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파독 광부들의 모임인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중앙회' 성규환 회장을 초대해.. 모처럼 고국을 찾은 소감과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쳐야했던 지난 40년 파독광부들의 삶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중앙회' 성규환 회장입니다. 성규환 회장은 1977년 파독 근로자로 독일 아헨으로 건너갔으며 2005년부터 파독 광산 근로자들의 모임인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중앙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파독광부 분들이 상당히 여러분 고국땅을 밟으셨는데 어떤 말씀들 하시던가요?
성규환 : 모처럼 고국에 오신 동료들은 저희들이 떠날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고국이 발전이 많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이 변했습니다.
박인규 : 몇 분이나 오셨습니까?
성규환 : 136명 왔습니다.
박인규 : 파독 광부 분들이 단체로 고국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인가요?
성규환 : 처음은 아니고, 2002년 대한적십자 초청으로 한 번 있었습니다.
박인규 : 제가 듣기로는 파독 강사 분들과 광부 분들이 같이 오신 적은 있지만 광부들만 따로 오신 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해서 이번 행사가 마련됐습니까?
성규환 : 파독광산적립금 약 18억원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조금 보조를 하고 총 21억원 중에서 3억원을 책정받아서 고국방문을 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파독광산적립금이라는 건 퇴직금 같은 겁니까?
성규환 : 퇴직금입니다.
박인규 : 처음 가신 게 1963년인가 그런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연세가 많으실 것 같은데 오시고 싶은 분들은 다 오신 겁니까?
성규환 : 80이 넘은 분들도 있습니다. 다 못 왔습니다.
박인규 : 더 오셔야겠네요
성규환 : 더 오게도 해야 되지만 그래도 못 올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파독 광부로 가셨다가 독일에 남아 계신 분들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성규환 : 1200명 정도
박인규 : 이번에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한국을 다니셨는데 어디어디 다니셨습니까?
성규환 : 충남 부여, 전주역사박물관, 전남의 광양제철소를 시찰했습니다. 그리고 울산 현대중공업을 산업시찰하고 마지막으로 제주도 민속박물관을 보고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상당히 강행군을 하다 보니 많이들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광부 분들이 어디에 가장 감탄하고 놀라시던가요?
성규환 : 한국에 와서 보면서는 광양제철소를 봤을 때 독일에도 제철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제철소가 있다는 걸 봤을 때 그야 말로 흔히들 얘기하는데, 우리나라가 이래서 경제가 성장했구나, 이런 느낌들을 가지고 온 파독광부들은 역대 대통령께서 당신네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경제발전에 초석이 됐다고 말씀들을 많이 했습니다. 참 우리가 조금씩 보탠 돈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자부심을 갖는 분들도 있고, 막상 와서 보니 광양제철소나 울산중공업... 그야 말로 어마어마하게 저희들이 생각했던 것 외로 큰 산업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마음속으로부터 감회를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 성규환 회장께서 맡으신 데가 재독한인중앙회인데 글뤽아우프인데, 글뤽아우프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성규환 : 광산에서 지하1000미터, 1300미터에서 일하고 올라오니까 아침에 만났을 때나 점심에 만났을 때나 만날 때마다 행운을 빈다는 뜻입니다
박인규 : 이게 일상사회에서도 쓰는 말입니까?
성규환 : 안 씁니다.
박인규 : 광부들끼리 서로 행운을 빈다는 뜻으로 쓰는 특수한 말이군요.
성규환 : 지하에 가서 다치는 일이 많으니까, 만났을 때 오늘 행운을 빈다는 뜻입니다.
박인규 : 언제 만들어진 단쳅니까?
성규환 : 1973년도 10월에 만들어졌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얘기를 해보죠. 63년도부터 가셨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언제까지 파독광부들이 파견됐고 총 몇 명이나 가셨습니까?
성규환 : 63년도 11월부터 77년도 10월까지 파독했는데 총 인원은 7936명입니다.
박인규 : 8천명 가까이 가셨군요. 간호사 분들도 많이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성규환 : 네. 간호사 분들은 65년도부터 나왔습니다. 간호사 분들은 1031명이
박인규 : 제가 어떤 언론보도를 보니 간호사 분들은 정식 기능을 가진 직업인이고 광부로 가신 분들은 산업연수생이다. 광부로 가신 분들이 좀 어려웠다는 보도도 있던데요.
