이후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 감소하고 흑백 간의 경제적 격차가 70년대 말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하버드 사회학과 교수인 윌슨은 미국 사회 계층 구조에서 '인종의 중요도 감소'라는 소위 '윌슨 가설'을 발표해 사회과학계의 격렬한 논쟁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흑인의 교육 수준 확대에도 불구하고 인종 간 격차는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그같은 현상은 80년대 이후 미국 사회 전체의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불평등 증가는 그룹 간 격차가 아닌 그룹 내의 격차로 특징지을 수 있다. 흑백 간의 격차 증대가 아니라, 백인 내, 흑인 내에서의 계급 간 격차가 커졌다는 것이다.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자 우대 정책) 등의 효과로 흑인 사회 내에서 중산층은 증가했지만, 흑인 중산층이 전체 흑인 사회의 경제적 처지 개선에 기여하기 보다는 나머지 흑인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백인 주류 사회로 편입되었다. 도시의 슬럼화는 백인의 교외 지역으로의 이탈에 이은 흑인 중산층의 이탈로 가속화되었다. 흑인 중산층이 증가했지만 아직도 절대 다수의 흑인은 빈곤층 내지 중하층의 서민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흑인들에게는 '오레오'로 비하되는 '백인처럼 행동하는 중산층 흑인'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선거 운동 초기에 흑인 사회의 지지를 받는데 고전했던 한 배경이었다.
▲ ⓒ로이터=뉴시스

오바마가 흑인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초기부터 받지 못했던 또 다른 요인은 그가 노예의 서러움을 경험한 흑인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의 교육 수준을 개선시키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어퍼머티브 액션의 혜택을 최근 아프리카, 동인도 출신의 흑인 이민자들이 휩쓸고 있다.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의 흑인 비중은 증가했지만 그들의 절대 다수는 최근에 온 이민자들이고, 노예의 역사를 가진 흑인의 비율은 낮다.

그에 따라 흑인 내에서는 계급 간 갈등에 더불어 노예의 후손과 최근 이민 온 흑인 사이의 갈등이 있다. 이민자의 아들, 하버드 출신, 백인 어머니. 이 모든 요인이 오바마가 선거 운동 초기 '진정한' 흑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였다.

오바마의 이러한 배경은 흑인과 백인 모두로부터 배척당할 수도, 반대로 양자 모두로부터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산산이 흩어지는 분열이 될 수도, 잘 짜 맞춰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퍼즐과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즉, 오바마의 배경은 양날의 칼이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오바마는 그 양날의 칼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주었다.

정서적 연대에 그친 흑인 사회의 지지

8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갈등의 요인이 줄어들고 계급 갈등이 커진 것은 오바마가 인종과 계급의 연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이 연대가 정책적인 연대라기보다 정서적 연대의 성격이 강하다는데 있다.

오바마는 중산층에 대한 감세와 지원을 약속했지만, 빈곤층에 대해서는 역설하지 않았다. 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이 '빈곤과의 전쟁'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고, 새로운 미국의 비전을 제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흑인 사회는 중산층의 위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빈곤의 문제를 안고 있다. 중산층에 진입한 흑인에 대한 백인 주류 사회의 거부감은 급격히 감소했지만, 사회 하층을 형성하고 있는, 교육받지 못한 흑인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심하다. 심지어 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한다.

사회학자인 웨스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졸 미만의 흑인이 전과자가 될 확률은 70%에 달한다. 2000년 민주당의 앨 고어가 조지 W. 부시에게 패한 이유도 플로리다의 경범죄를 저지른 다수의 흑인을 투옥하고 선거권을 박탈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현대판 인종분리 정책은 중산층 흑인은 주류 사회로 받아들이고, 교육 수준이 낮고, 따라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 흑인들을 격리해 감옥에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체 인구 중 감옥 수용 인구의 비율은 다른 선진국의 7배에 달한다. 상당수의 흑인들이 10대 이전에 부모가 투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 ⓒ로이터=뉴시스

오바마는 이 문제에 대해 교육 환경의 개선 등 정책적 대안을 언급하긴 했지만, "부모의 책임"을 역설함으로써 주류 사회의 시각을 대변했다. 유명한 흑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흑인 사회의 문제를 언급하며 교육을 위해 저축하기 보다는 10만원이 넘는 비싼 운동화를 사는 '흑인문화'가 문제라고 주장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 유사한 시각이다. 오바마의 이러한 시각은 흑인 사회에 만연한 피해의식을 넘어서고 '흑인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것으로 인식되어 백인 주류 사회에서 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데 기여했다.

이런 측면에서 흑인 빈곤층의 오바마 지지는 정책에 기반한 지지라기보다는 역할 모델로서 상징적 효과에 이끌린 지지다.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후 흑인 사회가 결집할 것이라는데 이견을 보인 사회과학자는 별로 없었다. 설사 정책적인 구체성이 없다 할지라도 오바마의 성공을 피부색이 같은 자신의 성공으로 감정이입할 수 있고, 흑인에 대한 이미지 개선은 장기적으로 이미지 때문에 이루어지는 '통계적 차별'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곤 문제를 정책을 통해 직접 다루지 않고 개인적 책임으로 환원하는 방식은 향후 정책 실행 과정에서 흑인 빈곤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고, 빈곤층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경우 백인 중산층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갈 길은 첩첩산중

이러한 구조는 복지에 대해 냉소적이고 경제적 성공의 요인을 거의 전적으로 개인적인 성취에서 찾는 미국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중산층의 몰락은 성실·근면하게 일했음에도 사회구조적 요인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기에 제도적으로 구제해야 하지만, 빈곤은 나태와 방종에 따른 개인적 책임이라는 인식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레비와 투민 교수는 경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디트로이트 계약'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로의 전환이라고 요약했다.

노조는 파업을 지양하고 노동평화를 약속하고 기업은 생산성 향상에 조응하는 임금 인상과 여러 혜택을 제공하여 기업 구성원의 복지를 추구하는 게 '디트로이트 계약'이라 표현된 암묵적 사회적 합의의 요체였다면, 1980년대 이뤄진 '워싱턴 컨센서스'는 기업 이윤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기업 구성원이 아닌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디트로이트 계약이라는 암묵적인 사회 협약은 대공황의 교훈,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국민적 연대 의식, 노조의 도덕적 우월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중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경제위기 극복이 중산층의 경제적 처지 개선으로 가능하다는 것, 분열보다는 연대가 사회적 미덕이라는 것, 사회 문화의 주축이 될 수 있는 조직으로써의 사회제도를 구축하는 것. 오바마가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정치 과정을 통해 입증하고 건설해야 한다. 행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조직화, 이념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 전반에서 승리해야 변화는 가능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로 그 모멘텀은 주어졌지만, 실제 근본적 변화가 가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가 보여준 갈등 요인을 통합 요인으로 전환 시키는 정치적 능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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