성규환 : 맞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광부라고 했을 때 최하, 마지막 직업으로들 생각했는데... 인생막장. 독일에 간 파독 광부 일진은 약 45%가 학부 출신입니다. 대학 졸업한. 이러면서도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고 그 당시 일자리도 없고, 마지막 직장이다. 우리나라 경제를 위하고 살기 위해서 그야 말로 힘든 각오를 갖고 광부로 가게 됐습니다.
박인규 : 한국보다 훨씬 더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가자. 성회장님은 언제 가셨습니까?
성규환 : 저는 77년도에 갔습니다.
박인규 : 맨 끝에 가셨군요. 그땐 무슨 일을 하시다가 가신 거예요?
성규환 : 저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다른 사업을 하면서도 그 당시에는 한국에 아무 사업이라도 안정성이 없을 때입니다. 운수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파독광부로 가면 목숨에는 위험이 있지만 우선 부모, 형제, 자식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각오를 갖고
박인규 : 한국에서 그 당시 통상적으로 받는 임금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았습니까?
성규환 : 통상적 임금에 비하면 한 5배
박인규 :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이미 결혼도 하셨고 70년대에 머나먼 객지에 혼자 나가시는 게 힘든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성규환 : 저뿐 아니라 다들 힘든 결정을 하고 사실 갔습니다. 그러면서 고국을 떠난 마음은 더 아프고 보내는 분도 마음이 아프고 김포공항에서 그야 말로 울음의 작별을 하고 다들 떠났습니다.
박인규 : 가셔서 대개 근무연한이 3년으로 돼서 3년 동안 일하셨다던데 어떤 일을 하신 겁니까?
성규환 : 약 90%는 최막장에서
박인규 : 거기서도 3D업종인가요?
성규환 : 지하 1000미터 이하, 온도가 30도 이상입니다. 막장에 일하러 갈 때 물 5리터를 갖고 내려갑니다. 이 물을 다 마시고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오줌 한 번 안 눌 정도로 물을 다 마십니다. 지난 세월이니까 그러는데 막장에 들어가서 울기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우리 한국 인력들은 체질이 안 맞아서. 유럽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든 기구니까 우리가 만지기에 힘에 너무 부쳤어요. 크고 무겁고. 그래서 하루에 장화 한 3번 정도는 물을 비워야 됩니다. 옷을 입지 않고 옷을 벗고 작업합니다.
박인규 : 7900명이 가셨는데 그 중에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분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규환 : 광산에서 죽은 분은 18명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쳐서 몇 년 더 살다 죽은 분은 상당히 많습니다.
박인규 : 막장에서 일하시다 보면 진폐증 이런 것도 걸리신다던데
성규환 : 다는 아니지만 그런 영향을 받은 분도 많죠.
박인규 : 말하자면 그 당시 독일 사람들이 3D업종이니까 일을 안 하려고 하니까 요즘 우리나라처럼 터키나 한국에서 광부를 데려온 거 아닙니까. 그때 같이 일하시다 보면 독일사람들과의 인종차별이랄까 이런 건 못 느끼셨습니까?
성규환 : 없다곤 할 수 없었지만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물론 언어도 잘 안 통하고 우리들이 힘이 부치니까 그 사람들이 봤을 때 힘도 없으면서 왜 일하러 왔느냐... 이런 대우는 때로 받고 일했죠.
박인규 : 원래 가실 때는 3년 근무하기로 하고 가셨는데 대개 돌아오신 분들 많습니까 남으신 분들이 많습니까?
성규환 : 돌아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한 4천몇백명은 돌아오고, 그 외 한 2천 명 정도는 제3국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미국, 캐나다... 현재 있는 분들은 약 1200명
박인규 : 이 분들 중에 아직도 광부로 일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성규환 : 광산에 일하는 건 너무 힘들어서 나이 50에 정년퇴직을 합니다. 그래서 2004년도에 마지막 광부로 우리 한국분들은 없습니다. 그때까지 광산에서일한 분들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 많죠.
박인규 : 제가 듣기로 간호사로 가신 한국분들하고 광부로 가신 분들이 결혼하신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요...
성규환 : 조금 있죠. 1200명 중에서 60% 정도는 간호원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한 40%는 한국에서 결혼했던 분들이니까 부인을 초청했죠.
박인규 : 성회장님은 부인을 초청하신 거죠? 독일에 70년대에 가신 건 경제적으로 나은 생활을 해보자 해서 가신 건데 지금까지 사셨어요. 독일에 남으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는 않으십니까?
성규환 : 많이 후회하죠. 경제적으로도 도움도 안 됐지만... 지금 왔을 때 보면. 돈을 벌어서 그 당시는 우리 경제가 어려웠을 때니까 다들 송금을 하고 그 후 몇 개월씩 체류하면서 체류가 안 되고 불법체류를 하면서 힘들었고. 그 후 자제분들도 있고 하니까 어려서 현상유지만 한 거지 저축이나 이런 건 없었는데. 왜 후회하느냐, 그 후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가 성장하고 지금은 독일보다 우리 한국에서 받는 월급들이 더 많았다는 거죠
박인규 : 그럼 말하자면 오히려 한국에 남아서 일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
성규환 : 한국에 남아서 그만치 어려운 일을 했으면 더 나아질 수 있었을 거 아니냐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간호사가 광부로 가신 분들이 송금한 게 1억5천만달러 된다. 지금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 당시 귀한 외화였다고 하시던데요. 조국을 위해서는 봉사하셨지만 개인적으론...
성규환 : 없죠
박인규 : 그런데 만약 3년 근무를 끝내시고 한국으로 오실 수도 있었을 텐데 광부로 남은 건 거기서 뭔가 기회를 잡아보시기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성규환 : 기회를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경제는 안 좋았고 더 벌어서 한국 가자, 3년 더 벌어서 가자, 그리고 또 한 3년 더 벌어서 가자 이랬던 것이 결국 오늘까지 못 오게 된 이유입니다. 지금 한 10년 전부터 귀국 못한다. 독일에서 살아야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인규 :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서 가야지, 그런 분들이 많았군요.
성규환 :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아직도 한국 여권을 갖고 있습니다. 왜. 한국에 가서 살아야 되니까
박인규 : 성회장님도 지금도 기회가 닿는다면 고국에 돌아오고 싶으신가요?
성규환 : 그렇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오시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신가요
성규환 : 저희들이 독일에 가서 근무한 기간이 짧기 때문에 연금이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 연금 가지고 와서 한국에서 살 수가 없어요. 물론 거기도 비싸지만 거기는 보험제도는 잘돼 있지만... 한국 와서는 보험제도가 안 돼 있으니까 저희들이 보험료 내고... 남은 우리 인생은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인데 이런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박인규 : 독일 남아계신 분들 상당수는 고국에 오고 싶지만 와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안 된다. 그래서 못 오시는 거군요. 지금 독일에 1200명의 광부가 계신다는데 가장 젊으신 분은 얼마나 되십니까?
성규환 : 많으면 80넘은 분들, 젊은 사람은 55세
박인규 : 거의 노년층이라고 해야 되겠네요. 고국에 오시고 싶은 분들을 모시는 게 좋을 텐데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독일에 남아계신 파독 광부들이 한 1200명 되시고 연세가 55세에서 80세라고 하셨는데 그 분들이 독일에서 삶은 편안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성규환 : 편안하다기보다, 향수를 많이 느끼고 있죠. 고향... 그것이 자제분들은 독일에 있으나마, 저희들은 고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어서 향수를 많이
박인규 : 경제적으로는 어떠십니까?
성규환 : 지금 간호사와 결혼한 분들은 그나마 경제적으로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70년대에 가신 분들은 고국에서 결혼을 하고 갔고 부인을 초청해서 갔고, 또 자녀분을 초청했기 때문에. 그래서 간호사하고 가지 않고 고국에서 초청해서 간 77년도 중반에 간 광부들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박인규 : 그렇게 따지면 성회장님도 상당히 어려운 편에 속하시는 거네요
성규환 : 왜 어려웠나 하면 혼자 벌어서 가족을 이끌어가야 되니까. 그리고 부인을 초청했기 때문에 우선 5년 동안은 노동허가가 나오지 않으니까 일 못하고. 또 그때 갔으니까 일하는 연도수가 작아서
박인규 : 성회장님은 77년도에 독일에 광부로 가셨는데 그럼 모든 가족이 다시 독일에 뭉치기까지는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성규환 : 저는 12년 만에 뭉쳤습니다
박인규 : 그럼 고생 많이 한 거네요. 그런 파독 광부들을 위해서 예를 들면 고향 정착을 위해서라든가 독일에서의 생활 지원을 위해서 우리 정부에서 해주는 게 있습니까?
성규환 : 하나도, 한푼도 없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고향을 방문한 정도
성규환 : 이번에 방문한 것도 정부가 지원한 게 아닙니다. 저희들이 적립금, 저희들 돈을 부어서 그것이 30년 동안 이자가 붙어서 그 돈을 갖고 생색만 내고 고국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참 정부에 대해서 아쉽고 섭섭한 게 많으실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재독 광부들을 대표해서 이런 정도 지원은 해줘야 되지 않겠나 하는 게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성규환 : 정부로부터 그 어려운 시절에 파독 광부로 가서 경제발전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정년이 되고 나이 70이 되고 이래서 고국에 방문했을 때 질병이 난다든가 이럴 때 정부에서 지원을 좀 해주셔야 되고
박인규 : 질병치료 정도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재독 광부들이 그동안 60년대 이후로 독일에 가셔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걸 기념하는 기념관이나 기념탑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계획은 진전되고 있습니까?
성규환 : 그 돈을 우리 적립금을 갖고 해달라고 했습니다. 15년 전부터 했는데 정부에서 기념비를 해주겠다고 해서 우리들 적립금에 있는 돈에서 5억3천만원을 책정해줬습니다. 이 돈을 가지고 기념비를 만들어라 했는데 지금 추진 중입니다. 5억3천만원 가지고 기념비를 만들 수는 있는데 어느 정도 규모냐 하는 게 문젭니다.
박인규 : 일단 작지만 예산은 책정이 됐고
성규환 : 그건 저희들의 광산적립금, 저희들 돈 가지고 하는 겁니다. 이것마저도 지금 와서 책정됐습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그동안 고생하신 것에 비해서 고국의 정부나 사회에서 관심과 지원이 적은 데 대한 섭섭함 같은 게 많으신 것 같습니다
성규환 : 저희들이 살려고 갔는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는 항상 떡고물을 발라주는 식으로 좋은 말씀만 하시고 이렇기 때문에 섭섭합니다. 왜냐, 저희들이 물론 고국 경제발전에,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갔지만 기여한 건 사실입니다. 달러를 고국에 다 보냈으니까, 그랬는데 내 가족들이 먹고 살았다 하더라도. 대통령께서 그 돈을 가지고 경제발전에 초석이 됐다고 이런 말씀들을 역대 대통령 다 하셨는데 우리들이 지금 왜 기념비, 기념비를 하느냐 하면 우리 남은 여생은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손들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이렇게까지 된 것도 그 조그마한 초석이라도 일조를 한 파독 광부들이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고생을 해서 했다는 기념비라도 하나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것마저도 정부에서 나몰라라 한다면 진짜 섭섭하죠. 또 섭섭한 게 있다면 저희들이 듣기로 교과서를 지금 새로 많이 변경한다는데 그 교과서에 파독광부나 간호사의 역사도 해서 우리 후손들이 좀 알았으면
박인규 : 지금 현재 교과서에는 파독 광부나 간호사 이야기가 안 들어가 있나요?
성규환 : 안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서, 우리 대한민국이 못 살았을 때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아야 되는데 그것도 좀 해줬으면 합니다.
박인규 : 사람들이 어려웠을 때를 잊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파독 광부나 간호사 분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못다 하신 말씀있으시면 정리말씀 부탁드립니다.
성규환 : 왜 우리 한국 교과서에 이런 걸 실어 달라 하냐면, 지금 우리 2세들에게 아버지들 살 때 이렇게 어려웠다 하고 밥도 굶고 그랬다 이랬을 때 뭔 얘기를 하느냐 하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 이런 걸 들었을 때 우리 대한민국이 그야말로 강대국이 됐을 때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서 강국이 됐느냐 이런 것도 학생들이 알아야 되고. 지금 한 가지 얘기하고 싶다면, 지금 한국이 경제성장국이 되고 외국에서 인력을 도입해서 외국인들이 와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우리들도 똑같은 조건으로 외국에 가서 일했는데 우리 한국에 인력이 남아도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려면 우리 인력으로 각성하고 해야 경제가 더 성장하지 않겠나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 지금 젊은 청년들이 일선에 나서서 해야 우리 경제발전에도 기여하고 자발적으로 젊은층에서 일을 해주셔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어려울 때를 잊지 않아야 발전이 있다고 하는데 저희가 지금 세계 11대 경제대국이라고 해서 도취한 측면도 있고, 파독광부 나가셨을 때처럼 어려웠던 기억을 잊지 않는 것, 그래야 다시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좋은 말씀으로 새겨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성규환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파독 광부들의 모임인 '재독 한인 글뤽아우프중앙회' 성규환 회장을 초대해.. 모처럼 고국을 찾은 소감과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쳐야했던 파독광부들의 삶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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